재롱잔치

삶꾸러미 2007. 12. 24. 17:39
해마다 나의 연말이 바쁜 이유엔
조카들의 재롱잔치도 한 몫 한다.
4살때부터 유치원엘 다녔던 정민공주부터 벌써 몇해째 재롱잔치 구경을 다니는지 모르겠는데
여전히 꽃다발 사들고 가서 지켜보면 울컥 눈물이 날 정도로(주책 고모란 거 나도 안다;;) 감동적이고 뿌듯하지만 어린 아이들이 한달 이상 연습하며 받았을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

숫기 없는 유전자의 난관을 극복하고 이젠 어느 정도 안무와 노래를 소화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울집 공주와 왕자들이 정말로 기특한데
유심히 지켜보면 공연도중 다른 친구들은 열심히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는 데,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거나 심지어 울고 있는 아이들이 꼭 있다.
그 아이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
우리 정민공주도 유치원 다니던 시절 재롱잔치때마다 거의 2년은 그렇게 무대에 서서 꼼짝않고 반항(?)을 하는 바람에 캠코더와 카메라까지 싸들고 간 제 부모는 물론이고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기 때문이다.
나도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키지도 않는 재롱을 떨어야 하다니;; 얼마나 끔찍했을까 +_+

유치원 교사나 부모들은 그런 재롱잔치가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하지만, 그건 '주류'에 속하는 다수의 아이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일뿐
자의식이 유달리 강하거나 수줍음이 많은 아이들에겐 그저 끔찍하고 괴로운 '망신의 장'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도 옛날이라 유치원을 다닌 적은 없지만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발표회 같은 게 있을 때
단체 합주나 합창은 몰라도, 연극이라든지 소수가 출연하는 꼭두각시 춤 같은 공연을 해야하면
나는 그야말로 주눅이 잔뜩 들어서 괴로워했던 기억이 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 혼자 실수를 하거나 넘어지면 어쩌나...
대사를 까먹으면 어쩌나..  그런 두려움에 벌벌 떨었던 것인데
공연이 끝나면 성취감보다는 그저 지겨운 일이 끝났다는 것만 반가웠더랬다.

하기야 요즘 아이들은 절반 이상의 장래희망이 *연예인*이라니
그들의 끼와 숫기가 내 어린시절과는 수준부터 다를 것도 같다.

째뜬 올해도 2주 연속 토요일마다 우리집 왕자님들의 공연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두 녀석 역시 재롱잔치를 꽤나 즐긴 모양이다.
분명 녀석들에게도 얼마간은 스트레스였겠지만, 무사히 재롱잔치를 마치고 갈채를 받은 조카들이
자랑스럽다.
하지만 우리 조카들 옆에서 내내 울음을 터뜨렸거나 굳은 얼굴로 서 있던 아이들도, 그들의 부모도
너무 큰 마음의 상처는 받지 않았기를 빈다.
2년 내내 무대 구석에 홀로 서있기만 했던 정민공주도 3년째 되던 해에는 단체 소고무와 합창을
곧잘 따라해서 우리에게 기쁨과 감동을 안겨주었단 얘기를 그들에게 귀띔해주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모든 아이들이 다 무대체질은 아니라고요!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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