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왔다

책보따리 2007. 11. 12. 21:04
언제 다 읽을 것인지 기약은 없지만
주문할 땐 화요일 도착 예정이라더니 하루 일찍 도착한 택배 상자를 열어 책들을 쓰다듬으며
일단 탐서 욕망 한 겹을 잠재웠다.
그러고는 금방이라도 손을 뻗어 읽을 것처럼 컴퓨터 책상 바로 옆에 쌓아놓았다.
지지난달에 사들이고선 몇 페이지씩 들춰본 게 전부인 책들까지 쌓고 보니 모니터 키의 절반쯤이다.
오늘은 그저 이것만으로 족하리라 생각했다.

내가 책 탐하는 욕심만 키우며 제대로 독서를 실천하지 못하는 까닭은
별로 좋지 못한 독서 습관 때문이다.
나는 짬짬이 틈틈이 덮어두었다가 또 다시 책을 읽는 건 감질나서 못 견디겠다.
이왕이면 한번 잡은 책은 내쳐 끝까지 읽거나 중간에 끊더라도 한두 번 정도로 한계를 긋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에는 기억력이 몹시 딸려 중간에 휴지기가 길어지면 앞부분의 내용이 완전히 공백으로 돌아가는
두뇌의 탓도 무시할 수 없다.
어쨌거나 소설집이나 수필집 같은 건 얼마든지 한 꼭지씩 읽어도 무방한데도 그러기가 싫다.
어쩌면 그러기 싫은 게 아니라 단순한 꾸물거림의 핑계일 수도 있겠다.

운동도 독서도 시간이 '날 때' 하겠다는 건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름없다고 한다.
부러 시간을 내서 하지 않으면 절대로 안되는 것이라나.
아무리 바빠도 24시간 가운데 부서져 낭비되는 시간은 꽤 길다.
잘만큼 자고서도 이불속에 드러누워 안 일어나고 꼼지락 거리는 시간.
어렵사리 일어나서도 다시 소파에 드러누워 빈둥거리는 시간.
밥먹고 나서 배부르다는 핑계로 재미도 없는 TV 채널과 씨름하는 시간.
그리고 제일 많게는 일하는 척 자리잡고 앉아서 인터넷'질'하는 시간.

언제부턴가 잠자는 머리맡에 쌓여있다 먼지만 이고서 퇴출 당했던 책들이
컴퓨터 책상에 즐비하게 널브러져 있는 걸 보면
내가 가장 낭비하는 시간이 바로 컴퓨터 앞에서 빈둥대는 시간임을 자각했기 때문일 게다.

책이 손에 들어오면 이상스레 제일 먼저 작가의 나이부터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 역시 나에 대한 채찍질의 일종일 것이다.
잘 나가는 소설가 은희경은 1959년생. 휴 안심.
잘 나가는 건축가 황두진은 1963년생. 다행히 나보다 많네.
역시 잘 나가는 유럽 작가 알랭 드 보통은 1969년생. 늘 느끼지만 뭐냐 이 놈은.
스위스 출신으로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이라는 장 지글러는 1934년생. 어르신이로군.
뭐 이런 식이다.
아마도 내가 요즘 반짝반짝 톡톡 튀기는 신예 작가들의 책을 선뜻 구입하지 않는 것도
자괴감을 피하려는 얕은 수작에 불과하다.

흔들리지 않는다는 나이에 흔들리지 않기는커녕 제대로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는 불안감은
벌써부터 나를 연령차별의 편견에 접어들게 했다.
어린 나이에 좋은 글로 감동을 주는 이들에겐 찬사와 존경을 보내야 마땅하거늘
소견머리 좁아터진 나는 그저 질투심만 활활 불태울 뿐이다.

이러다간 조만간 완전 편협한 노털로 취급되는 게 아닐까 두렵군.
철 없다는 핑계로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 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데
나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에서 유연해지는 건 그리 잘 되지 않는다.
이런 열등감을 치유해줄 방법이 담긴 책도 어딘가 있을 텐데...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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