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구 중독

추억주머니 2006. 10. 11. 02:44
내가 온라인으로도 오프라인으로도 수시 구경을 즐기는
어느 문방구 가게 (디자인 소품 상점이라고 해야 정확하려나?)에서 개점 5주년 행사로
1주일간 20퍼센트나 할인판매를 단행한다는 이메일이 날아왔다.
다른 광고는 읽어보지도 않고 삭제를 하면서
유독 그 사이트에서 날아오는 광고 메일은 어김없이 열어보고선
입을 헤벌리고 한참이나 구경을 하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가끔은 쓸데없이 귀여운 책 스탬프와 잉크패드, 메모지, 스프링 달린 수첩,
스티커, 앙증맞은 공책, 알록달록 모양이 예쁜 박스 포장용 테이프 따위를 사들인다.

그나마 오늘은 그동안 사려고 별러두었던
명함 앨범을 거의 2천원이나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어 갔던 것인데...
또 한 시간도 넘게 이것저것 문방구를 뒤적이다
잔뜩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아놓았다가는 딱히 급히 쓸모 있는 물건들이 아니라는 생각에
반성하는 의미에서 곧장 구매하지 않고 wish list로 옮겨놓은 뒤 얼른 나왔다.

나말고도 이런저런 문방구를 욕심껏 사들이는 지인들이 꽤 여럿이다.
다 쓰지도 않으면서 색색깔의 펜들을 사들여 필통에 꽂아두고 흐뭇해 하는 이가 없나
역시나 다 쓰지도 못할 아담한 크기의 각종 수첩과 노트를 보는 족족 사들이는 이가 없나
스티커만 보면 눈을 반짝이는 친구가 없나...

대체 "다 큰 우리들"이 이러는 이유는 뭘까?
나 같은 경우 그닥 풍요로운 어린시절을 보내지는 못했으므로
문방구에서 늘 사고 싶었던 색연필이나 예쁜 지우개, 손에 잡히는 감촉부터 남달랐던
앙증맞은 일제 샤프펜슬, 수첩, 지갑 따위를 만지작거리며 오래오래 지켜만 보다가
뭔가 특별한 날 아주 큰 마음을 먹고 사들이는 형편이었으니
그에 대한 보상심리라고 쳐도,

상당히 풍요로운 어린시절을 보낸 터라 출장 다니시는 아버지 편에 수많은 일제 문방구들을
다 섭렵했고, 내가 몹시도 부러워했던 철제 케이스에 든 48색 색연필(아마도 독일제나 스위스제였을 거다)은 물론이고 요새 다시 유행한다는 다이모를 그 옛날에도 들고다니며 제 학용품에 이름표를 죄다 붙이고 뽐을 내, 우리들 기를 죽였던^^ 친구도 여전히 내가 대형 문방구에 들어가보자고 하면 얼굴을 빛내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문방구 선반을 뒤져대는 걸 보면
대체 영문을 모르겠다.

이런 사람들이 많으니 아예 키덜트 상품이라는 것이 버젓이 개발돼 나오고 있겠지만
나는 이른바 피규어figure를 비롯해 각종 인형이나 테디 베어류엔 전혀 관심이 없고
(동물 싫어하는 것 만큼이나 인형도 싫다! 먼지나 풀풀 나고 말이지... )
오로지 문방구, 특히 서지류에만 중독이 심하다. ㅎㅎㅎ

얼마 전 추석 대청소 하느라 책꽂이 맨 아래 놓인 상자를 여니
예전에 사들인 편지지 세트가 잔뜩 들어 있었다.
내가 친구들에게 편지쓰기를 관둔 게 최소한 10년은 넘었으니 그 역시 10년은 넘었을 게다.
철철이 사둔 카드야 아무 때나 쓸 수 있으니 다행이지만
해묵은 편지지는 기껏해야 조카한테나 물려줄 수밖에 없겠지.

또 앞으로 10년쯤 후에 상자에 담아 치워둔 조무라기 수첩과 공책들을 보며 스스로 한심스러워하지 않으려면 이제부터라도 문방구 사들이는 일을 좀 자제해야 할 터인데
과연 어쩌려나 모르겠다.
참... 앞으로 10년 후면 내 나이가 몇이냐 말이다. ㅠ.ㅠ

반성문이랍시고 이렇게 적어놓고
분명 내일 난 득달같이 그 문방구 사이트에 로그인해서
못 이기는 척 물건 하나쯤 내려놓은 다음 낼름 계산할 게 뻔하다.
ㅋㅋㅋ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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