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삶꾸러미 2007. 10. 18. 23:43
반복되는 습관에서 벗어나면 못내 불안해지는 것.
그건 곧 변화를 두려워하는 '늙어감'과 동의어라고 언젠가 들은 것 같다.
'나는 가능한 한 평범하게 늙어가진 않을 테야!'라고 다짐하듯
사소한 습관을 바꿔보려 하지만
결국엔 늘 제자리다.

자는 방에 시계를 한동안 없앴었다.
방방마다 벽시계가 하나씩 꼭 걸려 있어야 하는 건 참 구태의연한 발상이지만
노친네들이랑 오래 산 터라 그게 너무도 당연한 듯했다.
그러다 부엌 시계가 고장나는 바람에 옳다구나 내 방 시계를 그리로 옮겨놓고는
벽시계 없이 살아보리라 생각했다.
밤마다 극도로 예민해진 순간 째깍거리는 소리 때문에 시계 건전지를 빼놓고 자는 날도
꽤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횡뎅그러니 못만 남은 벽을 나는 하루에도 몇번 씩이나 습관처럼 쳐다봤다.
집에 있을 땐 늘 휴대폰을 지니고 다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얼 그렇게 시간에 쫓기며 사는지 스스로도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러나 늘 쳐다보았을 때 있던 물건이 졸지에 사라졌다는 상실감은 의외로 컸고,
흘긋 돌아본 벽에 남은 못이 너무 을씨년스러우니 빼버리거나 다른 액자라도 걸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무음시계를 사다 걸어야겠다는 생각이 차츰 강해졌다.

습관이 얼마나 무서운지
몇달 전 조카 그림을 거실에 걸어두게 되면서 거기 있던 가족사진이 엄마 방 시계 걸린 자리로
물러나고, 벽시계는 다시 화장대 옆 자리로 쫓겨나고 말았는데
엄마도 나도, 시간을 확인하려면 먼저 10여년 이상 시계를 걸어놓았던 자리에 걸린 사진을 쳐다본뒤
아차 하면서 다시 새로 걸린 시계 자리로 시선을 돌린다.

별것 아닌 물건에도 이리 습관성 집착이 강한 인간이니
다른 것에야 오죽할까.
생각해보면 내 주변의 모든 관계와 만남 역시 습관에 의한 반복 행위인 듯하다.
그래서 가장 습관적이었던 관계의 단절, 아버지의 부재가 이토록 허망하고 크게 느껴지는 것일 게다.

결국 벽시계 없이 지낸 지 채 한달도 못 되어 내 방엔 소리없이 초침이 유연하게 돌아가는 무음시계가 걸렸다.
정신도 육체도 차츰 늙어간다는 걸 마음 편히 받아들이면
습관에서 못 벗어나는 것도 큰 흉은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기로 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데, 어차피 세 살은 지난 지 오래고 여든까지도 절반은 왔으니
이제 와서 제 버릇 남주랴.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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