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박7일

삶꾸러미 2007. 8. 23. 02:07

고된 6박7일을 보내고 나니 쌓인 피로와 더불어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렸는지
저녁 먹자마자 식곤증으로 쓰러져 밤중까지 낮잠 아닌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6박7일은 원래 3박4일을 목표로 우리집에 다니러왔던 정민공주의 방학행차 날수다.
돌이켜 보건대, 온 몸을 다바쳐 공주를 보필해야 하는 무수리에게 7일은 정말 힘겨웠다.
3박4일만으로도 벅찼을 텐데...  -_-;;
물론 나도 어린시절 방학때면 당연히 일주일씩 방학숙제 싸들고 할머니댁에서 지내는 걸 중요한 전통처럼 되풀이했고, "우리 집에도 제발 와달라"(!!!)고 특별히 부탁하는 고모들 집에도 이틀쯤 가서 머물곤 했다. ㅎㅎ
이상스레 딸이 귀한 집안이라 고모들이 시끄럽고 부산스러운 사내녀석들과 달리
얌전하고(벗은 옷과 잠옷 같은 건 늘 머리맡에 얌전히 개어 놓았다는 전설이 있다;;)
끼니 땐 일손을 돕는 시늉이라도 하는(가령, 수저 놓기 같은;;) 나를 무척 예뻐했던 기억이 난다.

하. 지. 만.
정민공주는 무수리과에 속하는 나와는 전혀 다르다. ㅠ.ㅠ
샤워하기 전에 벗은 옷은 거실에 하나 방바닥에 하나씩 마구 떨어져 있기 일쑤고
(집에선 당연히 제 손으로 집어 빨래통에 갖다 넣는다는데, 우리집에만 오면 손가락 까딱 안한다. 어흑...) 수저 놓기를 도와주기는커녕, 밥이라도 잘 먹어주면 내가 고마워해야 한다.
그것도 공주가 '주문'한 특별메뉴(첫날은 짜장덮밥, 둘쨋날엔 카레라이스, 셋쨋날엔 매운고기[제육볶음을 의미한다]... 등등)를 해다가 바치면서 말이다.
머리도 매일 다른 스타일로 땋거나 묶어주어야 했고, 연일 즐겁게 놀아주거나 방학숙제를 도와야 했고, 어찌나 말을 안듣고 고집을 부리는지 거의 온종일 잔소리를 하며 싸워야 했는데 대부분은 내가 졌다. 으으으

사정이 이러니 조카들 버릇은 고모가 다 버려놨다는 핀잔을 10년째 듣고 있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정민공주에 관한 한 할아버지와 고모에겐 '안되는 것'이 거의 없었다.
정말로 불가능한 게 아닌 한 무슨 부탁이든 다 들어주었던 게 사실이니까.
예를 들어, 집에 사다 놓은 삼겹살이 없는데도 아침 댓바람부터 매운고기가 먹고 싶다며 공주가 앙탈을 부리면 공주의 할아버지는 얼른 나가서 삼겹살과 깻잎을 사오시고, 무수리 고모는 득달같이 고추장양념을 해서 만들어 먹이는 식이었다. (내가 미쳤지...)

처음 3박4일 예정이었다가 공주의 체류기간이 길어진 건
중간에 우리 아버지 49재도 있었고, 바이올린 교습이랑 그림공부하러 가야하는 날이 포함되는 바람에 공주가 눈물을 철철 흘리며 "고모랑 하루종일 놀 수 있는 날이 단 하루 밖에 없어서 억울하다"고 제 엄마에게 항변했기 때문이었다.
제딴엔 할일 다 하고 숙제할 것 다하면서 지내는 게 억울했던 모양인데, 하필 개학을 코앞에 둔 시점에 다니러 와서 고모가 숙제까지 챙기느라 더욱 뼈빠지게 힘들었던 건 안중에도 없다. 쳇.

물론,
일주일 동안, 49재날을 제외하곤 정민공주 때문에 두 모녀가 눈물바람을 비칠 새도 없이 분주하고 시끌벅적했고, 울 엄만 난데없이 손녀딸과 함께 일요일 아침 조조영화를 보러가기도 했다. 엄마의 마지막 영화관람이 <태극기 휘날리며>였던 것으로 기억하니까, 귀차니스트 할머니에겐 실로 몇년 만의 쾌거이기도 하다. ^^;
그리고 사실 나 역시 귀찮고 힘들고 피곤하면서도, 도도한 공주를 보필하는 일은 순간순간 재미있고 뿌듯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 말씀이 "손자들이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고 한다는데
고모 무수리 역시 마찬가지인 듯하다. 왕비마마 보필도 지치는데 공주까지 모시느라 고되고 힘들었으므로, 왕비마마까지 대동하여 친히 공주를 자택까지 모셔다놓고 돌아오는데 어찌나
마음이 홀가분하던지 웃음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ㅋㅋ

그런데 못말리는 건, 벌써부터 공주가 보고싶다는 것. +_+
방학 전부터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만났고, 이번엔 아예 6박7일을 시달리고도 공주의 전화목소리를 들으니 왈칵 그리움이 밀려들었다.
흐이구...
확실히 나는 못말리는 무수리 기질이 철철 흐르는 고모임에 틀림없다.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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