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노릇

삶꾸러미 2007. 5. 5. 00:56

워낙 옛날부터 아이들을 좋아했던 나는
버스나 지하철에서도 아기들을 보면 절대 가만 두지 못하고 아이와 눈을 맞춘  뒤 재미난 표정을 짓거나 구슬러서 아가들을 웃기거나 관심을 끌곤 했다.
최대한 옆사람들이나 애 엄마한텐 안들키게 하느라 노력하지만, 아이가 까르륵 웃어버린다든지 하면 좀 곤란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20대쯤엔
결혼은 생각 없어도 어떻게든 애만 하나 낳아서 키우는 건 어떨까..도 꽤 진지하게 (?)
고민했더랬다. ㅋㅋ
남의 애들도 예쁜데 내 애는 오죽 예쁠까..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던 것.
물론 막연하게 홀부모의 힘겨움이라든지 아이가 받아들여야할 충격 같은 문제 때문에 그냥 아련하게 품은 '바람' 같은 것으로 남아 있었는데
드디어 내게도 '조카'라는 존재가 생기고부터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물론 첫조카는 탄생 이전부터 우리 가족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우린 올케의 출산 이전부터 아가를 위해 돌아가면서 비디오를 찍고 (예비 삼촌인 막내동생은 기타 치고 노래도 불렀고, 나는 태명이 '짱이'였던 아가가 태어나면 고모가 무슨 부탁이든 다 들어주겠다고 장담했다. *_*)  온 가족이 총출동해서 출산준비물을 보러 다니고 장만하고...
그랬다.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 하는 직장생활을 했던 올케 대신 주중엔 작은 이모가 첫조카를 돌보고
주말엔 큰동생네가 아예 우리집에서 기거하며 조카를 돌봤기 때문에
비로소 나는 아기의 24시간을 옆에서 목격하고 육아에도 참여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거의 3, 4시간마다 우유를 먹이고, 수시로 기저귀를 갈고,
안고 흔들어서 재우고, 매일 목욕을 시키고,
갑자기 고열이라도 나면 한밤중에 응급실로 뛰어가고
정해진 예방주사를 맞추러 다니고...

큰동생이 특수한 직업을 가진 터라 철야작업이나 외박도 수시로 했기 때문에
조카 병원행은 올케와 함께 주로 내가 보필하는 경우가 많았고
또 나나 울 아버지가 안아주면 아기가 더 빨리 잠들기 때문에 서로 솜씨자랑 하느라 나서기도 했지만,
특히 그땐 내가 집에서 번역을 할 때라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 동생들보다는,
밤중에 일하고 있던 내가 우유를 타거나 보채는 조카를 달래는 게 너무도 당연한 것 같았다.

그러면서 드디어 나도 깨닫게 된 거다.
아.. 육아는 정말 '장난'이 아니구나 하고.
겨우 주말에 이틀 조카와 함께 지내면서 깨달은 육아의 어려움은 조카가 점점 자라
유아원을 다니고, 유치원엘 들어가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더니
언제부턴가는 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특히 엄마들이 너무도 존경스러웠다.

얼마 전 친구 하나는 그토록 기다리던 아기를 낳은 뒤 심한 우울증으로
아기를 몇달간 아예 떼어놓고 본인의 몸과 마음부터 추슬러야 하는 사태를 맞기도 했는데
그 마음이 나도 백번 이해가 되었다.
어느것 하나 혼자 할 수 없는 무기력하고 조그마한 새생명을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을 엄마노릇을 오로지 본능과 의무감으로 해내야 한다는 건
초인적인 희생이나 마찬가지일 터였다.

어디 갓난아기 뿐인가.
초, 중, 고, 대학교를 거쳐 성인이 되고 나서도 자식이 번듯하게 홀로서는 순간은 과연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직장인이 되어 제 밥벌이를 하기 시작했다 해도, 결혼이란 큰 행사를 앞두곤 여전히 부모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제도적 현실은 변하질 않고 있고(간혹 혼자 힘으로 버젓이 혼례를 치르는 장한 지인들도 봤지만, 남동생들 보니 전셋값이라도 장만할 때까지 여자친구 기다리게 했다간 끝이 없겠더라), 나만 해도 부모님이 결혼이외 독립은 죽어도 안된다고 버티고 계시긴 하지만 사실 독립하라고 등 떠밀어도 선뜻 나가지는 못할 형편 아닌가! *_*
심정적으로는 내가 이제 노부모님 모시고 사는 거라고 떵떵거리지만
실질적으로는 분명 내가 부모님께 얹혀 살고 있는 게 맞다.

설령 결혼이나 독립으로 부모님 그늘을 벗어났다고 해도
별안간 겁이 나거나 위험한 순간이 닥쳤을 때, 입에서 "엄마야!"라는 외마디가 나오는 한
엄마와 부모님에 기대는 우리의 마음은 여전한 거라고 여겨진다.
2년전 83세로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그리워서 올해로 67살이나 먹은 딸(=울 엄마 말이다)은
아직도 몸이 심하게 아프고 힘들면 '엄마...'를 찾으며 울먹인다. 
그러면 나는 할머니 대신 엄마를 토닥여주면서도, 은근히 구박한다.
"아니... 할머니는 여든이 넘어서도 엄마 김치까지 담가다 주면서 딸 챙기셨는데,  엄마도 나한테 씩씩하고 든든한 엄마가 돼 주진 못할망정 만날 왜 이리 엄살이야.." 라면서.
그치만 속으론 만날 병들어 비실비실한 엄마라도 내 곁에 있어주셔서 다행이라 여긴다.(아 물론 긴 병엔 효자 없다고 -_-;; 나도 힘들땐 별별 생각 많이 하지만...)
 


암튼 오늘 또...
자의식이 몹시 강한 조카 정민공주 때문에 저녁때 한바탕 집안에 난리가 벌어져
올케와 조카, 두 모녀를 어렵사리 화해시킨 후 집으로 돌려보내며
또 한번 부모 노릇의 어려움을 실감했다.
논리와 대화가 통하지 않는 아기들의 부모 노릇은 육체적으로 힘들고
말귀가 통하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부모 노릇은 정신적으로 힘들다더니만
정말로 훌륭한 부모가 되는 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특히 나처럼 덜떨어진 정신연령을 갖춘 이로선 감당할 수 없는 것인듯...

이젠 절대로 내 입에서 "결혼은 말고 애나 하나 낳아서 키워볼까" 하는 만용은 흘러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부모 노릇, 엄마 노릇 씩씩하게 해내고 있는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늙은 딸 보필에 오늘도 여념 없으신 나의 부모님께
그저 갈채를 보낼 뿐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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