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 찢기

투덜일기 2016. 5. 11. 21:47


<청바지 찢기>라고 제목을 딱 적자마자 <청바지 돌려입기>라는 책이 생각났다. ㅋ 친한 친구들끼리 청바지 한벌을 돌려입으며 각자 사연을 털어놓던 청소년소설이었던 듯. 물론 포스팅은 그 책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예전에 높은 신발에 맞춰 길이를 수선해놓았던지라, 낮은 운동화 아니면 단화만 신고다니는 요즘엔 통 입을 일이 없었던, '나름 고가의 브랜드 청바지'를 며칠 전 과감하게 자르고 찢었다. ^^; 머리 복잡해지면 괜한 생산성 폭발하는 건 이 업계 종사자의 돌림병이 아닐지.


외래어 남발병에 걸린 패션계에선 <디스트로이드 진>혹은 <데미지 진>이라는 이름으로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뚤려있는 청바지를 홍보하고 팔아먹던데... 어쩐지 얄딱구리하게 느껴지는 허벅지 부분에 팍팍 구멍이 난 바지를 사입겠다는 생각은 차마 한 적이 없고, 무릎 부분을 죽 시원하게 찢어서 걸을 때나 앉을 때 편해보이는 청바지에 대한 괜한 로망은 내심 갖고 있었다.  


게다가 마침 요샌 밑단을 싸박지 않고 그냥 올 풀리게 내버려둔 바지들도 막 입고 다니니 나처럼 DIY 바느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갖고 있는 청바지로 뭔가 저지르기 딱 좋다.


소심하게 1, 2센티미터씩 여러번에 걸쳐 길이를 자르며 입어보고 다시 자르기를 반복, 발목이 좀 드러나는 길이 그나마 젤 낫다고 여겨 대충 올을 푼 뒤엔 좀 더 과감해져서 앞쪽 무릎부분을 가위로 확~ 오렸다. 스판기가 있는 원단인데도 역시 무릎이 훌렁 드러나니 편하다 편해!


색깔이 진한 청바지라서 그러고도 좀 심심해보여 이번엔 '사포'를 집어들었다. 군데군데 뭔가 더 손을 봐주겠어! ㅋㅋㅋㅋ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사포질>은 안하는게 나을 뻔했다. 몹시 어설프게 상처가 나버린 청바지 어쩔;;


그래도 잠깐 집앞에 나가야한다든지 장보러 나갈 때 입어보니 묘한 해방감 같은 게 든다. 설마 이것이 혹시 파괴본능? 으음.. 그건 아닌 거 같고 알게 모르게 '단정해보이는 게 싫은' 반발심의 일종이 아닐까. 


며칠 전엔 시내에서 나보다 꽤 나이들어보이는 어떤 늘씬한 아줌마가 물 많이 빠진 흐린 색깔 청바지에 시원시원 여기저기 구멍이 많이 뚫린 청바지를 다 큰 딸과 딸과 나란히 입고 가는 걸 보았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멋지다'라고 중얼거렸음. 누가 날 보고도 '멋지다'고 생각할 리는 없겠지만 암튼 나 혼자 흐뭇하다. 새 청바지 안 사고도 새 청바지 사입은 이 느낌은 괜히 돈을 번 것 같기도 하고...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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