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한해를 돌아볼 때 3월은 아마 '아무것도' 하지 않은 달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대체 한 가지도 '마무리'를 한 게 없는 듯. ㅠ.ㅠ
암튼 마음만 급한 3월 말일. 게으른 나를 조롱하듯 만개한 집앞 벚꽃은 벌써 잎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전국적으로 오후부터 비가 내린다던 그저께. 전날만 해도 가지마다 꽃이 서너 개나 벌어졌을까말까 다 피려면 며칠 걸리겠다 여겼지만 밤새 홀라당 다 핀 걸 보고 안타까워했다. 비와서 하루만에 떨어지는 거 아냐! 그러면서 안타까워 비오기 전에 베란다 문 열고 후딱 찍어둔 사진.
3월 29일
그러나 다행히도 이슬비가 내리는둥 마는둥 빗줄기가 가늘었던 덕분인지, 벚꽃은 무사했고 하루하루 더 예뻐졌다. 어제도 예뻤지만 오늘이 피크인듯, 벌써 하나 둘 꽃잎이 날리기 시작.
3월 31일
다 피었다고 여겼어도 이틀 전 사진엔 덜 핀 봉오리들이 꽤 많았다는 걸 이제야 비교하며 깨달았다. 송이송이 탐스럽고 예쁘다... 누가 하라는 것도 아닌데 해마다 벚꽃 다 핀 날짜를 왜 기록하고 있나 모르겠지만 집앞 벚꽃은 암튼 다른 해보다 보름이나 일찍 피었다. 날씨가 너무 더운 거다. 진짜로 며칠 전부터 반팔 입고 지내는데 안 춥다. 세월무상.
어쨌거나 벚꽃은 이제 내게 슬픈 꽃이다.
우리 동네에 여의도 윤중로보다 멋진 벚꽃길이 있어서 해마다 벚꽃축제도 열리고 그러는데, 우리집 마당에서도 볼수있는 벚꽃을 뭣하러 성가시게 구경가냐며 까칠한 딸내미는 해마다 산책삼아 벚꽃놀이 가자는 늙은 부모님 부탁에 늘 투덜거렸다.
그러다 2007년 봄. 두 노친네 하도 보채시길래 마감핑계로 마다하던 앞산 벚꽃 구경을 드디어 나섰더니만 끝물이라 새하얀 벚꽃이 눈발처럼 흩날렸다. 그제야 환호하며 난 벚꽃 화라락 질때가 제일 멋지다고 했더니 울 아버지는 서글퍼서 싫다고. 지는 벚꽃을 보면 내가 또 이런 꽃구경을 몇번이나 더 볼까 싶어지신다나. 나는 얼른 미안해져서 염려마시라고, 앞으로 몇십년은 벚꽃놀이 모시고 다니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날 새삼 왜 그런 대화를 나눴는지 정말 모르겠는데, 암튼 공교롭게도 아버지와 함께 본 벚꽃은 그게 영영 마지막이 되었다. 그렇게 건강 자신하며 일주일에 세번씩 등산다니던 양반이 그 밤 벚꽃놀이 이후 석달도 안돼 돌아가실 줄이야....
7년이 지난 뒤, 이젠 벚꽃만 보면 질질 눈물이 나는 단계는 지났지만 그래도 가슴 한켠이 먹먹하다. 있을 때 잘하란 말, 누릴 수 있을 때 누리란 말은 참 진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