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압이 좀 높고 빈혈이 있고 위염 소견을 보인다는 것이 지난 연말 건강검진 결과의 요지다. 몇년 전 위내시경을 했을 때는 흔한 표재성 위염이라더니 역시 '그냥' 위염으로 발전한 것이 간간이 느낀 속쓰림과 소화불량의 이유였구나 싶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위내시경 소견서에도 그렇게 써 있었다. 지속적인 속쓰림이나 불편함이 느껴지면 내원하여 치료를 받고, 별 이상이 없으면 1년 뒤 다시 내시경을 받으라고. 요즘 다시 멀쩡해졌으니 그럼 된 거 아닌가? 혈압이야 뭐 잠 못자고 가서 쟀으니 당연히 높게 나왔고, 집에 와 푹 자고 다시 쟀을 땐 정상이었다. 그럼 그렇지, 새해 들어 며칠 나가서 운동(이라고 쓰고 산책이라고 이해해야;;)도 했단 말이지.
암튼 새해들어 담당 보험설계사가 끈질기게 나를 설득했다. 의료실비가 보장되는 보험을 또 들라는 거였다. 친구의 언니이기도 하고 같은 동네 사는 터라 걸핏하면 집까지 찾아와 당근(각종 선물;;)과 채찍을 휘두르며 실비보험의 필요성을 설파한지 벌써 몇년째였고, 요번엔 계약서까지 뽑아들고 와 아주 사인을 해주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을 태세였다. 다 나를 위해서라고... 부모님의 고혈압 유전자도 있으니 미리 대비하는 게 좋겠다고. 처음엔 요리조리 회피를 해보았으나, 우유부단함과 거절 못하는 지병이 도져 결국엔 옛다, 서명을 해주고 말았다.
나로선 선심 깨나 베풀었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뒤 보험사에서 또 사람이 나왔다. 나의 건강상태가 보험 가입에 적합한지 일종의 평가를 하러 나온 셈이었다. 오래 전 종신보험과 연금보험을 들 때는 아예 간호사가 나와서 혈압을 재고 혈액 샘플까지 뽑아가더니만, 이번엔 조목조목 건강 상태와 병원 진료 경험을 캐묻다가 내가 귀찮아서 건강검진 결과표를 보고 읽어주자 아예 그걸 사진으로 찍어갔다. 아우 기분나쁘고 찜찜해...
그러더니 두둥. 며칠 뒤 친구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의 건강상태가 보장되지 않아 실비보험 가입이 거절되었다나. 우엑~~~!!!! 왜 가만 있는 사람을 귀찮게 하더니 기분 나쁘게스리!! 해서 보험청약을 철회하고 1회분 보험료를 돌려받고 어쩌구 하는 귀찮은 절차를 거친 뒤, 나는 의료실비 보험도 못드는 중년의 불건강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으으으으 기분 더럽도다!!
누군가는 이미 몇년 전 의료실비보험을 들었다가, 건강 우량체로 인정되면 보험료 할인된다는 말에 검진을 받아본 뒤 괜히 고혈압 판정만 받았다느니(병원에만 가면 괜히 혈압이 올라가는 새가슴도 있지 않은가;;), 함부로 건강검진 받을 게 아니라느니, 보험공단에 괜히 기록만 남아 나중에 불리해진다느니(뭐가??) 하는 말이 뒤늦게 이런저런 경로로 귀에 들어온다. 언제는, 건강검진은 정기적으로 받아야 좋다며!! 우쒸....
애당초 의료실비 보험 따위 별로 필요 없다고 생각했으니 다시 원점이라고 쿨하게 생각하면 그만인데, 생각할수록 보험사의 행태가 괘씸하고 기분나빠서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이렇게라도 씨부리면 좀 풀리려나.... 생각해보니 그간 내가 건강보험공단의 건강검진을 계속 외면해왔던 것도 일리가 있는 행동이었구나 싶다. 원래 병원에 쪼르르 달려가는 성격도 아니고, 감기 걸려도 약을 먹는 유형도 아니니, 그동안엔 어디에도 기록이 남질 않았잖아! 헌데 이젠... 기록상 그쪽 세계에서 여러가지 병인을 지닌 '환자' 취급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엄청나게 억울하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