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때만 되면 남북 양쪽에서 정치적인 카드로 써먹으려드는 느낌이 강한 이산가족 상봉. 요번에도 실무 접촉이 시작되고는 있지만 꾸준히 연례적으로도 못하고 걸핏하면 중단되는 양상이 참 못마땅하다. 뉴스에 나오는 이산가족 상봉 회담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가 중얼댔다. 이젠 다들 돌아가시거나 너무 늙고 병들어 만나러 갈 사람도 없지 않나...
실향민인 우리 할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셨더라면 올해로 무려 105세가 되시는 셈이고, 10년쯤 전엔가 금강산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다녀오신 큰고모님도 어느덧 80대 중반이 되셨으니 정말로 몇년 안에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유명무실한 생색이 되고 말 것이다. 큰 기대를 안고 떠났던 큰고모님 말씀으로는 얼굴 알만한 노인들은 다 사망해 다 그 자손들이랍시고 나와 상봉을 하니 별 감흥이 없으셨다던데.
암튼 얼마 전 중국에서 걸려온 전화를 한통 받았다. 돌아가신 울 아버지 성함을 대며 찾는데, 대번에 중국동포 말투가 너무 확연해서 보이스피싱이구나 싶어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표독스럽게 대꾸하다보니 그게 아니었다. 자기는 중국에서 북한을 드나들며 무역업을 하면서 더러 북한 사람들을 돕고 있는데, 북한에 있는 아버지의 친척들이 아버지와 연락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우리 아버지의 연락처는 오래 전 이산가족 상봉 때 큰고모님한테 받은 것이라며 고모님의 이름과 주소 그 아들들 이름을 줄줄이 읊어 신빙성을 주려 애를 썼다. 의도는 알겠는데 내가 뭘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했다. 이기적이게도 내심 이거 골치아프게 금전적 지원이나 탈북 알선에 연루되는 건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더라도, 내가 알기론 아버지랑 실제로 아는 친척은 하나도 없는 것 같던데. 어쨌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전하니, 저쪽에서도 그럼 자기도 뭘 더 도와줄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죄송하다는 말로 전화를 끊고는 부산 큰고모님께 연락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며칠 고민하다 그냥 나 혼자 씹고 말았다. 엄마한테 이야기하면 또 괜한 걱정과 공포에 잠이나 설칠 게 뻔하고, 이산가족 상봉 후 큰고모님도 고생스럽게 괜히 갔다고 말씀하셨던 걸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젠가 통일을 앞두고 당연히 더 많은 탈북자 새터민들이 생겨날 것이고 지금도 여러 민간단체에서 북한 주민을 돕고 있듯이 꾸준한 물밑 교류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어쩌면 남북 정권의 정치적이고 극단적인 결정보다는 차츰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과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중요할 테고 말이다. 그런데 막상 개인적으로 그런 기회가 가능할 수도 있는데 대번에 꼬리를 내리고 움츠러드는 나를 보니 어찌나 한심스러운지. 늦었지만 큰고모님께라도 실토하고 조언을 구해야하는 게 아닐까. 그 고민조차도 며칠째 계속 전전긍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