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때였다. 좀 이상한 구석이 많았던 담임은 아침 조회시간마다, 그리고 자기 과목인 영어시간마다 '책상을 장단 맞춰 두들기며' <진인사대천명>을 세번 외치게 했다. 한자 찾는 건 귀찮아서 안할란다. 어떤 성취를 이루려면, 인간이 먼저 할 일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늘의 뜻에 맡기라는 뜻이다. 니들이 대학엘 가려면 일단 최선을 다해 공부한 다음에 나머진 운에 맡겨라, 는 취지였다. 매부리코 아래 동굴 같은 콧구멍에서 코털마저 숭숭 길게 빠져나온 담임이 어찌나 진저리나게 싫던지그해엔 영어성적이 바닥을 칠 정도였다. 영어 교과서도 싫었을 정도. 게다가 우스꽝스럽게 책상 두들기며 주문을 외우라니 으악.
반항의 의미로 책상은 내리치되 늘 입을 씰룩거렸지만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 뭘 얻으려면 천운만 기다려선 곤란하지, 본인이 노력을 해야지 말이야... 그러고는 어른이 되어 죽 인생을 살아오며, 나름 늘 주어진 상황 속에서 아등바등 노력하며 지냈다고 생각한다. 크게 욕심 부리지 않으면서.
그런데 요즘 문득 드는 생각은 대단한 성취란 본인의 노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게 아닌가 싶다. 모든 건 천운에 달렸다. 인간이 아무리 바둥거리며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안되는 건 안되는 거고, 우주의 큰 흐름은 원래 정해진 대로, 가려던 대로 흘러가는 게 아닐까. 새삼 운명론의 무게에 허덕허덕대는 중. 진인사대천명은 개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