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투덜일기 2013. 8. 21. 18:12

해마다 겨울엔 겨울대로 사상 최악의 한파라고 떠들어대고, 여름엔 여름대로 사상 최악의 폭염이라고 떠들어대는지 몇년 된 것 같다. 다 지구온난화 탓일 게다. 괜히 언론에서 더 떠들어대는 바람에 덩달아 휘둘리는 기분이 아니라, 올 여름은 정말 더웠다. 작년까지만 해도 잘 때 선풍기 타이머를 두어시간 쯤 해놓고 잤던 것 같은데, 올해는 타이머가 아예 필요없었다. 계속 틀어놓아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었고, 그러고도 더워서 곧잘 깨어나 잠을 설쳤다. 자는 내내 에어컨을 돌릴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깨어있는 동안은 말할 것도 없었다. 선풍기를 너무 오래 틀어놓아 모터에서 불이나는 건 아닐까 종종 걱정이 들어 선풍기 뒤통수를 만져보곤 했다.

 

게다가 뉴스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발전소가 고장이 났네, 전력수급량에 비상이 생겼네, 블랙아웃이 예상되네 어쩌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니 온 국민이 절전하라고. 하지만 이제 한국의 여름날씨는 에어컨 없이 견디기 정말로 어려운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착한 국민이신 왕비마마는 언론의 절전 권유에 적극 동참하여 최대 전력량 소모가 예상되는 오후 다섯시까지는 온몸이 땀에 절어도 끙끙 참았다가 5시 이후에 에어컨을 틀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일단 전기요금은 둘째 문제였다. 하루에 옷을 두번이나 갈아입을 정도로 땀을 흘려대니 노친네 기력이 어지간히 허해지는 것 같아서 나는 한낮에도 그냥 막 에어컨을 틀어댔다. 사람이 살고 봐야지 말이야.

 

왕비마마가 전력관련 국가정책에 적극 동참하고 따르는 건 아마 한전 자회사에 다니는 막내아들 때문일 것이다. 한전과 자회사들은 여름 내 에어컨을 안튼지 오래 됐대고, 조금이나마 전력 균형을 맞춘다며 점심시간도 아예 11시부터로 바꿨다고 한다. 특히나 천박한 취향 때문에 죄다 유리로 뻔드르르하게 지어 더욱 뜨거운 관공서도 에어컨 설정기온이 28도라지 아마. 하지만 대형 건물에서 에어컨을 28도에 맞춰놓으면 실내온도는 기껏해야 30도밖에 안 내려간다규! 옛날엔 한여름엔 은행이나 백화점으로 피서를 갔지만, 거기도 요즘엔 별로 갈 데가 못된다. 가뜩이나 자동화기기 사용을 유도하는 추세라 은행엔 가서 앉아있을 일도 없고 읽어볼 잡지책도 거의 없는 형편 아닌가. 가서 괜히 앉아있으면 직원이 다가와서 무슨 볼일로 왔느냐고 물어 내쫓기(민망해서 자진 퇴각하는 수밖에;;) 일쑤고 말이지. 백화점엔 가뜩이나 현란한 조명때문에 머리 위가 뜨끈뜨끈한데 냉방온도가 시원찮으니 오후가 되면 사우나가 따로 없다.

 

집집마다 에어컨을 잘 안트는 이유는 아마도 전기요금 폭탄 때문이겠지만, 전기요금을 감수하고라도 일단은 쾌적하게 사는 게 우선이라고 하더라도 나 역시 혼자 있을 땐 에어컨을 켤 엄두를 내지 못한다. 에어컨 한대 전력소비가 선풍기 22대와 맞먹는다나 뭐라나 하는 이야기도 들었고, 일단은 실외기에서 뿜어대는 열기를 생각하면 새삼 지구에 미안한 생각이... 환경파괴의 악순환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삶과 욕망이란 참...

 

하지만 그건 인간의 선택 문제라고 치고, 국가적인 전력난 사태의 책임을 늘 국민한테 떠넘기고 같이 고통을 분담하라는 식의 논리는 마음에 안든다. 발전소가 걸핏하면 고장나고 멈추고 했던 건 제대로 관리도 안하고 뇌물 받아처먹은 뒤 불량부품을 쓴 한수원 직원들 잘못 아니냐고! 게다가 해마다 전력소비량이 비상이라고 하는데(이건 난방기 많이 쓰는 한겨울에도 마찬가지다), 한 나라의 살림살이를 기획하고 예상하려면 최소한 점점 늘어나는 전력소비량도 미리미리 대비했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정말로 전력난이 가정집과 상업시설에서 펑펑 써대는 전기 때문이냐고! 새 원전건설이 계속 주민반대에 부딪쳐 수급량에 차질이 생겼다는 변명은 듣고싶지 않다. 대안없이 원전 건설만을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정했다면 그 또한 정책기획자들의 잘못이니까. 후쿠시마 사태를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오나? 

 

민자고속도로나 삐까번쩍한 다리를 건설할 때도 국가에선 항상 타산성과 교통량을 예측해 사업을 진행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대부분 엄청난 적자를 양산할 뿐 영낙없는 돈지랄만 한 경우가 많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예측 계산을 하길래?? (관계자들끼리 다 미리 짜고치는 고스톱이었겠지! 흥!)  쌩돈 들이고 쓸데없이 애먼 돈지랄만 한 국책사업의 단적인 예가 바로 아라뱃길이라고 생각하는데, 경인고속도로가 둘이나 뻥뻥 뚫려 있는데 서해에서 물길로 실어나를 물동량이 얼마나 된다고 한강 뱃길에 돈을 처들인단 말인가. 전문가가 아니라도 너무 빤한 일을 무작정 고집스레 시도하는 공공사업을 보면 정말 기가 막힌다. 국민 세금을 그토록 허망하게 허투로 다 써놓고는 또 만만한 서민들한테 세금이나 올려받으려고 하고! 

 

암튼 서서히 더위가 물러가려고 하고 있는 이때, 어딘가 발전소가 또 섰든 말든, 뉴스에서 뭐라고 떠들어대든 나는 공연히 더 화가 나고 열이받아서 오늘도(사실은 무던히 오래 참다가 못견디고 4시쯤) 에어컨을 켰다. 지들이 나랏일 잘못해놓고 노상 국민들한테 이래라 저래라 공동책임 지우려는 짓 좀 그만 보고싶다. 나라에 돈 없다고 하면 거국적으로 금모으기 하는 순진한 국민들 좀 그만 이용하란 말이닷! 블랙아웃, 전기요금 무서운 것보다 울집 노친네 병나는 게 더 무섭다! 젠장.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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