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미드나잇> 초반부에 에단 호크가 열네 살(열세 살이었던가?) 난 아들 헨리를 홀로 그리스 공항에서 떠나보내며 몹시 불안하고 안쓰러워하던 장면이 나온다. 거의 해마다 여름방학 때 그래왔던 아들녀석은 퍽이나 심드렁하고 의연한 태도를 보이는데, 속으로 난 심히 에단호크에게 공감하고 있었다. 어린애가 홀로 영국가서 비행기까지 갈아타고 대서양을 건너가야 가야하다니.. 아우.. 녀석, 정신 바짝 차려야하겠다. 녀석은 영어라도 잘 하니 큰 걱정은 없겠구나.. 그래도 히드로 공항 꽤나 복잡하던데... 그러면서.
중학생 조카가 곧 홀로 미국행 비행기를 탈 일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 나이로는 열여섯살이고 화장'빨'과 머릿'빨' 때문에 꽤나 성숙해보이긴 하지만, 서양나이로 따지면 조카도 겨우 열네살인데... 더 어린 아이들도 조기유학이다 어학연수다 해서 혼자 비행기 태워 멀리 보내는 강심장 부모들 많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소심쟁이 고모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가뜩이나 영어도 못하는 애를! ㅠ.ㅠ
그러다 심지어는 공항 픽업까지 내 차지가 되었다. 애 엄마와 동생은 이미 2주 전에 현지에 가있는 상황이고 애 아빠는 지방출장 중. 하필 비가 억수로 내려 와이퍼를 최고 속도로 작동해야 앞이 보이는 빗길을 달려 공항으로 향했다. 국제선 공항 터미널은 출국이든 마중이든 배웅이든 대체로 늘 설레고 기분 좋은 공간이었는데, 오늘처럼 짠하고 불안하고 못미더운 느낌에 복합적으로 휩싸인 건 처음이다. 왜 하필 또 아시아나 비행기는 최근에 사고가 나가지고 말이지...
헨리와 달리 조카는 다행히 직항이긴 하다. ^^ 미성년자는 일정 비용을 내고 도착지까지 공항 가이드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는데, 강하게 키우는 걸 신조로 삼은 올케가 알면 핀잔 줄 것 같아서 약간 망설이다 마다했다. 조카도 완전 어린애 취급 받기는 싫었는지 기특하게 괜찮다고 했다. 한편으론, 그래도 입국심사 예상 질문까지 연습시켰는데 뭔가 보람은 있어야지 않겠나 싶기도 했고. -_-;
째뜬 창가 좌석 배정받느라 비행기 앞쪽에 못 앉고 뒤쪽에 앉힌 것도 찜찜하고 (설마... 비행기 사고가 또 나지는 않겠지;;), 옆 사람 잘 사귀어서--부디 힘 좋고 친절한 젊은 사람이 앉기를-- 나중에 짐 찾을 때 컨베이어 벨트에서 여행가방 꺼내달라고 부탁하라고 했는데 파트너를 잘 만났는지도 걱정이고, 입국심사에서 좀 친절한 직원을 만나야 할텐데 라며 걱정하고 앉았다. 무사히 도착해 픽업나온 사람과 만났다는 연락이 오기까지 잠 자기는 다 글렀다. ㅠ.ㅠ
애들 해외 여름캠프 스케줄을 스스로 짜고 아예 따라가서 밥 해먹이고 운전기사 노릇까지 하는 애들 엄마도 나름 고생이겠지만, 난 아무래도 옛날 사람이어서 이렇게까지 학교도 왕창 빼먹고 방학도 하기 전에 어학연수인지 썸머캠프인지를 꼭 다녀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도 미지수고... 가능한 한 재미있고 신나게 '놀다' 오라고 일러두긴 했지만, 하여간에 열네 살에 홀로 열두 시간 쯤 지겹게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엘 가는 건 나 같으면 절대로 안하고 싶을 것 같다. 선뜻 홀로 합류하겠다고 동의했으니 조카는 마음이 다를까? ㅎㅎ 그럼 다행이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도착까지 이제 여섯 시간 남았는데 지상에 있는 내 어깨가 왜 결리는 걸까. 크헉, 못살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