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건

투덜일기 2013. 6. 10. 17:52

거창하게 환경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언제부터인가 손수건이 좋다. 누가 구세대 아니랄까봐 손수건에 얽힌 추억도 많다. 국민학생 때 어버이날 동네 시장에 가서 난생처음 산 부모님 선물도 손수건이었던 것 같다. 품목을 바꿔보겠다고 양말이나 부채로 선물을 바꾸었던 해, 예나 지금이나 사시사철 땀 때문에 손수건 없으면 곤란한 지경인 엄마는 그냥 손수건 사오지 그랬냐고 타박했다. 중학생 시절 똑같은 꽃무늬로 손수건과 부채 선물세트를 발견하고 반색한 적도 있는 것 같은데, 그걸 받고 엄마가 기뻐했었나 어쨌나는 또 기억나지 않는다. 암튼 엄마가 좋아하는 꽃무늬 손수건은 좀 낡았다 싶으면 내 도시락 보자기로 사용되었다. 얄팍한 시집과 함께, 이왕이면 백화점에 가서 예쁘게 포장해달라고 해서 사온 손수건은 부담없이 친구에게 선물하기에도 좋은 품목이었다. 시집 한권도 삼천원, 손수건 한장도 삼천원 하던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다.

 

중고등학생 때는 반짇고리와 함께 여학생 필수품으로 소지품 검사를 당하는 것이 공연히 억울하고 기분나빠서 종종 가방에 처박아 두는 물건으로 전락했지만, 더운 날 체육시간에 손수건을 뒷주머니에 넣고 나갔다가 어푸어푸 세수한 뒤 친구들과 돌려가며 닦은 다음 물기를 꾹 짜서 손목에 묶고 들어오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교실에 선풍기도 없던 시절이니, 덜 마른 축축한 손수건을 교복치마 척 걷어붙이고 무릎에 올려놓아도 좋았다. 겨울엔 할머니처럼 체육복으로 무릎을 감싸더니 여름엔 또 손수건이냐며 친구들은 꽤나 구박을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손수건 들고 다니는 남자에 대한 로망도 잠시 있었던 것 같다. 좀 닭살이 돋기는 하지만 벤치에 깔고 앉으라거나, 혹은 치마입고 잔디밭에 앉을 일 있을 때 무릎 덮으라고 손수건 꺼내주는 남자라면 무조건 가산점 팍팍 줄텐데, 라고 생각했던 거다. 물론 현실에서 그런 '어린' 남자애를 본 적은 없다. 당연하지! 깨끗한 티셔츠 입고 다니는 것도 어려운 녀석들이 어떻게 손수건씩이나 챙기겠나. 만약에라도 그러는 경우가 있다면, 그건 분명 집안 여자들(손수건 다려주는 엄마나 누이)의 노동을 담보로하기 십상이다.

 

다림질을 워낙 싫어하고 못하는 축이라, 예전에 엄마가 좀 부려먹을라고 하면 요리조리 핑계를 댔지만 다리미 남은 열로 어려울 것도 없는 손수건이라도 문지르라고 하는 것까지 거부할 순 없었다. 이미 엄마는 땀을 한바가지나 흘리고 난 다음이었으니 뭐;;  째뜬 내가 손수건을 대강 다리미로 펴고 있노라면 엄마는 서랍에서 온갖 손수건을 죄다 꺼내놓았다. 다림질도 신부수업이라나 뭐라나. 나 시집 안갈 건데! 버럭 화를 내면서도, 한번 쓰면 금세 망가질 손수건을 왜 굳이 다려야 하냐고 투덜거리면서도 내 손수건까지 다 꺼내 곱게 다려 쌓아놓으면 뿌듯하긴 했다.

 

아버지 정년퇴직 직전까지 몇해 동안 일주일치 와이셔츠와 손수건 한꺼번에 다리기는 당연히 무수리인 내 몫이었다. 아버지 옷들은 전부 다 처분했지만 손수건은 새것 헌것 할 것없이 엄마랑 내가 모두 나눠가졌다. 난 원래도 앙증맞은 꽃무늬 손수건보다는 무늬 단순하고 큼지막한 남자손수건이 더 좋아서 종종 아버지 손수건을 훔쳐 넣고 다녔다. 그리고 손수건은 좀 오래 써서 길이 들어야 잘 닦이고 손에 착 감기는 맛이 있다. 뻣뻣하고 물기도 잘 안먹는 새 손수건을 제대로 길들이려면 최소 열번은 빨아야 하는 것 같다. 작년이었나, 생일선물로 뜬금없이 손수건을 사달라고 했던 후배를 따라 정말로 간만에 백화점 손수건 코너엘 갔었다. 내 돈 주고 마지막으로 손수건을 산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질 않아 통 시세를 몰랐는데, 아 글쎄 손수건 한장에 만원에서 만오천원! 수십년 전 물가를 생각하면 뭐 그럴만도 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백화점 할인매대엔 종종 드러누워있는 만원짜리 티셔츠도 허다하건만 손수건 한장에 만원을 넘다니 ㅎㄷㄷ 어쩐지 아깝단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후배는 예쁜 손수건을 어렵사리 다섯 장 골라 담으며 만원짜리 티셔츠 다섯장 사는 것보다 훨씬 더 만족도가 크다고 장담했다.  

 

암튼 연일 30도를 넘는 무더운 여름이 시작됐고, 겨울엔 종종 들고 나가는 걸 까먹는 손수건을 요샌 나갈 때마다 챙겼더니 세탁기 돌려 널어놓은 빨래 건조대에 알록달록 손수건 세 장이 정겹고 예쁘다. 엄마는 손수건을 매일 세수할 때마다 빨아 너는 분이라 다 내것이다. 두 장은 아버지가 쓰시건 건데, 유독 색깔이 고운 체크무늬 손수건 한장은 열여섯 살 먹은 첫조카 침 질질 흘리던 아기 시절 목에 묶어 주었던 거라는 게 생각났다. 15년쯤 묵은 손수건이라는 뜻이다. 작년에 후배 따라 충동구매한 '비싼' 손수건은 아직도 길이 들지 않아 선뜻 손이 가지 않아 서랍속에서 외면을 당하고 있다. 자꾸 써줘야 길이 들텐데, 선뜻 손이 가는 건 대체로 5년 이상 묵어 촉감이 부드러운 옛날 손수건이다. 하루에 손수건을 두장씩 쓰는 엄마도 자꾸 쓰는 것만 쓰게 된다고 한다. 하도 오래되어 나달나달 올이 다 미어질 정도가 되면 흡수력도 오히려 최고조.

 

얼마 전 너무 낡아 드디어 찢어지게 생긴 손수건 한장을 버리면서 엄마는 본전을 백번은 뽑았겠다고, 그러니 버려도 아깝지 않다고 하면서도 아쉬워했다. 구관이 명관인데... 라면서. 낡은 물건과 본인을 동일시하게 된 노년의 엄마는 그렇다치고, 대체 난 왜 오래된 물건에 미련을 떠는지 참 그걸 모르겠단 생각을 또 한번 하게 된 손수건 이야기. 마무리가 안되서 이걸로 끝. ㅋㅋ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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