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이 좋아서

삶꾸러미 2013. 3. 25. 18:00

혹시 나처럼 궁궐이, 또는 한옥이 좋아서 궁궐 전각 청소라도 하면서 가까이서 보고 싶어한다거나 궁궐 한옥과 관련된 공부에 마음이 동하는 사람이 어쩌면 또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요번에 내 경우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덜컥 일을 저지르고 났더니만 공부할 땐 좋았는데, 이젠 뭔가 막 끌려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좀 당황스럽다. 원래 원했던 것이 이거였나 싶기도 하고, 궁극적인 목표(일반 관람객에게 공개되지 않는 궁궐 공간에 발을 들이는 것!)를 달성할 때까지 일단 참으며 계속 따라가보아야 하는 것인가 아닌가 줄곧 의문이 든다.

 

내가 멍청해서 그렇지, 요즘 사람들이야 검색 능력이 워낙 뛰어나므로 마음만 있다면 자신이 원하는 방식을 잘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내가 겪어보니 단체와 경로도 워낙 많아 실제로 경험하기 전에는 뭐가 뭔지 아리송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제야 좀 알게 된 문화재 관련 민간활동의 차이와 접근법을 좀 적어놓을까 한다. 누구에게든 도움이 되면 다행이고, 나중에 혹시라도 내가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 뭔가 또 다른 방법을 찾아볼 때 한 쾌에 필요한 정보를 기록으로 남기려는 속셈도 있다. 

 

하여간에 궁궐이나 문화재, 박물관에 관심이 있고 그것과 관련된 교육을 받거나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찾아가보아야 할 곳은 문화재청(http://www.cha.go.kr/cha/idx/Index.do?mn=NS_01) 홈페이지다. 궁궐과 한옥, 기타 문화재, 유적지에 관한 모든 정보가 다 망라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그와 연계된  NGO와 재단에 대한 링크와 소개도 찾아볼 수 있다. 문화재 관련 자원봉사 공지는 대부분 문화재청 게시판에도 동시에 올라온다. 종종 무료 인문강좌 안내도 올라와서 나는 그걸 노리고 들락거리다 그만 궁궐을 '지키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받는 교육을 알게 되었다. ^^

 

처음 내가 알고 있던 단체는 아름지기(http://www.arumjigi.org/). 

창덕궁이 워낙 내가 좋아하던 궁궐이라 거길 청소하려면 아름지기 자원봉사 회원이 되는 수밖에 없는 줄 알았었다. 그런데 회원을 연중내내 모집하는 게 아닌데다 대체 언제 모집하는지 통 잘 모르겠고(알아보면 늘 모집 끝났다고 나왔다. 흥!) 연회비(12만원)도 내야한대서 일단 마음을 접었었다. 처음에 어느 대기업이 세운 재단이라는데 내가 별로 안좋게 보는 대기업이란 것도 마이너스 요인.

하지만 현재는 후원기업의 목록이 상당히 많고 문화재 주변 환경정리사업 뿐만 아니라 한옥 보급, 한옥 운영 같은 것도 함께 한다. 한옥체험을 할 수 있는  함양한옥이 바로 아름지기가 운영하는 곳이다. 아무래도 '재단'이다보니 영리사업도 하는 게 아닐까. 회원이 되면 함양한옥 숙박비도 약간 할인된다는 것 같다. 헌데 여기선 문화재나 역사 관련 교육도 매번 돈을 내고(1만원 정도) 신청해서 들어야 한다. 그나마도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일반인 상대 교육을 요샌 거의 안하는 것 같다. 요즘 질 좋은 무료강좌가 얼마나 많은데 돈까지 내가며 듣겠나. ㅎㅎ

 

알고보니 자원봉사를 청소수준에서만 그치고 싶었다면 내가 찾아갔어야 하는 단체는 따로 있었다. 바로 문화재청에서 운영하는 '한문화재 한지킴이'(http://jikimi.cha.go.kr/community_new/newCafeMainList.action)

주요 문화재를 하나씩 기업체 하나가 맡아서 관리하고 있기도 하지만 개인이나 가족 지킴이 신청도 받는다. 문제가 있다면 관심 있는 문화재를 딱 한 군데 지정해서 활동해야한다는 점(하기야 궁궐해설사가 된다해도, 궁을 한군데만 정해서 해야한다. 몇년쯤 경력이 쌓인 다음에 소속을 바꿀 수야 있겠지만;;). 게다가 문화재 지킴이를 신청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일정한 심사를 거쳐서 통보를 해준다고 한다. 창덕궁 같은데는 바로 옆에 있는 현대에서 맡아서 지킴이 봉사한다고 들었는데 개인이 신청한다고 창덕궁 청소활동에 붙여주기나 할지 그건 미지수다(그러고 보니 창덕궁 도배랑 청소 같은 건 아름지기 전담이라던데, 어떻게 활동영역을 나눴는지는 알수 없다). 하여간에 이 제도는 자기가 사는 곳 주변의 문화재나 유적지를 아끼고 보호하는 활동을 권장하기 위함이란다. 정부 주도의 커뮤니티 활동이므로 유료회원제도는 아닌 것 같다만 끝까지 가입해보질 않아 확실하지 않다. ^^; 내가 궁궐 전각 청소를 빌미로 문화재에 좀 들어가볼 작정으로 공부 시작했다니깐, 다들 그럼 한문화재 한지킴이를 했어야 했다고 조언해주었다. 쩝;;

 

다음으로는 '우리궁궐지킴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사단법인 한국의 재발견(http://www.rekor.or.kr/)이 있다. 4대궁궐과 종묘에서 해설 자원봉사를 주 활동으로 하고, <우리문화사랑방>이라고 해서 한달에 한번(매월 셋째주 토요일 3시-5시) 일반인 대상으로 무료 인문강좌도 여는 단체다. 이곳에서 두어달 간 소정의 교육을 받고(교육비 15만원) 6개월 수습활동까지 거치면 궁궐 해설사 자원봉사를 하게 된다. 한달에 만원씩 회비도 내면서... (아름지기 연회비가 12만원인 걸로 보아 유사 단체들 모두 그게 적정 회비 수준이라고 정했나보다. 혹시 이것도 담합? ㅋㅋㅋ) 궁궐과 종묘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 담당 요일은 금요일과 토요일. 지원자격은 18세-65세 사이, 교육생 모집은 해마다 연말에 있는 듯. 정식으로 궁궐해설사가 되어 자원봉사를 하게 되면, '한복'이나 최소한 '생활한복'을 입고 활동해야 한단다. 궁궐을 안내하는 자원봉사자에 대한 문화재청의 요구사항이라고. (헌데 잠깐 딴소리를 하자면, 경복궁의 경우 문화재청 소속일 듯한 해설사 직원들은 한복을 입지 않는다! 가만보니 검은색 코트를 유니폼으로 입는다. 창덕궁 해설사들은 다 한복을 입던데, 왜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세계문화유산 지정 유무의 차이일까? 암튼... 유료 해설사들은 한복 안입고 설명하는데 자원봉사자들은 반드시 한복을 입으라고 요구하는 것도 웃긴다! 흥)  

 

궁궐지킴이의 종류는 또 있었으니, '궁궐길라잡이(http://www.palaceguide.or.kr/)'라고 원래 한국청년연합(KYC)에서 운영하던 NGO인데 따로 독립했다는 것 같다. 암튼 여기도 똑같이 15만원의 교육비를 낸 뒤 총 8개월간 이론교육과 실습교육을 마친 다음에 무료 궁궐해설사로 활동한다. 활동 요일은 일요일. KYC에서 시작한 터라 궁궐지킴이보다 상대적으로 궁궐길라잡이의 연령대가 낮다고 들었다. ^^; 그러나 교육생 지원자격은 '성인'으로만 되어 65세로 제한이 있었던 한국의 재발견보다 오히려 더 탄력적이다. 교육생 모집은 해마다 같은 시기가 아닌듯, 올해는 2, 3월에 모집 공고가 났고 최근 60명을 선발했다. 여기도 교육 마치고 해설사로 활동하려면 회비를 내야하는데 학생 5천원, 성인 만원. (오, 학생한테 유리하군! 그러나 방학도 아닌데 어찌 교육을 받으라고 쯧쯧쯧;;). 여기도 정식 궁궐해설사로 자원봉사를 할 때는 생활한복을 입어야 한다. 궁궐지킴이들은 각자 취향에 맞는 한복과 생활한복을 입는 반면, 궁궐길라잡이들은 생활한복 유니폼이 정해져 있는 듯하다. (결정적으로 내 눈엔 심히 안 예쁘다. 내가 변형한복을 마뜩찮게 여기기 때문일 수도;;)

 

뿐만 아니라 궁궐문화원(http://gungstory.com/common/main.asp)도 있다. 여긴 어린이와 청소년 궁궐학교와 체험학습을 좀 더 세밀하게 운영하고 있는 듯, 청소년 궁궐기자단 같은 것도 모집한다. 궁궐에서 자원봉사할 문화해설사를 교육하고 훈련하는 역할은 위 단체들과 똑같다. 창경궁 내에 궁궐문화원이 있다고 하는데, 교육받는 공간이나 사무실 같은 것들이 대체 어디 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사회적 기업이라서 무려 궁안에 사무실을 차리게 해준 건가? ^^

어쨌거나 여기도 지난달엔가 궁궐 해설 자원봉사자 교육생을 모집했다. 00명이라고 공고가 났던데, 신청인원이 적었는지 최종 선발인원이 그리 많지는 않다. 똑같이 10주 정도 기본교육을 받은 뒤 6개월 현장 수습기간을 거쳐, 궁궐해설사로 활동하는데, 종묘를 제외한 4대 궁궐에서 매주 목요일에 자원봉사를 하게 된단다. 역시나 지정 복장을 해야한다는 걸 보니, 자원봉사 활동시에는 한복을 입어야하는 모양이다(맞다, 문화재청의 권고사항이랬지;; ㅋ). 자원봉사 이외에도 여기는 '문화유산 체험학습지도사', '궁궐숲해설사' 같은 자격증을 따기 위한 전문가 양성과정도 있고, 관련 자격증도 발급하는 모양이다. 자원봉사가 아니라 나중에 이런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쪽으로 접근해야 할 듯.

 

그밖에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서울민속박물관, 서울자연사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과천현대미술관... 기타등등 온갖 박물관과 미술관에서도 자원봉사 해설사를 모집하고 있으며, 간간이 유무료 인문강좌를 연다. 왕릉에 대한 수업도 있고, 기획전시 일정에 따라 특정 시기의 유물에 대한 강좌도 있다. 시간과 에너지만 허락된다면 찾아다니면서 들어볼만한 인문강좌가 참 많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각종 문화센터에서 개설한 인문강좌도 많고, 아예 문화해설사 과정도 따로 있더라. 인문학이 외면을 받고 죽어간다고 한쪽에선 난리지만(흔한 말로 "요즘 인문학을 공부하면 하버드 학위가 있어도 취직이 안돼!"라고들 한다.) 현실에선 분명 인문강좌에 대한 수요가 꽤 많다는 얘기다. 이 또한 내겐 좀 의아하고 신기했다. ^^

 

나로선, 아니, 내 돈 내고 생고생하는 자원봉사를 빡세게 교육까지 받아가면서 대체 왜??? 라는 의문이 먼저 들지만, 사람들은 의외로 참 이타적인 삶을 추구하나보다. 타인을 위한 봉사가 곧 자신을 위하는 길인지 어쩐지, 나는 아직 그런 숭고한 이념 같은 건 모르는 사람이라 기묘하기만 한데 눈 씻고 찾아보면 자신의 흥미에 맞게 찾아할 '봉사할' 일은 널려있는 듯하다. 정부와 지자체가 해야할 일을 시민에게만 떠맡기는 건 아닌가 나 같은 삐딱이는 좀 의심스럽지만 뭐 다들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데 어떡하겠나. 너도나도 재능기부가 유행인 것을. 나처럼 깊은 생각 없이 기웃대는 사람은 오래 버텨내지 못할 것임을 잘 알지만 암튼 당분간은 재미난 구경 다니는 셈치고 지켜볼 작정이니 앞날이 자못 궁금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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