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11.23 잘 될까 15
  2. 2012.10.10 아등바등 2

잘 될까

투덜일기 2012. 11. 23. 22:54

이젠 어느 동네엘 가도 잘 찾아볼 수 없는 소형 서점이 최근 우리 동네에 생겼다. 제법 큰 플래카드를 두어 군데나 붙여놓고 개업을 알리는 서점이 걱정스럽고도 신기해서 일부러 언덕을 넘어 구경을 갔었다. 옛날 내가 다니던 학교앞 책방처럼 학습지 교재와 잡지가 주요품목이고, 잘은 모르지만 베스트셀러 신간 정도는 갖추어 놓은 것 같았다. 늦은 오후, 비좁은 책방에 당연히 손님은 한명도 없어서 차마 들어가도 될까, 인사 받고 들어가서 구경만 하고 나오면 안될텐데, 누구든 손님이 들어가면 따라 들어가야지 마음먹고 버스 기다리는 척 한참을 기다렸으나 손님이 한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괜히 들어갔다가 읽지도 않을 책이나 잡지를 집어오기도 뭣하고, 딱히 사고픈 책(있느냐고 물어볼;;)도 생각나지 않아서 결국 줏대없이 그냥 돌아섰다.

 

얼마전엔 오래도록 비어있던 동네 입구 상가 한 귀퉁이에 '이탈리아 수제 버거'집이 생겼다. 응? 햄버거가 이탈리아 음식이었나? 의문도 잠시, 입구에 나무데크를 깔고 인테리어에도 꽤나 신경을 쓴 그 가게가 걱정스러워서 나는 오갈 때마다 안을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주민이라고는 노인들이 대부분인 강북의 오래된 주택가가 하루 중 활기를 띠는 때는 언덕 꼭대기에 있는 중학교 여학생들이 등하교를 할 때 뿐이고, 하나 있는 치킨집마저도 장사가 잘 안될 지경인데 햄버거집이라니. 마치 영화 <카모메 식당>을 보듯 매번 부지런히 빈 테이블을 닦거나 주방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두 여인을 슬쩍 훔쳐보며 안타까웠다. 이미 '수제 햄버거'로는 동생이 뜨거운 맛을 본 뒤라 남일 같지가 않았다. 여중생들이 먹어봤자 떡볶이랑 김밥일 텐데 대체 누굴 대상으로 가게를 열었을까?

 

처음 한달은 통 손님이 든 모습을 못보겠더니 그래도 두어달 지난 요즘엔 커피잔을 앞에 두고 수다를 떠는 사람이나 유치원 끝난 아이를 데리고 들른 엄마 손님 한 둘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가끔 보였다. 나만큼이나 그 햄버거집을 염려하던 울 엄니('수제' 햄버거집은 웬만해선 곧 망한다고 굳게 믿고 계심;;)는 오지랖 넓게도 바로 옆에 있는 미용실 아줌마를 통해 정보를 입수해왔다. '수제' 햄버거가 '단돈 천원'부터라 여중생들이 곧잘 사먹긴 하는데 그래봤자 임대료나 나오겠느냐고, 인건비까지 뽑긴 어려울 거라고. 커피는 맛있다더냐는 내 질문에는 대답을 얻지 못했다. 하기야 나도 커피 한 잔 안팔아주면서 말로만 걱정은!  

 

부디 내가 볼 때만 유독 그런 것이라면 좋겠으나 대부분 '개점 휴업' 상태가 분명한 두 가게를 보며 요즘 내 상황과 뭐가 다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서, 주로 자고 먹고 놀고 쉬고를 반복하는 나날을 본격적으로 즐긴지 한달이 좀 넘었다. 말로는 거창하게  나도 안식년이라는 것 좀 누려보자고 했지만, 엄밀히 따지면 개점휴업, 그냥 일이 없어 노는 것과 뭐가 다른가?

 

굳이 변명을 하자면 친구의 휴가에 맞춰 일을 빼느라 꼼수를 부리긴 했다. 허나 휴가가 한두달도 아니고 겨우 2주였으니 핑계거리밖에 안된다는 걸 잘 안다. 그러고는 순전히 일을 하기가 싫어서, 이미 너무 늦어버린 계약마감에 쫓기는 게 숨막혀서, 아니 나도 나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고 출판 담당자만 계속 물먹이는 상황이 죄스러워서, 결국 두 건은 계약금 돌려주고 일을 포기했다. 사실 한권은 절반 이상 진행된 상태라 아까운 마음도 들었지만 멀미가 나서 다시는 부실한 원고륻 들춰보고 싶은 마음도 안드는 상황을... 과연 누가 이해해줄 수 있을까. 출판 담당자에겐 천인공노할 죄를 진 셈이지만 암튼 그땐 그랬다.

 

 그런데 그러고도 이상스레 마음은 편했다. 막연한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17년간 번역일을 해오면서 한번도 사라지지 않은 조바심과 다를 바 없다. 아무도 내게 일을 주겠다고 찾는 사람이 없으면 어쩌나, 과연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은 모든 프리랜서의 숙명적인 고민이 아니겠나. 원숭이 줄타기의 법칙을 아무리 고수한들 언제고 한두 번은 떨어지게 돼있다. 더욱이 단군이래 최대불황이라는 출판계의 비명은 그저 엄살이 아니라 해마다 변함없이 현실로 나타난다는 걸 왜 모르겠나. 그런데도 이 엄혹한 마당에 안식년을 즐겨보겠다는 용기가 참 가상할 지경이다. 

 

잠자리에 들어서 오늘 과연 뭘 했나 돌이킬 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무위도식하며 사는데도(어쩌면 그러기 때문에;;), 생각보다 하루는 참 빨리도 지나간다. 컴퓨터와 인터넷 없이는 단 하루도 못 살것 같더니만, 일하기 싫어서 게으름 부릴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며칠씩 컴퓨터를 켜지 않아도 아무렇지가 않다. 대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긴 하지만, 부쩍 심해진 노안 덕분에 작은 화면으론 뭘 오래 보기도 어려우니 그 문제는 저절로 해결이 됐다.

 

뭘 좀 배울까, 운동을 할까, 텅빈 머리는 어떻게 채울까, 여행을 갈까, 빈한기의 삶은 어떻게 유지해야 좋은가, 별로 힘들이지 않고 허투루 하는 생각들은 당연히 아무런 결과도 낳지 못한다. 그저 궁금할 뿐이다. 우리 동네 서점과 동네 수제햄버거집처럼 나의 안식년도 과연 잘 될까, 하고. 그러고는 이내 눈을 질끈 감는다. 잘 되겠지 뭐. 서점과 햄버거집 주인들도 아마 그렇게 믿고 있을 것이다. 누구나 결국엔 죽지만 죽으려고 사는 사람은 없듯이, 잘 안되려고 뭔가를 벌이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나. 나는 다만 뭔가를 '벌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되는 일이다. 해보니 그건 퍽이나 쉽다. 무위도식, 이게 딱 내 적성이었는데 그간 몰랐던 게 한이로다. 

Posted by 입때
,

아등바등

투덜일기 2012. 10. 10. 10:51

 

 

지난 여름 생일에 지우가 선물한 그림.

난 무대체질도 아닌데, 내 평생 외발자전거는 타본 적도 없는데, 그림 속의 나는 외발자전거를 타고 높은 언덕을 오르내리며 저글링까지 하고 있다. 운동신경 젬병인 고모를 저런 모습으로 담아준 것이 그저 고맙고, 녀석의 뛰어난 상상력을 신기해하며 줄곧 냉장고에 붙여두고 흐뭇해하기만 했었다.

 

그런데 요즘 문득 쳐다보며 어린 조카의 혜안(?)이 참 놀랍구나 싶어졌다. 잘 타지도 못하는 외발자전거에 올라 공을 세개나 허공으로 던지고 받느라 아등바등... 얼굴은 웃고 있지만 언제 넘어질지 위태롭기만 하다. 딱 요즘 내 모습이 아닌가. 이 다음 장면에서 난 분명 저 높은 언덕을 오르지 못하고 자빠져 피를 철철 흘리고 있을 거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당분간 아등바등 몸부림은 그만둬야겠다. 철푸덕!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