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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투덜일기 2016. 12. 30. 16:53

친구들이랑 택시를 탔다. 난 앞좌석에, 둘은 뒷자리에. 남은 커피를 챙겨나오는 거에 집중하느라 하마터면 가방을 카페 의자에 버리고 올 뻔했던 내가 정신없음을 자책하자 친구가 택시 안에서 위로담을 건넸다. 겉옷 주머니가 얕아서 며칠 전 핸드폰을 언니 차에 떨어뜨리고 내려 되찾아오느라고 광주행 고속도로를 탔던 차를 되돌려 세워야했다나. 이제 우리가 그런 나이인 거지! 각별히 조심해야 해..라고. 

미술관이 있는 평창동에서 택시를 내려 건물로 올라가려는데 친구가 비명을 질렀다. "내 핸드폰!" 방금 전에 얘기했던 대로 주머니에서 또 휴대폰을 빠뜨린 거다. ㅠㅠ 친구 휴대폰으로 계속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진동' 모드로 뒷좌석에 떨어뜨린 휴대폰을 택시기사님이 받을 리 만무했다. 손님이 뒷좌석에 타고 발견한다면 모를까...

다행이었던 건 내가 택시요금을 티머니 후불신용카드로 결제했다는 것. 혹시나해서 카드사로 전화를 걸었다. 방금 결제한 택시 회사나 연락처를 알 수있겠느냐고...  급히 알아보고서 전화번호를 문자로 보내주겠다는 상담원의 긍정적인 대답. 연락처 수배에 좀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다고 했다.

일단 우린 예약한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들어갔다. 막연하게나마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예감도 들었지만, 요즘 스마트폰 택시에 두고 내리면 중국쪽에 2-30만원 받고 팔아버려서 찾기 어렵거나 기사에게 사례금을 엄청 내고 돌려받아야 한다더라는 난감한 이야기가 오갔다.

드디어 카드사에서 문자가 띠리링 날아오더니 문자 확인할 새도 없이 곧장 상담원이 전화를 했다. 개인택시 단말기라 기사님 전화번호를 보냈다고!! 오옷 문자를 보니 차량번호와 휴대폰 번호가 나란히 찍혀 있었다!! 아 진짜 좋은(어쩌면 무서운?) 세상이로구나!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고, 택시 기사님과 통화가 되었다. 뒷좌석에 휴대폰 떨어진 게 있느냐 물으니, 다행히 있단다. 기사님은 당연히 몰랐고 곧이어 탄 손님도 모르고 깔고 앉아 있던 걸 발견한 거란다. 야호! 일단 손님을 압구정에 내려주어야한다고 해서, 당연히 그러시라고... 압구정에서 미터기 작동시키고 다시 평창동으로 와주시라고... 그렇게 부탁하고는 편한 마음으로 밥을 먹었다. 

물론 사례금을 얼마나 드려야하나 친구는 고민을 했다. 당연히 택시비는 드려야하지만, 개인택시의 차량번호와 휴대폰 번호까지 우리가 다 갖고 있는 마당에, 요즘 속설대로 수십만원의 사례비를 요구하진 않을 거다...라고 짐작했다. 한 친구는 그냥 압구정에서 평창동까지 택시비만 줘도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근데 그건 아니지 않나? 온갖 사진과 (친구는 휴대폰 사진도 작품 수준으로 찍는 사람이다;;) 연락처와 추억과 신용카드까지 한 장 들어 있는 휴대폰을 무사히 찾았는데! 

친구는 갖고 있는 현금이 5만원밖에 없다면서 그냥 5만원을 드리겠다고 했다. 내 생각에도 합리적인 것 같았다. 드디어 3, 40분 뒤 택시 기사님의 전화가 내 휴대폰으로 걸려오고, 우린 밥을 먹다말고 (사실 길 막히고 다른 영업도 하신다면 1시간 이상 걸려서 돌아오실 줄 알았는데;;; ) 뛰쳐내려갔다. 

기사님께 거듭 감사인사를 하고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손을 흔들어드렸다. 기사님은 영수증도 안 받아갔으면서 자기 휴대폰은 어떻게 알았는느냐고 놀랐다고 하셨다. 택시요금은 만오천원쯤 나왔던데, 친구가 가진 현금이 5만원 뿐이라 죄송하고 감사하다며 드리자 기사님도 좋아라하시는 눈치였다. 최근 누가 휴대폰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경우는 처음 목격한 거다. 택시든 길바닥이든 버스든... 두번 다시 못 찾았다던데 우와... 정말 다행이었다.

요번에 깨달은 게 많다. 

1. 택시 요금 결제는 무조건 카드로! 택시를 거의 타지 않지만 어쩐지 짧은 거리를 타고 가면 수수료 어쩌고 하는 게 미안해서 카드보다는 현금으로 지불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앞으론 무조건 카드로 결제할 테닷!!! 

2. 카드회사에서 걸려오는 상담원 전화를 친절히 받아야겠다. ㅠ.ㅠ 가끔 카드론 해준다고, 아니면 보험상품 나왔다고 전화오는 게 대부분이라 엄청 쌀쌀맞게 끊어버리곤 했는데, 우왕... 카드 결제 택시 단말기 확인하면 정보가 그렇게 다 뜨는 건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암튼 득달같이 택시 번호판과 기사님 휴대폰 번호까지 다 알려줘서 순식간에 핸드폰을 찾을 수 있었으니, 이번 사건의 최대 공헌자는 삼성카드 상담원 김지연님이시다. 좀 전에 고객 응답 설문 메일에서 이름 확인! 카드 회사 게시판에 찾아가 감사의 인사라도 올려야겠다. ;-p 

3. 깜빡깜빡하는 아줌마형 건망증이 아주 극에 달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나도 휴대폰이며 가방이며 어따 잃어버리고 징징거릴지 모르겠다. 그날 친구는 버스에서 내리며 장갑 한짝을 또 좌석에 흘리고 내렸었다. ㅠ.ㅠ 모두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 서글펐다.  

4. 택시에 휴대폰 두고 내리면 10중 8,9는 중국에 팔려간다는 얘기는 아무래도 과장된 것 같다. 이렇게 정보가 다 뜨는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하지? 택시기사님들도 괜히 억울하지 않을까? 택시를 타려거든 회사택시 말고 개인택시만 골라타라는 이야기는 옛날부터 있었는데... 이번 경우에도 해당되는 걸까 아닐까 그건 좀 궁금하다. 

겨우 한 가지 사건으로 막 일반화하는 경향은 좀 우습지만, 암튼 친구가 휴대폰과 신용카드를 잃어버렸다가 무사히 되찾은 사건 하나로 우린 또 이 세상이 아직은 좀 살만한 곳이라는 결론을 '함부로' 내렸다. 새해엔 짤려야할 인간 확실히 짤리고 더 나은 세상이 되어가길!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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