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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투덜일기 2014. 2. 14. 17:35

일주일이 아직 다 가지 않았는데, 직딩 시절 월요일부터 연일 야근에 시달리다 맞은 금요일처럼 축 늘어진 파김치 신세다. 그간은 약간씩 '기운'만 돌다 말았을 뿐 매번 내가 먹어대거나 푹 쉬거나 하는 수법으로 늘 물리쳤던 감기가 드디어 내 면역력을 넘어섰다. 다행히 요즘 유행한다는 독감은 아니고 그냥 지저분한 콧물감기. 요란한 재채기 몇번 이후 코찔찔 흘리느라 목소리가 변했다. 코를 풀다풀다 지쳐 코주변에서 껍질이 벗겨질 때쯤이면 감기가 떨어지겠지.

 

조카의 중학교 졸업식에 갔었다. 삐까번쩍 멋지게 들어선 아트센터 건물에서 거행된 졸업식은 어쩜... 수십년 새 그렇게 하나도 안변했을 수가 있나. 심지어 더 나빠진 것 같다. 예전에도 애국가를 4절까지 다 불렀던가? 어쨌거나 저 아래층의 학생들도 2층 객석의 나도 몸을 배배 틀며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개그콘서트에서 박지선이 늘 "몸이 고생을 기억해요~" 따위의 대사로 웃기는데, 30년 넘게 부를 일 없었던 교가와 졸업식 노래가 다 기억나서 깜짝 놀랐다. 하와이 민요에 붙인 그 졸업노래는 딴 데 가서도 진짜 들을 일 없을 텐데 ㅋ.

 

식이 끝난 후 멀고먼 교실 건물까지 또 낑낑대고 따라가서 보니 여전히 복도는 좁아터져 학부형들로 발디딜 틈조차 없었고, 저 안에 어떻게 70명이 바글거리고 앉았나 싶게 교실도 작았다. 이제는 학생 수가 그 절반도 안되는 30명이라던가. 왁자지껄한 교실엔 그래도 누군가 풍선도 매달고 '선생님 사랑합니다'라고 적힌 종이도 붙여 놓았고 교탁에 케이크도 놓여 있었다. 하지만 앞에서 담임이 뭐라고 하건 말건 지들끼리 수시로 왁왁 괴성을 질러대는 아이들이 나는 조금 무서웠다.

 

모든 게 끝나고, 싫다고 도망치는 조카를 애써 담임 옆에 세워놓고 사진을 찍었지만 당연히 흔들려 하나도 건질 게 없다. 괜히 찍으라고 그랬나.

 

 

 

돌아오는 길에 봐온 장으로 어젠 또 종일 대보름 먹거리를 준비했다. 여름부터 엄마가 말려놓은 호박, 가지, 시레기, 나물 3종세트에 콩나물과 시금치를 더해 5종 세트 완성. 9가지엔 못미쳐도 그나마 작년보다 한 가지 더 많아졌다. 냉장고가 그득하니 안먹어도 배가 부른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지금 배가 부른 건 오곡밥을 하도 많이 먹어서지만...

 

고된 일주일을 씩씩하게 보낸 나에게 장하다고 뭔가 상이라도 줘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날짜를 보니 발렌타인 데이. 옳다구나 냉장고를 열어 친구가 보낸 초콜릿을 한귀퉁이 쪼개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달콤쌉싸름한 카카오의 맛이 고단함을 달래 잠시라도 영혼을 말랑말랑하게 해주기를.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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