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자고싶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04.30 뇌우 9

뇌우

투덜일기 2011. 4. 30. 05:45

토요일에 비가 꽤 온다는 일기예보는 들었지만 요란한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릴 것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밤중부터 뒷베란다 섀시를 두들기는 빗소리가 매우 요란한 비가 내리며 간간이 천둥벼락이 쳐댔다. 천둥을 유독 무서워하는 사람은 아닌데도 공연히 겁이 났다. 번개가 치는 순간 두꺼비집이 내려앉는 건 아닌가, 찌르르 벼락이 전선이나 케이블을 타고 들어와 컴퓨터를 태워버리는 건 아닌가 갖은 상상을 다 하느라 통 집중이 되지 않았다. 멀리서 그르르릉 천둥의 전조가 시작되면 몸이 먼저 긴장을 했다. 그러다가 천둥이 치면서 내리는 비를 뜻하는 말이 뭐였더라, 뭐였더라 생각이 나질 않아 또 한참 정신 끄나불을 한 자락 풀어놓았다가 끝내 방금 떠올렸다. 그렇다. 뇌우(雷雨). 몇시간 만에 생각해낸 주제에도 기뻐하다 보니 빗줄기도 얇아졌는지 소리도 덜 요란하고 천둥번개도 잠잠하다. 그러면 뭐하나 온 새벽을 다 황망히 허비하고 나서 머리는 이미 멍해진 시간인 걸. 파랗게 밝아오는 새벽에 느껴지는 묵직한 피로감은 때로 쾌감일 때가 있다. 몸과 정신을 꽤 잘 쓰고 나서 마땅한 휴식을 취할 준비가 됐을 땐 그러하다. 그럴 때 이부자리에 누워 몽근한 잠에 빠져들면 온 세상이 내 것처럼 뿌듯하고 행복하다. 그러나 오늘은 아직 그런 행복을 느낄 자격이 없다. 멍해진 머리를 다시 바짝 조여야 한다. 어렵사리 뇌우 하나 떠올렸다고 기특해할 게 아니라 그걸 잊은 머리에 꿀밤을 먹여야 하느니라. 아, 입이 방정인가. 빗소리가 다시 굵어졌다.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