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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2.09 달라도 너무 다르다 10

궁궐 일도 그렇고 산에 쫓아다니는 것도 그렇고 작년엔 이상스레 '남자어른들'과 어울리는 일이 많았다. 점점 더 은둔형 인간이 되어가고 있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그간 내가 어울리던 사람들의 성비를 따진다면 극단적으로 여자들이 많았고 이른바 '조직생활'에서 벗어나다보니 '회식문화'도 덩달아 멀리 하고 살았는데, 새삼 다시 '꼰대스러움'으로 무장한 남자 어른들과 부대끼는게 영판 낯설고 힘들고 종종 짜증스러웠다. 그러면서 느낀 그들의 특징 몇 가지를 적어보자면...


1. 악수를 좋아한다. 얼마만에 만나든 무조건 인사와 동시에 악수를 나눈다. 헤어질 때도 마찬가지다. 정치인 코스프레인가?


2. 그럴싸한 직함과 호칭 붙이기를 좋아한다. 'OOO선생님'이나 'OOO선/후배님'이 공식적인 호칭이라고 정해져 있는 경우에도 굳이 사람따라 구분해서 김사장님이니, 정이사니, 회장님이니, 유박사, 이교수...따위의 직함을 부른다. 나에게도 민망하게 자꾸  'ㅂ작가'라는 칭호를 주려 한다. 작가 아니거든요! 라고 대꾸하기도 지친다. 혹 백수나 전업주부다 싶으면 '김프로', '최선수'라고 부르기도... 그렇게 직함에 목매는 그들의 심리를 나로선 정말이지 모르겠다. 


3. 모든 취미활동은 결국 끝나고 술을 마시기 위한 전초전이다. 등산도, 테니스도, 골프도, 심지어 자원봉사도... 최종 목표는 '끝나고 한잔'이 틀림없다. 


4. 일단 외출한 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저녁까지 다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가는 것이 집사람을 위한 배려라고 여기며 으스댄다. 내가 보기엔 술자리 차수를 늘리려는 꼼수 같은데...


5.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과묵하고 말이 없다는 건 순전 뻥이다. 그들은 수다스럽기 짝이 없고 시끄러우며 직업군이나 교육의 정도와 상관 없이 관심분야의 이야기를 시작하면 침튀기며 몇시간도 떠들어댈 수 있다. 심지어 아무 의미없는 개똥철학까지도 지겹게 설파하는데, 그러다 종종 술자리에서 자기 주량을 넘긴 뒤 주책과 객기를 부린다. 


6. 유머랍시고 이상한 이야기나 케케묵은 옛 농담을 하며 자기가 굉장히 센스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수첩에 적어가지고 다니며 알려주는 이도 있는데(주로 요상망측한 건배사... 아오 진짜;;), 더러 성희롱에 해당되는 여성 비하 발언을 잘못인줄도 모르고(알면서 그러는지도;;) 주워섬기며 낄낄댄다. 


7. 오십대든, 육십대든, 칠십대든 별 상관없다. 그들은 연배 낮은 모든 여자들에게 '오빠' 또는 '오라버니'라 불리기를 갈구한다. 할배가 더 어울리는 호칭임에도... 어휴.


물론 드물긴 하지만 '남자어른'임에도 배려깊고 세심하고 점잖은 이도 만났다. 그리고 그런 분들은 확실히 여자들과 더 잘 어울린다. 집단으로 모이면 더욱 공격적이고 꼰대스러워지는 마초들의 세계에서 그들은 역시나 소수자였기에 이해의 폭이 남다른 것 같았다. 다수의 '남자어른들'을 보며 저들은 나와는 확실히 '달라도 너무 다른' 인간유형이구나 뜨악해지다가도 그나마 그런 분들 덕에 어렵고 짜증나는 순간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스트레스 받아가면서까지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다가도, 좀 거리를 두고 남의 일처럼 구경하기 시작하면 또 그보다 재미난 시트콤이 따로없다. 재주만 있다면 캐릭터 쏙쏙 잡아서 소설이라도 쓰면 좋겠다 싶다. 아 그러고 보니 의외의 복병으로 힘들게 구는 '여자 어른들'도 종종 본다. 울 왕비마마와도 또 다른 신인간형. ㅋㅋ 요즘 울 엄니가 걸핏하면 '너도 늙어봐라!'고 내게 장담을 하시는데,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싶은 행태의 목록을 차곡차곡 적어놓고 자주 상기하면 좀 도움이 되려나... 


아무튼 이왕이면 아름답게 늙겠다!고 결심하며 휴대폰엔 오드리 헵번의 사진을 바탕에 깔아놓았다. DDP에서 오드리 헵번 전시회도 하던데 거기도 한번 다녀오고 싶고... 젊어서도 늙어서도 계속 아름답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말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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