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잡하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2.05.25 버릇 8

버릇

투덜일기 2012. 5. 25. 18:39

이웃 주민의 꿈의 미용사 포스팅을 읽기도 했겠다 나도 머리 얘기 잠깐 해야겠다. 전에도 그런 얘기를 쓴 적 있지만 내가 바라는 '꿈의 미용실 & 꿈의 미용사'의 조건은 늘 똑같다.

- 파마나 두피케어, 영양손질 등 값비싼 시술을 강요하지 말 것.

- 호구조사 나온 사람처럼 꼬치꼬지 질문을 던지거나 말을 너무 많이 걸지 말 것.

- 커트 실력이 좋을 것.

- 가격이 적당할 것.

- 소요시간이 짧을 것.

하지만 이런 나의 취향에 똑 떨어지는 꿈의 미용실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암튼 나름 적정선에서 신촌 일대의 미용실을 이곳저곳 기웃대다 결국엔 동네 미용실 하나를 뚫었다. 나 정도의 반곱슬이면 굳이 롤스트레이트 파마를 하지 않아도 된다며 파마하러 간 손님을 커트만 해서 보내는 원장을 만나 살짝 감동했던 이 동네 ㅂ미용실에 꽤 다녔으나, 결정적으로 재작년 겨울이었나 그곳 실장이 내 머리를 완전히 쥐뜯어먹은 것마냥 잘라놓은 이후 두번다시 발길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다시 찾아낸 곳이 두 정거장 정도 걸어가야 하는 ㄲ미용실. 시험삼아 처음 미용실에 딱 들어갔을 때 나는 미용사의 머리모양으로 신뢰도를 일차로 판단한다. '헤어디자이너'라는 사람이 자리 머리를 촌스럽거나 엉망으로 하고 있다면 말이 되냐고! 꽤 세련된 머리모양을 한 그 미용사는 비교적 빠른 손놀림으로 최대한 내 바람에 맞추어 머리를 잘라주었고, 나는 내심 퍽 만족했다. 게다가 가격도 무척 저렴해!

 

그러나 지난 3월 머리를 자르러 가보니 아리땁고 적당히 친절했던 그 미용사가 보이질 않았고, 그 사람보다 나이가 많은 미용사가 새로 와 있었다. 머리 자르러 왔다는 나를 의자에 앉히고 미용덮개를 씌우더니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두피가 엄청 약한가보다고, 각질 관리도 엉망이고 (머리로 열이 올라오는 체질이라나 뭐라나 스트레스 때문인지 머리에 노상 뭐가 많이 난지 오래;;) 머리카락도 가늘고 탈모증세도 있다고 완전 난리... ㅠ.ㅠ 커트하는 손길이 매우 재빠르긴 했는데, 나중에 집에 와보니 재빠른 게 아니라 성의없고 덜렁거린 탓인지 뒷덜미 머리칼 한 줌이 길게 그대로 남아 있어 내가 잘라야 했고, 들쭉날쭉 앞머리는 사람들이 왜 머리를 자르다 말았느냐고, 혹시 니가 잘랐냐고 묻기에 이르렀다(내가 앞머리를 얼마나 잘 자르는데!). 아우 정말! 암튼 그 미용사는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대머리라도 된다는 듯이 나를 구박했고, 시간이 없고 바빠서 다음 기회로 미루고 싶다고 웅얼거리던 나를 결국 굴복시키고 말았다. 그나마 20분이면 끝나고 가격도 저렴한 두피케어를 받기로 한 것. 시간도 2시간쯤 걸리고 가격도 두배로 뛰는 영양두피케어를 일주일에 한번씩 세번은 받아야 하는 상태라고 극구 주장하는 미용사 앞에서 나는 머리감는 방법도 제대로 모르는 무식하고 게으른 여자로 전락했다. ㅠ.ㅠ

 

하여간에 커트가 끝나자마자 뭔가 두어 종류의 액체를 면봉으로 두피에 발라 온 머리통이 화끈거리게 만들어놓고 나서야 그 미용사는 뿌듯해했고, 다음번 머리 자르러 올 땐 꼭 영양두피케어를 받으라고 충고했다. 과거엔 머리를 자르고 싶다고 마음 먹으면 원래 그날로 잘라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었으나, 마음에 꼭드는 미용실을 잃은 이후 내게 머리 자르기는 이제 벼르고 별러 마뜩찮게 실천하는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런 마당에 또 그 막무가내 아줌마 미용사를 대면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워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지난번 그 간단한 두피관리를 받고도 일주일 넘게 두피가 따갑고 가렵고 괴로워 다시는 그런 짓거리 안 할 생각이건만, 내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바로 내일모레 사촌동생 결혼식도 있고, 가뜩이나 성의없이 들쭉날쭉 자른 머리를 대책없이 두달 가까이 기른 내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삼손 같다'고 할 지경이라 어제 드디어 그 미용실을 찾았다. 아무리 강권해도 딱 머리만 자르고 나와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고 들어섰는데, 우왕~ 그 미용사가 없다! 그 사람 뿐만 아니라 그새 미용사 둘이 다 새로운 인물로 대체됐고 원장은 아예 부재중. 아싸! 나는 새로운 미용사들의 실력도 모르는 채 그냥 쾌재를 불렀다. 다듬기만 할 건데 뭐 망쳐봤자지.

 

새로운 미용사도 역시나 롤스트레이트 파마기가 다 풀려 머리칼에 히마리가 없다며 은근히 파마를 종용하는 기세였다. 허나 이미 나는 '이 정도의 반곱슬머리면 롤스트레이트 파마가 필요없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놓은 터, 그 정도 공격은 물리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무튼 어딜 가나 머리를 자를 때마다 반복되는 '약한 두피' 타령은 어김없이 이어졌는데, 그 뒷 이야기가 의외였다. 두피가 약해서 여기저기 올라온 뾰루지를 내가 긁어서 상처를 내놓았다는 것! 나는 지난번에 두피케어를 받고 나서 일주일 넘게 따갑고 가려운 증상에 힘들었다고 얘기했더니, 이런 상태에선 두피케어를 할 게 아니라 두피를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란다. 지난번 미용사는 뭐냐! 각질관리라면서 면봉으로 아플 만큼 엄청 두피를 문질러대두만. 그래서 그렇게 따갑다가 나중엔 가려웠구나야. 암튼 이번 미용사는 나더러 절대 뾰루지에 손대지 말고(내가 긁은 적 없다고 했더니 자면서 자기도 모르게 긁었을 것이라고;;;) 머리 감기 전에 브러시 빗으로 두들겨 혈액순환을 시켜주라고, 불가능하겠지만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게다가 왼쪽 머리만 심히 바깥으로 뻗치는 이유는 내가 왼쪽 머리만 무의식적으로 자꾸 만지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헐... 맞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책 읽을 때라든지 뭔가 생각할 때 왼손으로 머리칼을 비비 꼬는 게 내 버릇이다. 해서 과거 자율학습 시간 선생님한테 '이잡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러더니 마지막에 드라이를 해주며, 아니 이렇게 드라이가 잘 먹는 머리를 왜 손질 안하고 다니느냐고 또 한마디 했다. 파마 굳이 안하셔도 되겠네요, 라면서. ㅡ.,ㅡ;; 휴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도 당분간 두피케어와 파마를 강권하는 일은 없겠군. 다시 양심적인 미용사를 만난 것 같아 기쁘기도 했다. 그러나 자면서 무의식적으로 긁는 머리를 어찌 중단할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또 반전. 오늘 종일 '두피에 난 뾰루지'와 왼쪽 머리칼에 좀 신경을 쓰며 있어보았더니, 머릿속 상처는 내가 자다 긁은 게 아니고 깬 상태에서 긁어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집에 있을 땐 앞머리도 신경쓰여서 핀으로 질끈 올려꽂고 있는데도 나도 모르게 손이 자꾸 머리로 올라가 여기저기 쑤시며 뾰루지 부분을 찾고 있는 게 아닌가! 아, 예리한 전문가의 관찰력. ㅠ.ㅠ 빌어먹을 이놈의 손버릇, 이참에 좀 고쳐야할 터인데 가능하려나 모르겠다.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