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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봄인가

투덜일기 2017. 3. 12. 22:02

뻔뻔하고 찌질하고 치졸하게 버티던 안하무인이 드디어 제집으로 돌아갔다는 뉴스를 보았다. 지난 금요일에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을 듣고 감격해 낮술을 마시며 축배를 들면서도, 아직 갈 길은 멀었음을 알고 있었다. 청산해야할 적폐와 비리가 어디 한두 가지라야 말이지. 아무리 역사는 반복되는 거라지만, 80년대에도 90년대에도 세상이 달라질 거라며 감격의 축배를 든 순간이 있었다. 물론 달라진 부분도 있었으나, 변화의 추진력이 꺾여 과거로 회귀한 것도 많았고 최근 10년은 확실히 삶이 더 팍팍해졌다. 게다가 감히 그 파렴치한 입으로 또 다시 진실 운운하는 헛소리가 나오는 걸 보면, 과연 그 여자가 정신 차릴 순간이 오긴 할 것인가 의심스럽다. 원래부터 정신 차리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괴물일 수도 있겠고. 

암튼 어제 축제의 한마당이 되었다는 광화문에는 선약이 있어 나가지 못했다. 마지막 촛불집회이길 바라며 3월 4일에 광화문광장으로 나간 이유도, 실제로 촛불을 들 마지막 기회일 거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감은 맞아떨어졌다. 

어제 저녁, 거의 매번 광화문에 동행했던 후배 하나가 사진을 보내왔다. 

하하하하... 재기발랄하기도 하지!

포장마차에서 오뎅을 사먹진 않았지만 우리도 호떡은 사먹었고 주로 배낭에 빵과 과자, 뜨거운 커피와 차, 과일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가 구호 외치는 틈틈이 우걱우걱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머릿수 채우러 나갔던 것도 맞고.. ㅎㅎ

노발평화상장은 탐나지 않는데 촛불 배지는 너무 예쁘잖아! +_+ 아이고 갖고 싶어라...

집회 끝나고 행진이 시작되고 나면 어느새 해방구처럼 변한 청진동 서촌 앞길과 세종로, 종로 일대에서 딱 한사람만 없으면 정말 축제로구나~ 느꼈던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분노도 분노려니와 그런 행복한 추동력이 다섯달에 이르는 긴 촛불 역사를 가능하게 했겠지 싶다. 

미국 대선에서 저들은 저급하게 굴어도 우린 고급지게 가자(When they go low, we go high.)고 했던 미셸 오바마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태극기 부대가 아무리 지저분하고 비논리적이고 폭력적으로 헛소리를 지껄이며 죽창과 야구방망이를 휘둘러대도, 촛불집회는 괜한 꼬투리 하나 안잡히겠단 신중함으로 어찌나 품위를 잘 지켜냈는지. 

집회 중간에 한장한장 빨간 종이 나눠주고 다니시던 할아버지 새삼 존경합니다..

당장 퇴진, 퇴장하라는 의미로 연출한 레드 카드 퍼포먼스마저도 왤케 아름답기만 했던지, 분노조절이 잘 안되서불끈불끈 수시로 뒷골을 잡던 나와 후배들은 너무 감상적인 거 아니냐고, 촛불이 더 이상 예쁘기만 하면 안되는 거 아니냐고 궁시렁궁시렁거렸었다. 

물론 분노와 슬픔마저도 아름답고 우아해서 더 감동적이고, 간간이 유머와 센스가 하늘을 찔러서 더 유쾌했던 건 사실이다. 

노발평화상을 준 주체로 적혀 있는 '앞으로 태어날 후손 드림'이란 글귀를 보니 휴대폰에 든 사진이 또 한 장 떠올랐다. 역시 3월 4일 집회에서 머릿수 채우는 역할은 다 했으니 헌재쪽으로 행진은 생략하고 슬슬 고픈 배나 채우러 가자며 인사동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귀여운 후손님의 사진이다. 

초상권을 우려해 뒤에서 몰래 한 장 찍었더니만 앞에서 찍어도 된다고... 흔쾌히 v도 그려주신 호피 패션의 아기! 

다들 사진을 찍으며 이런 아이가 행복하게 살 미래를 위해서라도 우리들이 촛불을 들어야하느니라.. 그런 말들을 했던 것 같다.  



꽃샘추위는 아직 한참 남았겠지만 나가보면 확실히 햇볕도 바람도 달라졌다. 봄 기운이 반가운 것과는 별개로 걱정은 계속 이어진다. 대선 정국에 휘말려 이제 겨우 진행되고 있는 비리 수사가 덮이면 안되는데, 세월호 인양도 진상조사도 더 늦어지면 안되는데, 끝까지 파헤쳐서 그네를 구속시켜야하는데... 또 두눈 부릅뜨고 두고볼 일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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