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땐참좋은세상'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10.13 택배 없던 시절엔... 5
  2. 2011.06.29 펑크 5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일인데도 택배가 없던 시절엔 어떻게 살았었는지 모르겠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좀체 나가고 싶지 않은 게르음뱅이로 살다가 그런 나날이 보름이상 이어지면 또 압력솥 꼭지를 틀어 증기를 배출하듯 콧바람을 쐬어 팽팽해진 무료함을 달래주어야 할 것 같은 삶의 연속인데, 그렇게 간만의 외출을 하더라도 쇼핑은 온전한 출타목적에서 제외된다. 지나는 길에 눈에 띈 물건을 얼른 사는 건 또 몰라도 말이다.

얼마전 홍대 와우북페스티벌에 가서 책을 고르며 사람에 치이기도 했지만 돌아와서 죽도록 피곤했던 이유는 눈요기로만 하는 것이든 실제 물건을 사는 것이든 하도 온라인 쇼핑에 익숙해져 이제는 직접 발품 팔아 하는 쇼핑이 드물어졌기 때문인 듯하다. 뭐니뭐니해도 옷과 신발은 직접 가서 걸쳐보고 사야한다고 아직도 믿지만, '무료반품' 혜택까지 있는 경우엔 겁없이 덜컥덜컥 저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워낙에도 뭔가를 지를때 한참 고민하는 성격이라 신중히 머리를 하도 굴리다보니 실패율은 그리 높지 않다. 최근 몇해동안을 따져봐도 반품한 횟수는 두어번 정도?

아무튼 이달 들어 거의 하루가 멀다하고 택배가 왔다. 주변에 부는 운동화 열풍에 따라 검색하다 엉뚱하게 고른 밤색 옥스포드화, 옷을 사줄 땐 함께 가서 고르기로 한 원칙을 깨고, 반품할 각오를 하고 산 엄마 옷(다행히 마담사이즈라 익숙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브랜드라 성공했다), 두피관리에 좋다는 샴푸(벌써 두번째 구매), 검정콩 미숫가루(역시나 두번째 구매), 늘 쓰는 수분크림과 핸드크림, 장난감과 문방구(요맘때 정기세일을 하는 텐바이텐에서 또 사줘야 제맛이지), TV볼 때 쓸 목베개, 커피원두, 책, 내가 주문한 건 아니지만 외삼촌이 보내신 고구마까지. 어떤 날은 택배가 두 건이나 오는 날도 있었는데, 골목에 지나가는 차만 봐도 미친듯이 짖어대는 아래층 똥개 때문에 택배 오는 것도 나름 스트레스다. 놈이 좀 요란하게 짖어대야지!

다른 데서 쇼핑했는데 택배회사가 같아 이틀 내리 같은 분께 택배상자를 받게 되면 슬며시 민망하다. 이 사람은 뭘 이렇게 연일 사들이나 짜증낼 것 같아서(우리집 골목이 협소하여 운전에 미숙하거나 너무 큰 택배 트럭은 골목 입구에 차를 세우고 걸어 들어와 배달해야 한다). 그렇지만 아랫집들의 경우를 보아도 며칠에 한번은 택배가 오는 것으로 보아 (똥개가 워낙 크게 짖어대는 데다가 택배 아저씨들이 계단 아래부터 받는 이의 이름을 크게 외치므로 내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ㅋㅋ) 홈쇼핑에 탐닉하는 것 나뿐이 아닌 모양이다. 온라인 쇼핑 없을 땐 다들 어떻게 살았대그래!

오늘 도착한 플레이모빌(이건 세일도 안하는데 조카한테 상으로 하나 사주기로 한 김에 내것까지 또 구매)을 조립해 선반에 올려놓고, 종류별로 골라 산 '우표' 스티커를 문방구 상자에 넣어두며(거의 쓰지도 않고 보기만 할 거면서!) 어찌나 뿌듯한지 웃음이 실실 났다. 앞으로 누가 물으면 인터넷 쇼핑과 택배상자 받기가 취미라고 할까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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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

투덜일기 2011. 6. 29. 17:49

지난 월요일 조카네 집에 가다가 오른쪽 앞바퀴에 펑크가 났다. 문방구에 들러 굳이 스테이플러 침을 사오라는 공주의 명령에 투덜투덜 낯선 동네에 차를 세우려니 삼거리에 주정차 단속 카메라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그걸 피해보겠다고 만만한 인도에 슬쩍 걸쳐놓으려던 것이 연석 모서리에 부딪친 모양이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이 있기는 했으나 내려서 살피니 차체가 멀쩡했다. 해서 얼른 문방구에 들어가 침을 사가지고 나와 차에 올랐는데 차가 오른쪽으로 폭삭 가라앉아 있었다. -_-; 차체는 멀쩡했으나 바퀴가 찢어진 것.

난감하긴 했지만, 내 이름으로 자동차보험을 든지 4년째 단 한번도 보험 혜택을 보지 못하고 해마다 생돈만 날렸는데 드디어 나도 써먹을 때가 왔구나 싶어 한편으로는 득의양양했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지갑에 넣어가지고 다니던 보험카드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보험사 자동응답 내용에 아예 <타이어교체> 항목이 있더군. 상담원과는 한 마디도 할 필요 없이 (심지어 내 정체를 밝히는 주민번호나 보험카드 번호 확인도 필요없이 OOO 고객님이 맞으면 1번을 누르라고 하더라!) 계속 해당 번호를 누르고 나니 편의를 위해 고객의 현재 위치 통보에 동의하느냐는 물음도 있었다. 오호라, 휴대폰 GPS로 바로 내 위치가 보험사에 날아가는 모양이었다. 좀 섬뜩한 기분도 들었지만 당연히 동의하고 전화를 끊었다. 1분만에 출동 기사의 전화가 와 구체적인 위치를 묻더니 10분 만에 서비스차량이 나타났다. 오 놀라운 IT 서비스천국의 혜택이여!

한시간쯤 늦어질 거라 예상했었는데 결국 모든 상황은 30분도 되지 않아 끝이 났다. 보험사의 긴급출동 서비스 따위는 있지도 않던 까마득한 옛날, 강변북로에서 오른쪽 뒷바퀴가 펑크 나는 바람에 갓길에서 혼자 낑낑대며 기구를 꺼내 자동차를 들어올리고 렌치로 나사를 풀고 양손이 온통 새까매지며 낑낑 타이어를 손수 갈았던 기억이 떠올라 감개무량했다. (나 타이어도 혼자 갈아본 사람이야!) 문제의 타이어는 단순 구멍 정도가 아니라 찢어진 거라 바꿔야할 거라고 기사님이 말했다. 비가 와서 타이어 고무가 말랑해졌나? 그 정도로 찢어지다니 나 원참 의외였다.

째뜬 임시로 타이어를 갈았으니 카센터에 내려가야 하는데 연일 비는 계속 내리고(어제 날 갰을 때 행동했어야 하거늘) 은둔본능에 휩싸여 좀체 외출하기는 싫고 심지어 냉장고가 텅텅 비었는데도 장보러 가는 게 꺼려져 웅크리고만 있다. 온갖 종류의 서비스가 다양해져 세상이 편해질수록 나 같은 게으름뱅이는 더욱 더 게으름을 부리게 되는 듯하다. 자동차 수리도 집에 가만히 앉아서 전화나 인터넷으로 신청만 하면 사람 만나 설명할 필요 없이 척 차를 가져다가 척 고쳐서 다시 집앞에 세워주는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나 하고 앉았으니 쯧쯧쯧...

어차피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은 마트 가서 장도 보고 카센터 들러 타이어도 교체해야지 하며 오늘도 할일을 내일로 미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6월도 내일이면 쫑. 바쁜 마음과 달리 몸은 좀체 빠릿빠릿 움직여주질 않는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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