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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고..

투덜일기 2015. 4. 18. 01:30

4월 16일엔 추모집회엔 나도 나가서 촛불 하나 들어야하지 않을까 며칠 고민했지만 나가지 못했/않았다. 꺼려지는 핑계는 너무도 많았다. 같이 나갈 사람도 없고... 비도 온대고... 일도 바쁘고... 다음날 아침부터 자원봉사 나가야하는데 체력이 될까... 분명 차벽치고 길 막고 강력진압할텐데 무사히 집에 올 수 있을까 엄마가 걱정할텐데... 구차하게 나열하고 있지만 그냥 나가기 싫었다는 게 맞다. 절실하지 않았던 거다. 냉장고가 거의 다 비어 장을 보러가야한다고 며칠째 별르면서도 내키질 않아 종일 꼼짝도 하지 않고 집에 처박혀 있었다. 


마침 다음날은 궁궐에 봉사나가는 날이란 핑계로 일찌감치 잠을 청했다. 뉴스는 보지 않았다. 까무룩 잠이 들었던 것 같은데 진동으로 돌려놓은 휴대폰 울림에 금방 잠이 깼다. 시계를 보니 자정을 몇분 남긴 시간, 휴대폰 화면엔 낯선 번호가 떠 있었다. 모르는 휴대폰 번호로 오는 전화번호는 잘 안받는데, 시간이 시간인 만큼 괜스레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걸 느끼며 전화를 받았더니 큰조카 ㅈㅁ이가 대뜸 "고모, 어디야?" 물었다. 당연히 집이지 어디겠니... 근데 니 전화는 어쩌고!!


버스 타고 집에 가려다가 친구랑 1시간째 버스 안에 갇혀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집보다 고모네 집이 가까우면 엄마가 고모네로 가서 자라고 했단다. 와서 자는 거야 당연히 괜찮은데 문제는 집이 효자동인 친구를 어쩌냐는 것. 초저녁부터 걸어서라도 집에 가려고 시내에서 이리저리 시도했지만 어디로도 접근할 수가 없었단다. 일단 같이 오라고, 당장 내려서 전철 끊기기 전에 전철로 최대한 가까이 오든지, 어떻게든 은평차고지로 갈 거라는 버스에 계속 남아 있다가 종점 도착하면 내가 데리러 가든지 하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다행히 버스는 막힌 길을 피해 명동으로 서울역으로 돌고돌아 우리 동네 전철역앞을 지나더라며 버스에서 내렸다고 40분쯤 후에 다시 전화가 왔다. 시간이 너무 늦어 마을버스가 있을지 모르겠다, 택시를 탈래, 데리러 갈까 했더니 걸어와도 되겠단다. 어차피 시내에서 막힌 길 피해 종로로 을지로로 엄청 걸어다녔는데 2정거장쯤 더 걷는 거 일도 아니라나.


씩씩하게 대꾸하더니만 막상 집에 온 두 아이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당연하지. 벌써 새벽1시. 애기들, 고생했다, 조금 쉬다가 길 뚫렸나 알아보고 친구는 효자동 집까지 고모가 데려다주면 되지 않겠니 했더니 일단 배가 고프시다고...  라면 끓여줄까 했더니 웬일로 싫단다. 다른 간식 거리는 없는데.... 그럼 복음밥? 오케이... 다행히 스팸 통조림 하나 있는 거에다 자투리 채소를 다져넣고 남은 밥 한통을 다 볶았다. 내심 아침에 조카 먹여보낼 한 그릇을 남길 요량이었는데.... 결국 위대한 십대 둘은 그 많은 밥을 다 먹어치웠다. 다이어트한다고 맨날 굶지를 말든지 야식을 많이 먹지를 말든지... 자연히 잔소리가 나오려는 걸 꿀꺽 삼켰다. 그냥 살아만 있어도 고마워해야할 아이들인데 까짓것 야식 좀 많이 먹어서 살찌면 어떠니...


뉴스를 검색해보니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시위대가 철야농성에 들어갔다고. 광화문 주변에 둘러친 차벽은 웬만해선 아침까지 버틸 것 같고 우리집에서 효자동으로 접근하는 길도 청와대 길목이라 막아놓았기 십상일 것 같았다. 친구도 그냥 재워보내기로... 배부른 십대 둘은 배를 두들기며 낄낄 깔깔 실컷 수다를 떨다가 2시를 한참 넘겨 잠이 들었지만 결국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5시반부터 깨워달라더니만 5분만 더, 10분만 더... 좀처럼 깨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을 깨우러 다니는 한편, 고기도 없이 대충 미역국을 끓이고, 없는 반찬대신 한 덩어리 남았던 돼지고기 목살을 녹여 이른 아침부터 요란하게 냄새를 피우면서 구워먹였다. 어휴... 학부형 엄마들은 이짓을 맨날맨날 어떻게 할까, 그러다가 문득 이렇게 아침 시간에 애들 깨우느라 소리치고 밥 해먹이고 그러는 게 더 없는 소원이 된 부모들이 있다는 걸 뒤늦게 생각해냈다. 


애들을 보내고 나서는 시간이 너무 많아 느릿느릿 외출준비를 하다가, 몸 편하게 버스타고 잠깐 눈을 붙여야지 생각하며 경복궁 가는 버스에 올랐다. 결과적으로 내 생각이 짧았다. 버스는 세검정부터 이미 거북이걸음... 전날밤부터 광화문 바로 앞에서 농성중이라잖니... 그래서 광화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경복궁으로 드나들려면 주차장 입구나 서쪽 쪽문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 형광노랑색 조끼를 입은 의경들이 경복궁 주변에도 골목마다 모퉁이마다 줄지어 서 있었다. 그들도 밤새 그렇게 지키고 서 있었을까, 얼굴을 살피게 되는 건 이제 그 아이들도 어느덧 다 내 아들뻘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라꼴이 엉망이라 니들도 고생이 많다. 


굳게 닫힌 광화문과는 상관없이 이날 경복궁엔 현장학습을 나온 단체 어린이 관람객이 넘치고 또 넘쳤다. 안내해설을 예약했던 인천의 어느 초등학교는 주변에 버스조차 세울 틈이 없어 약속시간보다 40분이나 늦게 궁궐에 입장을 할 수 있었다. 경복궁 주변에서 시위자들에게 세월호 관련 유인물을 받아들고 아무 생각 없이 궁궐 문을 들어선 중학생 아이들은 의경들의 검문을 받고 입장을 제지 당했다가 인솔교사의 강력한 항의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길에서 나눠주는 종잇장을 받아든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고...  


유인물을 받아든 아이들도 죄가 없고, 상부 명령으로 그런 유인물 소지를 막아야하는게 의무인 의경들도 죄가 없는 건 마찬가지. 청와대 코앞이라 늘 굳은 얼굴로 입구에서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그 의경 아이들도 실은, 가끔 궁에 유명인이 나타나면 신이 나서 같이 사진찍자고 청하는 이 땅의 해맑은 청년들이다. 그 옛날 학창시절처럼 경찰병력을 무조건 '짭새'라고 부르며 적대시할수만은 없는 세대가 되고 말았구나 싶다. 시위대에게 캡사이신 최루액 뿌리고 물대포 쏘아대는 건 분명 공권력 남용이지만, 잘못은 그러라고 명령을 내리는 책임자들에게 있지 맨 앞에서 방패와 곤봉들고 싸워야 하는 아이들은 또 무슨 생고생인가. 


광화문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서, 경복궁과 그 너머 광화문 광장의 풍경은 참으로 참으로 대조적이었겠구나 싶은 하루. 오전 오후 두번이나 목이 찢어져라 해설을 하기도 했지만 담장 안쪽에 있다는 게 뭔가 죄스러워서 흥이 나질 않아 이상스레 고단하고 심신이 쳐졌다. 과연 나는 여기서 왜 이렇고 있는 걸까.... 회의가 깊어졌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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