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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6.07 타블로이드 전쟁 3

 

폴 콜린스 지음/홍한별 옮김/양철북(2013)

'문학 탐정'이라는 별명에 딱 맞게, 폴 콜린스는 이번에도 19세기말에 벌어진 엽기적인 살인사건의 흔적을 낱낱이 추적해 '황색 언론'이 탄생하게 된 현장을 재조명했다. 더불어 미스터리로 남았던 사건의 진실까지 추리해낸다. <토머스 페인 유골 분실사건> 때도 느꼈지만, 추리소설 뺨치는 흥미진진한 서사와 전개는 이제껏 읽어본 다섯권 가운데 이 작품이 '갑'이다. 법정스릴러 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음.

 

게다가 언론과 문학 부문에서 미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의 주인공인 조지프 퓰리처가 지독한 특종 경쟁과 부수 전쟁에서 승리하려고 온갖 꼼수와 불법을 자행한 언론인의 표상이었다니! 후발주자로 나서 막강한 자금력으로 승승장구하는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뉴욕 저널>에 맞서기 위하여 퓰리처의 <뉴욕 월드>가 벌인 선정적인 폭로전 양상은 정말이지 요즘 인터넷이며 종편 매체가 하는 짓거리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역사는 반복된다더니, 뻥 터뜨렸다가 아님 말고, 식의 황색 언론 보도행태가 이토록 강력한 전범을 갖고 있을 줄이야.

 

1897년, 이스트강에서 엽기적인 토막사체가 발견된다. 방수포에 꽁꽁싸서 묶어 강에 던진 꾸러미를 발견한 건 강에서 놀던 아이들. 시신의 신원과 살인범을 찾기 위해 뉴욕 전역을 뛰어다니는 건 경찰보다 먼저 두 일간지의 기자들. 당시엔 기자들도 배지를 번쩍이고 다니며 경찰 못지 않은 특권을 누렸던 모양이다. 게다가 신문사는 아예 탐정단을 꾸려 경찰보다 앞서서 사건수사에 개입한다. 수사 진행은 아예 기자들이 먼저 발견하고 선점하고 빼돌린(!) 증거와 증인의 인터뷰 기사를 바탕으로 진행될 정도다. 매일같이 엽기 살인사건과 관련된 따끈한 뉴스가 1면에 대문짝만하게, 그것도 컬러 삽화를 곁들여(사건 현장 지도는 물론이고, 희생자의 손 그림까지 생생하게!) 실린 걸 보게 되다니 나로선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만, 당시 1센트짜리 신문은 이 선정적인 보도경쟁 덕분에 날개돋친듯 팔려나갔단다. 고가의 신형 컬러 인쇄기계를 도입하고 스타 삽화가, 스타 기자들을 몽땅 '돈으로' 스카우트해 선배의 등을 친 허스트의 <저널>이 당연히 압승. 발행부수가 무려 150만부에 달해 세계최고가 되었다나 뭐라나... 

 

캘리포니아 샌시미온인가 하는 곳에 허스트가 '돈 처발라' 지은 허스트 캐슬에 구경간 적이 있다. 산꼭대기에 그야말로 '성채'를 지어놓고 화려뻔쩍한 실내는 유럽의 온갖 골동품으로 채웠고, 일부 건물은 유럽의 고성을 통째로 날라왔다는 듯했다. 언론재벌이라고 해서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기에 그렇게 막대한 돈지랄을 할 수 있었나 싶었더니... (관광지 내 박물관 같은 데서 기록영화도 보긴 했다만 당연히 내 기억 속의 지우개;;;) 별별 짓을 다 했던 모양이다. 허허허. 심지어 쿠바 감옥에 갇힌 혁명가의 딸도 기자가 쇠창살을 끊고 몰래 빼와 특종을 냈을 정도다. 

 

암튼 사건발생부터 희생자 신원확인 과정, 범인 검거, 재판, 증언, 판결까지 순간순간 드라마틱한 전개의 연속이다. 이렇게 완벽하게 사건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연일 특종전쟁을 해댄 타블로이드 신문도 놀랍지만 수천건의 기사를 죄다 검색낸 지은이의 노고도 기막힐 노릇! 폴.콜.린.스.진.정.존.경.스.럽.다. 마지막엔 사건 관계자들의 후일담까지 곁들여졌다. 젊은 언론인 허스트의 공격적인 마케팅과 공격에 무너져 처절하게 패배한 퓰리처는 말년에야 비로소 <뉴욕 타임스> 같은 정도 언론이 옳다고 느꼈나보다. 전재산을 기부해, 자기 이름을 딴 상이 제정되면서 황색언론의 창시자라는 오명도 슬그머니 잊혀지고 말았다.  

 

사건이 하도 엽기적이라 처음엔 잠자리에서 읽기 섬뜩하다 싶었는데, 자전거 부대로 몰려다니는 기자들의 행태도 그러려니와 당대 사람들의 반응이 하도 웃겨서 나중엔 계속 낄낄댔다. 시대의 특징인지 모르겠으나, 세기말 미국인들 진짜 징하다. 살인사건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어쩜! 알 권리를 빌미로, 상업적인 성공을 위하여 인권 따위 무시하고 취재의 촉을 들이대는 기자들과 언론의 생리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고, 너무 자세한 사건 기사는 유사한 모방 범죄를 양산한다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신나는(?) 구경거리에 반색해 황색언론의 정착을 도운 세기말 미국 대중들은 가만 생각해보면, 요즘 인터넷 찌라시에 열혈 댓글과 악을 달며 흥분하는 사람들과도 다를 바가 없다. 세기의 살인사건을 만든 건 결국 당시 탐욕스러운 언론인들이었지만, 그 탐욕이 가능했던 건 결국 대중의 호응 덕분이었다. 쓰레기 같은 인터넷 찌라시나 증권가 찌라시, 일베 같은 것도 결국엔 수요가 있으니 생겨나는 게 아닐까. 뉴스에도 연령표시를 해야할 것 같은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는 요즘, 그저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과거의 한 자락이었다.

 

 

퓰리처는 세계 최초로 컬러 만화를 신문에 실었다. 귀가 주전자 손잡이처럼 생긴, 공동주택에 사는 익살꾼 민머리 꼬마가 주인공이었다. 제목은 <옐로 키드>. 옐로 키드가 인기를 끌자 경쟁 신문사에서는 <월드>를 만화 저널리즘이라고 비웃었다. 그래서 "옐로 저널리즘(황색언론)"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 p35.

 

허스트는 다시 <월드>보다 한발 앞서서 법원에 전화설비를 했다. 법정에서 인쇄실까지 1분이라고 그 주말 <저널>이 자랑했다. <저널>은 최초로 법원광장에 설치된 전화선을 통해 목격자 증언을 실시간으로 전송할 수 있게 되었다. - p226

 

허스트는 미국 신기록을 보유한 전서구 세 마리를 빌렸다... 그래서 법정에서 그린 스케치를 단 몇분 만에 <저널> 신문사 창에 설치된 새장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비둘기가 도착하면 움직임 감지회로가 벨을 울려, 용감한 새들이 최신 삽화를 가지고 도착했음을 편집기자들에게 알렸다. - p227.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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