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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투덜일기 2010. 3. 25. 18:07

큰조카네 집에 강아지가 생기고 나서 제일 질색팔색 두려워한 사람은 둘이었다. 나와 막내동생네 둘째아들 지우. 특히 다섯살난 지우는 강아지 때문에 현관에서 아예 신발도 못벗고 벌벌 떨다가 방에 들어와선 계속 누군가의 품에 안겨있어야 할 정도였고, 아이들끼리 노는 방에 파랑이가 나타나면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 하거나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몇달이 지나면서 놀랍게도 나도 그렇고 지우도 그렇고 파랑이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줄었다. 물론 파랑이가 워낙 애정을 추구하는(?) 스타일의 강아지라 누구든 지네 집에 나타나면 아는 척 하고 안아줄 때까지 마구 짖어대며 꼬리를 흔들거나 심지어 두 앞발을 척 들어 다리에 매달리는 놈이라 나는 그럴 때마다 어쩔줄을 모르며 당황하긴 한다. 특히 제일 못참겠는 건 막 핥아대려고 하는 것!

암튼 내가 싫어하든 말든 큰조카네는 웬만한 외출에는 파랑이를 대동하고 다니기 때문에 우리집에도, 막내동생네 집에도 벌써 여러번 강아지가 다녀갔고 애완견 혐오파 가족(울 엄마와 막내동생네)들도 이젠 그러려니 하고 있으며, 나도 지우도 누군가 파랑이를 잡고 있거나 녀석이 좀 얌전하게 굴 때는 쓰다듬어줄 수도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 그런데, 요번에 막내동생이 블로그에 올린 사진을 보니 지우의 변화는 기대 이상이다! 슬며시 지우한테 배신감이 드는 걸 어쩔 수가 없긴 하지만 ^^; 두 녀석의 사진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어린이계의 얼짱 지우와 말티즈계의 얼짱 파랑이 인정> 어쩌고 하는 댓글을 단 걸 보면 나 역시 파랑이와 많이 친해졌구나 싶다. 애완견 생기면 집에도 안가겠다고 협박하던 내가 이젠 파랑이랑 나란히 차에 타고 갈 수도 있게 되었으니까. 물론 개 공포증 완화가 아직은 다른 개들한테까지 고루 미치진 못했다.



설상가상 아래층에서 하얀색 잡종견 강아지를 한마리 데려다가 겨우내 집안에서 키우더니 얼마 전부터 마당에 개집을 놓고 묶어 놓았다. 아직 강아지 꼬락서니를 한 이놈이 또 목소리는 어찌나 큰지 내가 현관을 드나들 때마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고 넣을 때마다 우렁차게 짖어대서 괴로워죽겠고, 그럴 때마다 나는 시끄럽다고 녀석한테 야단을 친다. 어제 만난 아래층 아저씨는 녀석을 훈련시켜야 하니까 낯선 사람 아니고 계속 우리한테 짖을 땐 좀 혼내주라고 조언하던데, 그게 어디 쉬운가? 처음 파랑이도 그랬듯 이놈의 강아지도 나를 우습게 아는지 그간 계속 짖어대며 나와 힘겨루기를 하는 것 같던데!!

헌데 모든 강아지를 비롯해 성견까지도 좋아하는 공주는 어제 하루만에 벌써 아래층 강아지와 친해져 간식을 나누어주더니 귀엽다고 난리다. 곰돌이라는 이름도 알아냈고 아직 애기라 이빨도 몇개 없다는 것까지 시시콜콜 내게 보고를 했다. 고모도 맛있는 거 주면서 좀 친해지라나. -_-;;

어젯밤 공주를 배웅하러 갔다가 들어올 때도 분명 녀석은 우렁차게 짖어댔는데, 드디어 오늘 내가 두번이나 드나드는데도 개집 안에서 빤히 쳐다보기만 할뿐 짖지를 않았다. 하루만에 내가 이 집에 사는 사람이란 걸 파악한 건가?? 하기야 뭣도 모르는 놈이라 오히려 택배 아저씨들이 와도 짖기는커녕 집안으로 숨어드는 눈치라 내일 또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도 문득 나는 짖지 않는 녀석에게 감동하여, 순간적으로 집에 뭔가 녀석에게 줄 건강한 먹거리가 없는지 생각하고 있질 않은가. ㅋㅋ 스스로 이건 내가 아니다 싶어 얼른 그 생각을 물리쳤지만, 이런 놀라운 변화는 분명 파랑이 때문에 시작된 게 틀림없다. 그렇긴 해도 녀석이 부디 핥으려고 달려들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변함없음.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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