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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간다

투덜일기 2011. 5. 31. 17:26

일년 열두달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5월이 간다. 찌뿌드드 잔뜩 내려앉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와 함께. 뭔가 아쉽다. 하기야 내눈에 최고로 예쁜 연초록의 시기는 어느 틈에 지나버렸다. 어제 보니 밤마다 유독 그윽하고 달콤한 향기를 뿜던 아카시아꽃이 다 말라 떨어져 부서진 누런 팝콘처럼 땅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마저 이 비에 다 씻겨 사라지겠다. 그러고는 초록이 한층 더 짙어지겠지.

날씨도 초록도 기분도 가장 싱그러워야할 5월은 올해 축 처져 보냈다. 계획은 원래 어기려고 있는 것이라는 쉰소리로 변명을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하려고 했던 것, 하고 싶었던 것, 해야할 것들을 그냥 흘려보냈다. 이렇게 마냥 힘빼는 삶도 가끔은 필요하다, 스스로 속닥이며 충전을 바랐으나 눈금은 오르지 않았다. 조바심 내지 말아야지, 하며 또 그냥 늘어졌더니 한달이 후딱 가버렸다. 이젠 정리가 필요할 때.

마감이 닥쳐야 손발이 움직이는 버릇은 아무래도 평생 가져가야할 악습인 듯하다. 또 다시 돌아온 세금신고의 계절. 해마다 개악되는 게 틀림없는 오리무중 세무신고 프로그램과 홀로 싸우다 결국 어제 세무서에 찾아가 해결 안되는 문제를 직원에게 물어본 다음에야, 마지막날인 오늘 전자신고를 마쳤다. 그래도 마감 안 어긴게 어디냐고 자평. 늘어져 뒹구는 동안 그나마 잘한 일이 있다면 독서. 한달간 7권 읽어, 드디어 올해 월평균 세권을 넘겼다. 영화는 두 편. 전시관람은 전무. 타일깨기 기록은 194점. 일은 당연히 뒷전. 

마감 독촉전화가 무서우면서 왜 그게 채찍질은 안되는지 의아한 나날이다. 작업 계획표는 두달째 어긋나고 있다. ㅎㅎㅎ6월의 화두는 다시 심기일전. 일부러 콘서트를 두 개나 가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씩씩하게 잘 놀러다닐 때 일도 잘한다. 방구석에 처박혀 노상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는다고 일을 잘하는 게 아니다 나는. 놀 욕심에 힘이 나는지 어디 두고보자. 어쨌든 이렇게 5월이 간다. 그러니까 꿍얼꿀얼 이 변명은 치열하게 살아야하는 5월을 이렇게 보내서 미안하다는 사과문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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