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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차례

투덜일기 2017. 1. 31. 23:15

명절 연휴때마다 sns엔 명절이 사라져야한다는 아우성이 절절하다. 조만간 사라질 '악습'이라는 데 나도 한표. 그러나 그건 머릿속 생각일뿐, 현실에선 그 시점이 문제다. ㅠ.ㅠ 게다가 여자들'만'의 노동이 담보되어서 그렇지 조상 핑계대고 간만에 온 가족이 모여 먹고 노는 거, 특히 설날엔 세배하고 윷놀이 하며 노는 거 나름 괜찮다. 아니 사실은 심신이 고달파 괴로우면서도 퍽 좋아한다. 명절이 아니고서야 고모들이며 사촌동생들, 그들의 어린 아기까지 대체 언제 만나볼 수 있단 말인가.가족이 멍에라면서 아직도 가족주의를 못 벗어나는 내가 한편으로는 좀 부끄럽다. 오랜 세뇌 탓일까. ㅠ.ㅠ  하지만 많이 줄었대도 아직 스무명 넘는 가족이 모여 놀고 먹으려면 음식장만 스트레스가 만만치는 않다. 이 무슨 딜레마인지 원.

요번 설날 sns에서 돌아다닌 명절 글귀 가운데 가장 웃기고도 정곡을 찔렀던 걸 퍼왔다. ^^;​


지인 한 사람이 페북에서 공유했던데 공감해 퍼올렸는데 원 출처는 딴지일보라는 것 같다. 킬킬 웃으며 나도 좋아요를 눌렀다. 그러나 요번 명절에 도 난 음식상을 차려놓고 절을 했으니.. 이러고 보면 나도 아직은 영낙없이 악덕 시누이다.  

그래도 올해부터는 명절 '차례'라는 이름에 맞게 상차림 음식을 간소하게 하고 그냥 맛있게 먹을 음식에 치중하자고 올케들과 작년부터 의논을 했다. 아는 게 병이라고, 궁궐 쫓아다니면서 이런저런 교육을 받다보니 '차례'는 말 그대로 '차'를 올리는 '다례'여서 왕실에서도 아주 간단한 다과와 함께 차만 올리는 게 전통이었단다. 근데 왜 우리는 제삿상과 똑같이 조율이시, 홍동백서, 좌포우혜 따져가며 거창하게 상을 차렸던 걸까! 그건 조선말 신분제가 헐거워지면서 부역에서 놓여나고자 너도나도 돈만 있으면 양반 족보를 사들여 신분세탁을 했고, 막상 양반 체통 차려 조상에게 제사나 차례를 지내야하는데 대대로 보고 배운 바가 없으니 어깨너머로 남의 양반집 가풍을 차용할 수밖에 없었단다. 당연히 역사적 근거를 따지거나 제삿상과 차롓상의 차이 따위를 고민할 리 만무했고 한 가지 방식을 달달 외워 써먹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마저도 일제 강점기때 대부분 싸그리 잊혀졌는데, 해방 후 다시 전통 명절을 지킬 수 있게 되자 우왕좌왕 헤매는 무지몽매한 국민들을 위하야 '가정의례준칙'이라는 걸 정부에서 정해 권장했고 이상하게 '통일된' 가정의례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발목과 편견을 붙잡고 있다는 얘기다.

이야기가 곁다리로 빠지는 것 같지만, 암튼 난 옛날부터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지방에 적는 '현 고 학생부군신위'라는 글귀가 참 이상했다. 아니 왜 노친네가 돌아가셨는데 '학생'이란 말인가! 우리 할아버지가 86세때 돌아가셨는데 지방 글귀는 여전히 '현 고 학생부군신위'였다. 할머니 신위에 적인 '유인 장씨'라는 말도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이 세상에 돌아가신 장씨 할머니가 한 사람뿐인가! 조상 귀신이 진짜로 제삿밥 드시러 온다고 해도, 귀신같이 잘 찾아온다는 속담처럼 뭐 집집마다 잘 찾아다닌다고 치더라도, 이왕 지방과 신위를 쓸 거면 본인 제삿상인 줄 딱 알아먹게 풀네임을 다 쓰던지 해야지 말이야...

헌데 최근 답사 다니며 알고보니 '학생'이란 유학을 공부한 양반 중에서 과거에 합격하지 못해 품계를 받지 못했거나 서당에서 공부만 하다 사망한 이들에게 붙여준 예의상의 관직이고, '유인' 또한 종9품 맨 말단 직책의 부인에게 내려진 호칭이란다. '정경부인'이 정,종1품 문무관의 부인에게 내려지는 칭호이듯이. +_+ 그런데 조선말엔 신분과 상관없이 일반 백성들에게도 사후에 선심쓰듯 '학생'과 '유인'을 붙여주게 되었던 것. 아니 근데 그런 시대착오적인 호칭을 써먹는 지방과 신위를 21세기에도 쓰고 있다는 게 말이 됨??!! 

해서 작년부터는 그 말도 안되는 지방 대신 제사 때 우리도 사진을 쓰자고 내가 우겼고, 설날과 추석땐 증조부모님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우리 아버지, 젊은 시절 돌아가신 작은엄마까지 6분을 연달아 모셨던 터라 지방을 아예 생략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른 집도 설날엔 떡국 여러 그릇 한꺼번에 올려놓고 세배하고 끝낸대요! 라면서.

간소한 차례상에 대해서는 나름 나도 가족들을 설득할 역사적 근거를 마련했다. ​

​이것이 무려 대한제국에서 황제로 추존된 문조익황제를 위한 황실 차롓상 재현 모습이란다. 황제도 차례를 이렇게 간소하게 차렸다뉘! 

게다가 홍동백서니 좌포우혜 어쩌고 하는 제사 예법은 어딜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단다. 반찬도 딱히 무슨 음식이라고 정해진 것도 아니고 숙채, 침채, 육적, 어적.. 이런 식이다. 지방에 따라 해당되는 음식 아무거도 올리면 장땡이란 의미가 아닐런지.

별 의미도 없이 거창하기만 한 차례와 제삿상 차림 예법에 대한 문제점은 최근 몇년 새 계속 방송에서도 다루어지고 있어서 요번 설 전에도 뉴스에 여러번 같은 이야기가 등장했다. 

오히려 예법 따지는 종갓집에서 차롓상을 더 간소하게 지낸다는 것! 왼쪽 사진은 퇴계 이황 종가 차롓상을 재연한 모습이란다. 반찬이라고 할 진 음식은 두부부침과 물김치? 정도가 다고 밥과 떡국, 포, 과일로 끝이다. 으아 그동안 우린 정말 쓸데없이 헛고생을 했구나야.

녹두전, 생선전, 호박전, 동그랑땡 최소 4가지 전을 올리느라 울 올케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전과 나물 준비는 올케 둘이 나눠서 하고, 나는 끓이고 굽는 고기류, 탕국, 나머지 반찬을 담당한다)

해서 우리도 설날과 추석엔 힘들게 전도 부치지 말자고 올케들과 의논을 했으나, 전마저 없으면 반찬으로 먹을 게 너무 없으니 차례상에 올리든 말든 일단 음식 장만은 하던대로 하겠다는 것이 두 올케들의 의지였다. 그럼 양이라도 딱 한 접시 나올 만큼 줄이든지... 

근데 요번 설날을 앞두고 막내올케가 전격 독감에 걸려 집에 격리해야할 상황이 되었다. 말이 A형 독감이지 얼마전까지만 해도 신종플루라며 호들갑 떨던 그 독감 아닌가! 사촌동생네 돌쟁이도 올텐데 우리집에 바이러스를 옮겨놓으면 안될 것 같아 잠복기 보균자일지도 모를 막내동생 식구들 모두 오지 말라고 했다. 아파서 끙끙 앓는다는데 전이고 나발이고 잘 됐다, 그냥 쉬거라. 

작년 추석을 지내며, 사촌동생들은 시댁에서 아침먹고 곧장 친정 격인 우리집으로 달려오는데, 막상 울 올케들은 그들 점심까지 챙겨먹이느라 오후 늦게나 친정으로 갈 수 있었던 상황이 얼마나 불합리했는지 뒤늦게 깨달았던 나는 좀 늦었지만 왕비마마와 상의해 동생들에게 전격 선언을 했었다. 설날과 추석 중 한번은 우리집에 오지 말고 친정에 가서 차례를 지내든지 여행을 가든지 하라고. 물론 명절 땐 아침 먹고 무조건 친정에 가게 하겠다고.

명절에 먹여야 할 입 줄어들면 나야 부담 적어져서 신나고 좋다! 근데 변화의 바람에 대한 저항은 의외의 곳에서 닥쳤다. 명절 노동이 힘들어봐야 1년에 몇번이나 된다고 그러냐며 옛날엔 저녁까지 먹고 헤어졌던 것에 비하면 훨 나아졌구만, 뭘 그리 불평이냐고 동생놈들이 아내의 권리 주장에 반발했던 것. 아 놔;; 1년에 한번 아니라 3년에 한번이라도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면 힘든 거지!

하여간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내 맘대로 밀어붙이기로 작정했던 바, 요번 설엔 나박김치도 안 담그고, 수정과도 안 끓이고, AI 핑계로 토종닭도 안 삶고, 굴비도 안 굽고, 막내올케 담당이었던 전 3가지도 싹 빠뜨리니 드디어 차롓상에 떡국과 밥 6쌍을 한꺼번에 올릴 공간이 생겨났다. ^^;

차례는 그야말로 조상신에게 1년 잘 살겠다는 의미로 세배하는 거니깐 수저 꽂고 그런 거 안해도 된다고 누누이 일렀건만 갑자기 달라진 순서에 작은아버지도 큰동생도 몹시 당황해서 나에게 자꾸 짜증을 부렸지만 암튼 여러번 술잔 올리고, 떡국과 밥 갈아 다시 놓고 어쩌고 하는 순서 없이 한번에 짠~ 일동 세배하기로 끝냈더니 거의 1시간은 절약된 것 같았다. 아싸~

그 옛날에도 차례와 제사를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합리적으로 모셨고, 주로 친정 옆에서 살던 딸도 당연히 제 몫을 다했다는데 왜 오히려 현대에 들어와 관습이 이상하게 왜곡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증조부모님이야 뭐 명목상 같이 챙긴다고 쳐도, 손녀딸인 나로선 할아버지 할머니의 예쁨 받으며 자랐으니 그분들을 위해 차례든, 제삿상이든 준비하고 특히 좋아하셨던 음식 챙겨 놓는 것이 마냥 괴롭고 싫지만은 않다. 물론 그런 고루한 생각이 문제라 내 몸을 혹사시킨다는 건 알지만 암튼 최소한 나는 얼굴도 모르고 명절에 불려다니며 노동을 착취당해야하는 며느리들과는 입장이 다르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금 생각으론 엄마 계시는 동안, 그리고 내가 체력이 허락하는 동안엔 '꼭 사라져야할 악습'인 명절 차례와 제사를 가능한 한 간소하게 하는 방향으로 지속하되, 내 대에서 반드시 끝내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명절 연휴때 해외든 국내든 여행 다니는 사람들 너무도 부럽지만, 나 같은 소심이는 아마 여행을 떠나서도 마음 편히 놀지 못할 게 뻔하니깐 ㅠ.ㅠ 올케들 눈치를 최대한 덜 봐도 되는 방향으로 계속 변화를 시도해볼 작정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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