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4.08.10 지갑과 사례금 7

지갑과 사례금

투덜일기 2014. 8. 10. 15:04

지난번 등산을 갔을 때 작은 배낭에 먹을 것과 얼음물을 하도 바리바리 쌌더니 평소보다 너무 무거워서 꽤나 애를 먹었다. 등산애호가 후배 말로는 당일 등산이라도 너무 작은 맹꽁이 배낭 말고 무게 분산도 되고 혹시나 넘어졌을 때 몸도 보호해주는 적당한 크기로 사는 게 좋다고 했다. 그간  계속 검색하고 골라보고 고민하고 실제로 매장에 가서 구경도 한 배낭을 결국 사들였고, 그 김에 평소 들고다니는 가죽지갑 대신 휴대폰이랑 신용카드 한 두장 넣을 수 있는 작은 천지갑도 함께 샀다. 배낭 끈에 찍찍이로 매달 수 있는 형태의 손바닥만한 검정색 지갑이었다.

 

그러고는 어제 등산을 잘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 글쎄 신분당선을 갈아타는 도중에 지갑을 잃어버렸다. ㅠ.ㅠ 서울 지하철 중엔 처음에 한번, 그리고 나중에 내릴 때 한번만 교통카드를 찍으면 되는 노선이 있는가 하면, 신분당선 같이 민자 도입 전철은 중간 중간 갈아타면서도 환승 개찰구에서 다시 계속 카드를 찍어야 한다. 정자역에서 갈아타고도 금방 또 내려서 카드를 찍어야 하므로 내내 배낭에 매달고 다니던 지갑을 손에 들었던 게 문제였다. 전철을 타고 널널하게 빈 의자에 앉아 배낭을 껴안고 뻐근한 다리를 쉬려는 찰나 허걱, 지갑이 없다! 맙소사... 분명 손가락에 끼고 있었는데 어디갔지... ㅠ.ㅠ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교통카드도 거기 들었고, 현금도 거기 넣어두었는데! 또 휴대폰은 어쩌나! 최악의 경우 집에 갈 차비 한 푼 없는 상태였다. (500원짜리 동전 하나 달랑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ㅠ.ㅠ) 후다닥 다음 역에서 내려 반대방향 열차를 타고 다시 정자역으로 갔다. 에스컬레이터 타는 시간도 아까워 다다다다 계단을 뛰어 오르고 내려 내가 앉았던 전철역 벤치를 찾아보았지만... 지갑은 없었다. 혹시 검정색 지갑 못 봤냐고 거기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도리도리... 남은 가능성은 역무실로 가보는 것 뿐이었다.

 

개찰구 앞에 있는 역무원은 혹시 지갑 주워온 사람 있나 물어봤더니 모르겠다며 역무실로 가보라고만. 개찰구 호출버튼을 누르고 지갑을 잃어버려서 혹시 신고 들어온 거 있나 물어보려 한다고 했더니, 혹시 아이폰 들어 있는 검정색 지갑이냐고 묻는다. 네, 맞아요! 철커덕 잠겼던 비상문이 열리고 역무실로 달려가니, 내 지갑이 맞았다. ㅠ.ㅠ 본인 확인을 위해 신분증 보여달라는데, 다 빼놓고 왔으니 원.. 그래도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번호 확인을 하고 잠긴 패턴 풀어 다시 통화기록까지 확인한 뒤 지갑을 돌려주었다. 어휴... 안에 신용카드도 무사히 들어있다고. 헌데 현금은 사라지고 없었다. ^^;;

 

5만원짜리 1장, 만원짜리 1장, 천원짜리 2장 들어있었는데... ㅋㅋㅋ (왜 하필 별로 쓸 데도 없으면서 현금은 또 그리 많이 가져갔을까!) 하지만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걸 안 순간부터 내가 다짐한 것이 있었으니--어쩐지 지갑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뜬금없이 50퍼센트쯤은 들었다. 무슨 근거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혹시 누군가 지갑을 주워 맡겨놓은 사람이 있다면 그 고마운 사람에게 지갑에 든 현금을 몽땅 사례금으로 주어야지 하는 결심이었다. 그랬었기에 지갑에 들었던 현금이 홀라당 사라졌어도, 그저 다행이다 고맙다 역무원들에게 연신 감사인사를 했다. 역무원들은 원래부터 현금은 없었다며 찝찝하다고 걱정했지만, 원래도 사례금으로 다 줄 생각이었다고, 그분이 미리 챙겨간 셈 치면 된다고 얘기하고 역무실을 나왔다. 지갑 주워준 사람도, 지갑을 열어보고 현금을 발견한 순간 이 정도 사례금은 받을 만 하다고 자평하지 않았을까 싶다. ㅎㅎ

 

지갑 못 찾았으면 당장 집에 갈 일도 깜깜한 상황에서(그럴 땐 역무실에서 차비도 꿔주고 그러나?? 문득 궁금 ㅋㅋ) 신용카드며 휴대폰까지 무사히 되찾았으니 진짜로 얼마나 다행인가. 돈 잃어버리고도 기분 좋은 경험은 또 처음이 아닐지...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