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충동적으로 자수를 해볼까 생각했던 적은 전에도 몇번 있었다. 공주였던가 어느 약선밥상 밥집에서 수제 자수브로치를 팔고 있었는데, 진짜 간단한 꽃 수놓아놓고 막 만원 만오천원...(비싸다면서 결국 샀다 ㅋㅋ) +_+ 인건비를 감안해야겠지만 저 정도는 나도 할텐데! 싶었던 거다. (그러나 막상 직접 만들어보면 그냥 사는 게 차라리 싸다는 걸 절감한다. ;-p)
그러다 작년엔 특히 뭔가 손꾸락을 꼼지락거려 뭔가 더 만들고 싶어졌는데 그건 아마도 웹툰 <오늘도 핸드메이드>를 열심히 봤기 때문인 것 같다. 5분스케치를 해보니 웹툰 작가들이 특히나 막 위대해보였고, 더더욱 미술전공자로 온갖 만들기에 능한 황금손 작품들을 보며 감탄함과 동시에 뜨개질과 프랑스자수 욕망이 더욱 불타올랐다. 마침 뜨개질 책도 번역했겠다. ㅎㅎ
어느덧 이 웹툰은 완결되어 단행본도 나왔는데, 책도 사고싶단 생각을 하긴 했으나 막상 사진 않았다. 책까지 사면 거기 들어 있는 모든 핸드메이드 작품을 막 다 따라하고 싶어질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ㅋ
암튼 프랑스자수 책 선물도 2권이나 받았고, 또 서점에서 책구경하다 내가 충동구매한 자수책도 있고 이미 발동은 부릉부릉 걸린 상태. 부리나케 필요한 색깔의 린넨과 자수틀을 인터넷으로 사들였다.
문제는 필요한 수십종의 실 색깔을 일일이 인터넷으로 제대로 받기 어렵다는 점. 번호가 워낙 비슷비슷하다보니 실색깔 번호 잘못 받았다는 불평 후기가 엄청났다. 한개 몇백원밖에 안하는 실을 일일이 골라 반품할 수도 없고, 그게 아니면 그냥 필요없는 색깔까지 세트로 장만해야하고... 그 속에 내가 필요한 색깔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고. 쳇.
해서 동대문시장에 한번 나가긴 나가야하는데.. 마음속으로 고민만 하던 차에 덜컥 DDP에 전시를 보러 가게 될 줄이야! 이것은 나의 취미생활을 위한 운명적 계시가 아닌가... 뭐 이런 얼토당토 않은 핑계를 대가며 메모지에 빼곡히 번호를 적어가지고 자수실을 사러갔다. 물론 실을 감아둘 '보빈'이라고 부르는 실패랑 보관상자랑 자수바늘이랑, 수성펜, 트레이싱페이퍼, 먹지, 순간접착제, 브로치 재료까지... 바구니에 죄다 담고나니 ㅋㅋㅋ 7만원이 다 되더라는;; (원단이랑 수틀 구입비까지 더하면 10만원. 흠... 1년 취미생활 비용으론 괜찮은가? 과연 나는 몇번이나 더 동대문 재료상으로 달려가게 될까. 화방 가서 사야하는 나무 판넬도 있는데;;)
아래는 책을 보며 내가 목표로한 자수 작품 사진과... 그아래 손목 염증 도져가며 일일이 번호 적고 실패에 감아둔 아름다운 자수실이다. +_+ 내가 구입한 건 책에서 권하는대로 앵커 사와 DMC 25번. ㅎㅎ
맨처음 감은 흰색 실은 욕심 부리고 실 2개를 한꺼번에 감았더니 뚱뚱해서 안꽂히더라. ㅋㅋ 보빈에 감아 파는 자수실이 죄다 8m였던 건 다 이유가 있어서였다. ㅠ.ㅠ 암튼 많이 필요할 것 같은 색깔은 2개씩 샀더니만 보빈이 결국 모자랐다.
첫날은 자수실 정리하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
둘쨋날밤에 드디어 제일 먼저 시도할 작품을 골랐다. 4개절 나무 브로치 중 가장 간단한 겨울나무.
책에 실린 도안을 트레이싱페이퍼 대고 그려서 다시 먹지대고 천에 옮기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ㅠ.ㅠ 엄청 짓눌러 그려도 잘 안보여! 대충 감으로 비슷하게 하다보니 원본 도안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포스팅용으로 중간샷도 찍으려니 에고... ㅋㅋ 둥근 브로치 판에 씌우려면 저렇게 홈질 후 실을 잡아당겨 주름을 잡아준 뒤 뒤에도 꽁꽁 당겨가며 실로 꿰매야한다. 겨울나무는 어쩐지 첫 작품이 마음에 안들어 하나 더 만들었다.
두번째로는 여름나무. 실 하나에 여러 톤의 초록색이 들어간 실은 단색보다 두배반이나 비싸다. 일반 단색실이 5백원이면 복합사라고 하는 색실은 천이백원. 염색하기 어려울테니 당연하겠지.
여름나무엔 내 이니셜도 새겼다 ^^v
이상하게 같은 크기인데 겨울나무 동그라미가 더 커보인다. ㅋ
일단 여기서 또 하루를 마감하고 그 다음날.. 욕심을 부려 봄꽃 핀 나무를 시작했다. 역시나 연분홍색은 복합사로 프렌치너트 스티치를 해야하는데, 와 소싯적에 자수 좀 놔봤다고 자부심 부렸던 것도 무색하게 책 속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매듭이 풍성하게 안만들어졌다. ㅠ.ㅠ 욕심 부려서 한번 더 휘감으면 막 튀어나오기나 하고.. 젠장. 거의 마지막에야 요령을 좀 터득했는데, 내가 실을 감을 때도 바늘을 꽂을 때도 너무 꽁꽁 잡아당긴 탓이었다. 암튼 여기서도 먹지 대고 그린 도안은 잘 안보여서 막 대충대충 채우기 신공..
가을을 제외한 (생각해보니 가을용 황갈색 원단은 안 산듯;;) 봄여름겨울 3계절이 완성되었다. 첫 작품치고는 이만하면 훌륭하다고 자화자찬하며 뿌듯한 마음으로 잠들었지만.. ㅠ.ㅠ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손목이 심히 아팠다. 양념통 뚜껑을 열 수가 없을 만큼 ㅠ.ㅠ 해서 당분간 자수 취미생활은 좀 쉬어야겠다. 내일 정형외과 가면 무릎 대신 손목에 물리치료를 받을까 그러는 중.
Foodie 앱으로 찍었더니 사진이랑 실제 브로치랑 구분이 잘 안간다! ㅎㅎ 이것이야말로 사진빨이로다.윗줄이 책속 사진이고 아래 3개가 나의 실습작품임. 원작과 도안은 박성희의 <처음 만나는 프랑스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