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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벌

투덜일기 2011. 4. 13. 14:43

몇년전 <꿀벌대소동>이란 애니메이션을 보기도 했지만, 공해가 점점 심해지면서 꿀벌들이 차츰 사라져가는 추세를 걱정하는 환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꽤 많이 접했다. 꿀벌이 사라지는 바람에 모든 식물의 수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먹이사슬의 근간이 무너져 결국 최종 포식자인 인간에게도 대재앙이 올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그러고 보니 도시에서 벌 구경한 적이 정말로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땐 마당에 피어난 자잘한 꽃들 사이로 벌들이 쉴새없이 날아다녔고, 종종 벌에 쏘이는 사고도 벌어졌는데 말이다. 못생긴 꽃의 대명사로 알려진 호박꽃을 어린 나는 꽤 좋아해서 못생겼다는 세간의 잣대를 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꽃잎마저도 통통하고 푹신한 주황색 꽃이 얼마나 탐스러운가. 게다가 가느다란 덩굴손은 또 얼마나 신기한지. 할아버지댁 마당에도, 나중에 우리집 마당에도 한켠엔 꼭 호박덩굴이 몇 그루 자라고 있었고 거기서 딴 애호박으로 할머니도 엄마도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주었다. 지금도 애호박으로 만든 온갖 반찬을 좋아하는 건 그 시절의 추억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안이 깊은 호박꽃을 들여다보며 노는 걸 즐겼던 나는 두번이나 크게 벌에 쏘인 뒤 호박꽃 갖고 놀기를 포기했다. 처음엔 손가락을 쏘였지만 두번째는 눈두덩을 쏘이는 바람에 호되게 앓으면서 사실 꽃밭에서 노는 걸 금지당한 셈이었다. 곤충은 거의 다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편인데 지금도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가 나면 순식간에 얼어붙는 걸 보면 어린시절의 각인 효과가 퍽이나 큰 모양이다. 

어쨌거나(요즘 포스팅의 모든 마지막 문단은 이 말로 시작한다는 걸 깨달았다. 논리의 부족을 얼버무리는 이런 말--어쨌거나의 친구로는 '아무튼, 여하튼, 암튼, 어쨌든' 등이 있다--없었으면 어쩔 뻔 했냐;;) 그거야 서울도 그리 삭막해지기 이전 이야기고 최근엔 환경공해 때문에 벌을 구경한 적이 거의 없다고 여겼다. 꽃놀이하러 외출하는 걸 그리 즐기는 사람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봄꽃 피는 과정에 눈감고 살았듯 꽃을 보아도 벌을 굳이 찾아보지 않은 나의 비뚤어진 시각 탓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역시나 화창하고 찬란한 날씨에 창밖을 내다보니 집앞 벚꽃은 거의 다 만개해 눈이 부실 정도다. 놀라운 건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수십 수백마리의 벌들이 가지마다 윙윙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흔히 보는 꿀벌 뿐만 아니라 날아드는 종류도 다양하다. 어린 시절 잘 알지도 못하면서 꿀벌의 두세배쯤 되는 큼지막한 벌을 호박벌이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시커멓게 생긴 그 대형 벌에 말벌까지 경쟁적으로 꽃을 탐하고 있다. 벚꽃에도 그렇게 꿀이 많았던가? 하도 신기해서 한참을 내다보고 섰다가 피식 웃었다. 꽃을 유난히 좋아하면 늙는 거라던데(그치만 난 어리고 젊었을 때도 꽃을 좋아했다고!), 이젠 꽃에 벌 날아드는 거 보고도 좋아라 하는 사람이 되었구나 싶다. 굳이 우기자면 꽃에 벌 날아드는 게 좋은 게 아니고 아직 이 도시엔 날아들 꿀벌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게 반가운 거다. 이왕 날아온 벌들이 옆에 있는 앵두나무도 열심히 수정해주면 더욱 금상첨화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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