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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칼

투덜일기 2015. 8. 23. 23:45

3주쯤 전에 머리를 확 잘랐다. 점점 짧은 단발이 되어가다보니 아예 묶이지도 않고 어째 더 더운 것 같아서 30대 초반에 하던 경쾌한 커트 머리를 다시 시도해보기로 한 거였다. 가벼운 느낌의 갈색으로 염색까진 할수없겠지만 그래도 얼추 봐줄만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연예인이 한 예쁜 머리 사진을 가져가면 "손님, 이건 고데기예요" 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모델들의 예쁜 커트머리 사진 대신 당당하게 커트머리를 한 나의 옛날 사진을 찍어갔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렇게 해주세요... 미용사는 이건 단발 아니고 완전 커트인데요, 라면서 나의 결심을 되물었다. 네. 시원하게 잘라주세요. (마지막 말은 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치만 중요한 건 어디까지나 "숱이 많아보이는 것"이라고 강조했기에 별 일 없을 줄 알았다. 15년의 세월로 얼굴은 좀 늙었지만 옛날 느낌은 비슷하게 나지 않을까 예상도 했다. 

서걱서걱 생각보다 많은 머리털이 숭덩숭덩 잘려 바닥으로 떨어졌다. 안경을 벗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설마, 샘플 사진도 있는데 완전 망치기야 하랴 싶었다. 드디어 커트가 끝나고 드라이도 마무리되고, 미용사는 안경과 함께 거울을 손에 쥐어주며 회전의자를 돌렸다. 허걱... 뒷머리를 거의 정수리까지 죄다 쳐놨다. 납작한 내 뒤통수 어쩔!! 

<시원하게> 자른 건 맞는데, 머리가 너무 짧아서 숱이 많아보이기는커녕 비맞은 생쥐꼴로 머리칼이 머리통에 착 붙었다. 게다가 가뜩이나 정수리부분 훤해져서 속상한데 왜 전체적으로 숱을 그리도 쳐놨을까나... 어휴... 미용실과 음식점에서 미용사와 요리사에게 밉보이는 게 제일 어리석은 짓이라고들 하던데... 미용사는 1) 훨씬 어려보이고 2) 얼굴도 작아보이고 3) 완전 시원한 느낌으로 잘 어울린다고 호들갑을 떨며 자화자찬을 하는데 거기다 뭐라 그럴 수도 없고 돌연 소심 모드 발동하여, 속을 끓이며 그냥 나왔다. 으엉...하나도 안 예쁜데... 흑흑.. 그래도 최소한 머리 감을 땐 아주 간편하겠군, 샴푸 절약되겠다, 그러면서.

가족의 반응은 처절했다. 집안에 자꾸 안보던 남자가 돌아다녀서 깜짝깜짝 놀란다는 것이 엄마의 총평이니 말 다했지. ㅋㅋㅋ 앞머린 또 왜 이렇게 짧아! 내가 머리칼에 별로 연연해하지 않기는 하지만 흠흠... 도무지 드라이로도 감당이 잘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해도 네모난 두상을 감출수가 없잖아. ㅠ.ㅠ 몇몇 친구들도 깜짝 놀라며 솔직히 비난을 날렸다. 왜 이렇게 짧게 잘랐어! 니가 오드리 헵번인 줄 아냐! (아닌 줄 알거든요...) 

머리를 자른 나를 본 사람들은 종종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니 왜 사람들이 머리칼을 확 자르면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요새도 여자애들이 실연하거나 인생에 큰 실패나 중대 결정을 앞두면 머리칼을 확 자르고 그러나? 남자들은 종종 삭발을 하는 것도 같지만 그건 다 두상 예쁜 사람들이 누리는 패션의 특권이던데. 하여간 "아무 일 없고 너무 더워서 잘랐다"는 나의 대답을 그들은 잘 믿어주지 않았다. 분명... 무슨 일 있는 것 같은데.. 얼굴도 좀 안됐고 (위경련에 시달리면서 마감도 했거든요!) 표정도 안좋고... (당신들 꼴보기 싫어서 그래요!) 

째뜬 갑자기 괜한 관심 끌려고 머리칼 못살게 구는 사람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아서 민망했다. 3주나 지났는데도 아직 보는 사람마다 깜짝 놀랄 정도니 처음엔 대체 얼마나 짧았던 걸까 실실 웃음도 좀 나고... 집안에 남자가 돌아다녀 흠칫 놀란다는 엄마 얘기도 수긍이 간다. 뒷머리를 하도 쳐놔서 어느 새 밑에 꼬리만 너무 보기 싫게 자랐길래 엊그제는 욕실에 가위 들고 들어가 손수 다듬기를 시도했다. (흥! 그 미용실 다시는 안갈 작정이기 때문에)  더 망칠 수도 없을 거라 여기며 문방구 가위로 싹둑싹둑 아랫머리를 다듬었더니 우와... 뒤통수가 훨씬 덜 납작해보인다! ㅎㅎ

한달쯤 더 길러서 또 다시 꿈의 미용실을 찾아 헤매다 15년전 사진을 들고 이 머리 해주세요.. 그래볼 작정인데 과연... 그땐 성공을 할까. 하기야 머리칼이 그때처럼 힘도 없고 숱도 더 적어졌으니 헛된 꿈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불끈. 어쨌거나 단발의 시대는 가고 당분간 다시 커트의 시대에 진입했다. 찰랑찰랑 긴 생머리나 사자갈기 같은 긴 파마머리는 내 생애 두번다시 없을 테고 앞으로 과연 나는 또 어떤 종류의 머리칼을 하고 다닐지 궁금하다. 할머니가 되어도 정녕코 할머니 뼈다귀 파마는 안하리.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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