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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삶꾸러미 2009. 2. 2. 17:18

강산도 변하게 만든다는 세월인 십년은 사람마다, 아니 나이대에 따라 결코 정량의 세월일 수가 없다.
물리적으론 똑같은 시간이라고 해도 본인이 받아들이는 시간의 추이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갓 태어난 아이와 열살짜리 아이, 열살짜리와 스무살 짜리만 비교해봐도 그 힘은 놀랍다.
몸과 정신이 눈에 보이게 자라나는 각각의 그 십년간은 마치 오랜 세월 같은 자리에 카메라를 놓고 찍은 필름을 초고속으로 돌려보는 것처럼 변화무쌍하다.
스무살에서 서른살까지의 십년 역시 누구에게나 퍽 파란만장하기 십상이라, 사실 서른살 이전까지는 인생을 십년 단위로 끊어 조망하기가 오히려 어색하고 민망하다. 그 이후의 세월과 비교하면 서른살 이전엔 그 각각의 일년이 서른 이후에 느낀 10년 세월에 필적할 만큼 촘촘한 길이와 굴곡을 갖고 있는 듯하다.

어제, 온라인 세상에서 난생처음 맺은 묘한 인연이 10년이나 지속되어왔음을 기념하는 조촐한 모임이 있었다.
다들 모이진 못했지만 구성원들 가운데는 처음 만났을 때 겨우 고등학생이었다가 그간 대학을 가고 군대를 다녀와 직장인이 되거나, 역시 그때 고등학생이었는데 갓 결혼해 예비엄마가 된 이도 있었다. 나이도 직업도 모두 달라 일부러 모아보려고 해도 삶이 겹쳐지기 힘들 것 같은 다양한 구성원이면서, 하찮을 수도 있는 공통된 관심사 하나로 뭉쳐진 우리가 10년이나 계속 만남을 이어올 수 있었다는 것이 늘 신기해서 10주년이 되면 그럴듯하게 파티를 해야한다고 그간에 서로 너스레를 떨었지만, 막상 10년을 기념하는 어제의 자리는 특별히 감개무량하거나 호들갑스러운 느낌 없이 담담한 일상처럼 흘러갔다. 또 한 번의 10년이 지나더라도 다들 그 자리에 있을 것을 실감했기 때문일까.
특히 지난 10년간 신변에 달라진 것이 전혀 없는 듯한 내가 느꼈던 건 약간의 기시감이었다.
열여덟에서 스물여덦으로 성장한 이는 10년간 자신의 삶이 얼마나 역동적으로 변해왔는지를 역설했지만 내가 보기엔 여전히 깡마른 녀석의 겉모습조차 크게 변함이 없었고, 초기에 서로에 대해 얼마간 수줍고 조심스러운 탐색을 거친 뒤론 거의 속속들이 인생을 지켜보아 알고 있는 터라 어쩌면 이젠 시간이 가도 새로울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도 그렇고,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도 그렇고
인간의 나이 서른살이 특별한 조망을 받는 이유는, 내가 몸소 지나고 보니 그 뒤로도 서른의 정서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십대 이십대를 거치는 동안 서른 즈음엔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어 있거나,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사뭇 많은 것을 이루어 놓았으리라고 짐작하지만, 현실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 객관적으로 보기에 정말로 큰 성취를 이루어놓은 서른의 인생도 없지는 않겠지만, 내 경우 서른살은 크게 무언가를 이루어놓았기는커녕 겨우 스스로 바라는 인생의 방향을 잡으려고 고군분투하는 나이였고 그 뒤로 10년이 더 지났지만 정서적으로는 전혀 그 이상 성숙하지 못한 채로 남아있다. 그리고 단언하건대, 철없는 나의 두뇌는 앞으로 10년, 20년이 뭉텅뭉텅 흘러가 노년에 접어들더라도 겨우 요 정도의 성숙도에서 맴돌 것이 틀림없다.

어제 모임에서, 10년이 더 흘러 20주년을 기념하는 날에도 난 분명 지금처럼 남들의 사회적 잣대를 코웃음치거나 그들에게 은근한 손가락질을 받으며 철딱서니없이 계속 이렇게 살고 있을 거라고 장담을 하고 돌아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보기엔 그만큼 훌륭한 인생은 없을 것 같다. 과연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지만, 줄곧 서른살의 정서로 살아가는 중년과 노년은 이른바 나이값 제대로 하는 중년과 노년보다 훨씬 더 굴곡진 질풍노도의 세월을 겪을지 몰라도 틀림없이 활기차고 즐거울 테니까!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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