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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1.19 순천만, 조계산 선암사 송광사 6
  2. 2016.01.06 2015년 Best 6
  3. 2015.12.03 눈길 4


11월 8일 저녁에 떠나서 순천에서 1박하고 9일 새벽에 순천만을 돌아본 뒤, 곧장 조계산을 오르는 빡빡한 일정에 따라 나섰다. 경기 강원 근교 산이야 뭐 마음 먹고 친구들과 스케줄 짜면 갈 수는 있겠지만, 남도 쪽에 있는 산들은 이렇게 단체로 버스 타고 가는 기회가 아니면 가보기가 쉽지 않다. 

서울 모처에서 7시30분에 출발. 밤길이고 거의 다 가서도 길이 꽤 막혀서 밤 12시가 다 되어 도착했다. 버스에서 나눠준 김밥을 헐레벌떡 먹었지만 그래도 출출한 건 사실이고 결국 새벽 1시반에 라면에 계란 넣어 끓여먹고서야 뿌듯한 배로 몸을 뉘였다.

당연히 잠은 설쳤고, 계획대로 6시에 펜션을 출발해 순천만 돌아보기 시작. 으아.. 이 얼마만에 보는 여명과 일출인가.​

벌써부터 오리들이 꾸륵꾸륵 울어대며 날아다니고 있었는데 높고 멀어서 사진엔 잘 안보이지만 맨 오른쪽 사진엔 활강하는 새 한마리가 찍혔다! 

7시 5분이 일출시간이라며 다들 헐레벌떡 용산전망대라는 곳을 오르는데... 에고에고... 날도 추웠고 길은 멀고.. 결국 맨앞 일행은 몰라도 다들 일출을 보는 건 실패했다. 그래도 올라간 보람이 있을 만큼 숲길도 풍광도 아름다웠음.

순천만 갯벌에서 자라는 갈대도 멋졌지만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와 동글동글한 섬과 구불구불한 물길, 멀리 보이는 섬들이 어쩜 그렇게 정겹고 에쁜지! 오른쪽 사진에서 붉게 보이는 건 '함초'라고 한다. 함초소금이 분홍색인 이유가 있었어!

전날 밤에 미리 라면을 안 먹었으면 어쩔뻔했냐고 계속 투덜댈 정도로 이미 뱃속은 허기져서 꼬르륵꼬르륵 울어대고, 방한에 신경을 덜 쓴 관계로 내려올 땐 손시리고 춥고... 아침 식당에 가자마자 꾸역꾸역 밥으로 속을 채웠다.

​다행히 조계산 정상 장군봉을 향해 가는 대신 이왕이면 여유롭게 가을산을 만끽하는 쪽으로 방향이 수정되어 선암사에서 송광사 넘어가는 길로 모두 향했다. 얼마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7대 사찰 중 하나인 선암사엘 드디어 가보는군 싶어 신이 났다. 까마득한 옛날 고딩 시절에 '여름수련회'로 갔던 통도사와 대흥사, 마곡사를 가본 걸로 친다면, 비교적 최근 답사로 다녀온 법주사, 부석사를 포함하고 이번 등산을 계기로 6개 클리어. 안동 봉정사만 가보면 되겠다. (그러나 통도사, 대흥사, 마곡사도 30여년전이 아닌 요즘 모습을 좀 보고싶다. ㅠ.ㅠ)


선암사에서 꼭 눈여겨보아야할 것들이 여럿이라고 현직 역사선생님이신 선배가 미리 준비한 동영상도 보여주고 설명도 해주는 걸 비몽사몽 대충 넘겼으나 그럼에도 선암사의 백미라는 승선교는 그 이유를 알겠더라.

승선교의 무지개 아치 안으로 쏙 들어오는 저 전각을 보려면 개울 아래로 내려가야하는데 ^^; 귀찮아서 난 내려가지 않았고 선배님들이 찍은 사진을 이렇게 퍼왔다. ㅎㅎ 내가 찍는다고 더 잘 찍을 것도 아니고!​


​그래도 이 사진은 내가 직접 찍었음. 파란 하늘과 앞서 걸어가는 일행들의 뒷모습과 노란 단풍이 정말 예뻤다.

올 가을은 날씨가 오락가락해서 잎들이 물들기 전에 말라버리거나 타버리거나 오그라들어서 단풍이 별로 안 예쁘다는 말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아직 단풍이 절정이 아닌 순천엔 예쁜 나무색이 정말 많았다. 

빨갛고 노란색, 그 중간색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여기저기서 탄성을 자아냄. 그러나 역시 휴대폰으로 담아온 사진들은 그 느낌을 제대로 살려내주지 못하고... 에효. 

이번에 처음 안 건 선암사가 조계종 사찰이 아니고 태고종 사찰이라는 것. 그래서 스님들이 입은 가사 색깔이 갈색이 아니고 새빨간 색이다. 태고종은 승려도 결혼을 할 수 있으니 각자 스님들별로 살림집이라고 할 수 있는 요사채가 곳곳에 나뉘어 있고 크고 작은 암자도 자잘하게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런 구조의 절집은 정말 처음 보는 느낌.

 


어딜 찍어도 옆 건물 기와가 서로 겹쳐져 걸리는데 그게 또 매력이다. 한옥집 짓고 살며 처마에 나도 풍경 매달고 싶으다.. ㅠ.ㅠ 


어딜 봐도 고풍스러운 사찰의 매력이 느껴졌는데... 꼭 보아야할 것 중 하나가 원통전 모란무늬 문살이라고 해서 홀로 앞장서 다니며 마구 찾아다녔으나 실패. ㅋㅋ 결국 선배님이 가르쳐주셨다. 내가 보러 다녔을 땐 문을 열어 젖혀놓고 예불 중이어서 보였을 리가 없다. 아래 맨 오른쪽 사진이 바로 그 선암사 원통전의 모란문살이다. 진짜 정교하고 아름답고 단청을 새로 하지 않아 고색창연하고... 

선암사의 '뒷깐'까지 서둘러 구경을 마친뒤 송광사로 출발했다. 스님들이 노상 다니는 길이라 수월하다매! 기막혀서... 돌계단이 끝이 없고 구간구간 경사는 또 왜 그리 가파른지. 잘난 척 스틱 없이 오르다가 결국엔 헉헉대며 스틱을 펼쳐들고 몸을 실었다. 다행인 것은 조계산엔 중턱에 보리밥집이 있어서 굳이 도시락을 싸들고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바라보이는 산자락에도 동글동글 단풍색이 예뻤는데...


부침개와 도토리묵을 추가한 4인 상의 위용.





몇번의 헉헉대는 고비를 넘긴 끝에 깔딱고개를 넘고 넘어 '원조 보리밥집'에 도착했다. 산속에 보리밥집도 심지어 여러개! ㅋㅋ 비닐하우스를 곳곳에 짓고 그 안에 평상을 깔아놓은 식이었는데, 배도 고팠지만 우와 쌈채소도 싱싱하고 반찬이 다 맛있었다. 한잔 곁들인 동동주인지 막걸리도 환상의 맛!

아침을 배불리 먹은 뒤 1시도 안 되어 맞은 점심시간인데도 밥한 공기 다 비벼서 이 한 그릇을 싹싹 다 먹어치웠었더니만 진짜 잘먹는다고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아 예, 제가 간식은 안먹어도 밥은 엄청 잘 먹습니다요. 밥심으로 살지요.. 

이 원조집은 무려 1980년(!)부터 영업을 했대고 월요일엔 휴무란다. 도시락 없이 월요일에 조계산 등산하다 찾아가면 큰 낭패일듯. 혹시 모를 훗날을 위해 나도 기록해놓는다. (근데 과연 또 가게 될까? ㅠ.ㅠ) 



흡족하게 부른 두들기며 출발해보니 송광사까지 아직도 남은 거리가 3.5km쯤. 다시 수많은 돌계단과 비탈을 오르고 내려 드디어 송광사를 만났다. 정상만 안 갔지 거리로나 경사로 보나 힘든 등산은 똑같이 다 한 셈이었다. 다들 지치고 시간도 많이 지체되어 송광사 경내는 최대한 후다닥 돌아보기로. 

초록색부터 연두색, 노란색, 선홍색까지 모두 매달고 있는 환상적인 단풍나무들이 곳곳에 있었으나... 사진으로 찍으면 이 정도가 최선이다. ㅠ.ㅠ

​​선암사의 고색창연함에 너무 감탄했던 모양인지, 다분히 새것으로 갈아엎어 현대식 느낌이 풀풀나는 송광사는 상대적으로 별로 감흥이 없었다. 나름 멋진 건축이다 싶었던 회랑과 누각의 위용은 이 정도... ​

내가 귀찮아서 휙휙 찍은 사진들이 위와 같다면 다른 분들이 심혈을 기울여 찍은 모습은 또 좀 다르다. ^^; 

왼쪽은 내가 찍은 선암사의 해우소. 신발 벗고 들어가야 함! 그래서 난 안들어갔고.. 가보면 엄청 높아서 고소공포증이 느껴진다고 한다. 안 들어가길 잘했지. ㅋ

아이폰으로 대충 난사누군가 신형폰으로 찍어 공유해준 사진

이날은 아침 6시부터 펜션을 뛰쳐나가 집에 11시반에 도착하기까지 무려 3만7천여보를 걸었더라. 하산 길에 무릎보호대를 했음에도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오른쪽 무릎이 아파 낑낑거렸고, 다음날 당연히 근육통에 시달렸다. 하지만 1박 2일간 이렇게 알차게 돌아보는 일정이 또 어딨겠나 싶어서 뿌듯했던 가을나들이. 단풍든 나무는 정말 실컷 다 보아서 여한이 없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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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Best

놀잇감 2016. 1. 6. 17:36


2015년을 깔끔하게 끝낼 생각으로 best 목록 뽑기를 시작했는데 에효... 난데없는 감기기운으로 계속 빌빌대느라 새해 시작되고 나서도 한참 지나도록 마무리를 못했다. 나름 건강관리를 한 덕분인지 이놈의 감기 바이러스가 본격적으로 활약하진 못하고 묵직한 두통과 약간의 콧물로 깔짝깔짝 괴롭히고 있는데, 그게 아주 성가시다. 가을에 일찌감치 독감예방주사를 맞고도 감기몸살로 2주 넘게 끙끙 앓고 계신 왕비마마와 한 공간에 사는 사람치곤 그래도 이만한게 장하다 싶지만... 빌빌대려니 짜증스러운 건 어쩔 수가 없다. 째뜬 2015년 정리와 함께 감기도 말끔히 떨어지기를!!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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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투덜일기 2015. 12. 3. 22:06

오늘은 이상하게 눈길을 걷고 싶었다. 뽀드득뽀드득 소리나게 눈을 밟으면서.

그러나 느즈막히 일어나 밖을 내다보니 푹한 날씨에 벌써 눈은 거의 다 녹아 흔적을 찾기가 어려웠다. 나뭇가지에나 조금 매달려있을뿐.. 

그렇다면 방법은? 동네 산에라도 올라가는 것뿐이었다. 마침 도서관에 책 갖다줄 것도 있겠다 겸사겸사 집을 나섰다. 기온은 영상이라지만, 산속은 그래도 추울지 모르니깐 따뜻한 물도 좀 챙기고 귤도 하나 주머니에 넣었다. 간간이 부는 바람은 꽤나 싸늘. 후드티 모자를 푹 뒤집어썼다.

눈내린 날의 늦은 오후. 늘 사람들로 버글거리던 개천변 산책길에도 인적이 드물더니만 산길을 오르는 오솔길엔 사람구경하기가 정말로 어려웠다. 아이 좋아라. 온 산이 다 내것이여~

공포영화나 롤러코스터는 무서워하지만, 혼자 집에 있는다든지 깜깜한 곳에 혼자 있는 것, 아무도 없는 길을 걸어가는 따위는 무섭지 않다. 오히려 사람이 나타나야 괜히 무섭지... 산속에서 저 멀리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불현듯나타나는 할매, 할배들이 아예 없어서 더 좋았다. 고즈넉하고 호젓한 분위기.

하지만 뽀드득뽀드득 밟히는 눈길은 좀체 나타나지 않았다. 죄다 질퍽질퍽 녹아버렸;;; 그래도 실망은 일렀다. 정상 봉우리를 남겨두고 마지막 산모퉁이를 돌자 그때부턴 정말로 눈길 시작. 사람들이 죄다 밟고 다니긴 했어도 뽀드득뽀드득 제대로 소리도 나주시고, 오가는 바람에 눈보라가 가끔씩 마구 휘날려주시고, 아주 깊은 산속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정상 봉수대에서 한바퀴 서울시내를 내려다본 뒤 미지근하게 식은 물 원샷하고는 서둘러 내려오는 길.... 아 쒸.. 길을 잘못들었다. 새하얗게 눈이 덮인, 아무도 걷지 않은 산길을 내가 제일 먼저 오르고 싶다는 이상한 로망이 있지만, 게으름 때문에 도무지 실천을 못하는 것말고도 혹시 산속에서 괜히 길을 잃으면 어쩌나 그런 두려움이 있었다. 동네 산이기는 해도, 아니 동네 산이기 때문에 길이 하도 여러갈래라서 조금만 신경을 덜 쓰면 다른 동네로 내려가기십상인 게 이 동네 @산이다. 

거기다 자락길까지 만들어놔서 사방팔방으로 다 통하게 해놨으니... 곳곳에서 만나지는 정자도 비슷비슷, 운동기구도 비슷비슷, 약수터도 비슷비슷... 오늘은 그냥 눈 녹은 길만 따라 올라갔다 내려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어디선가 방향을 잘못 들었나보았다. 

올라갈 때 본 정자가 틀림없는 줄 알고 내려가보니 완전히 낯선 길 옆이었다. 젠장. 머릿속으로 방향을 더듬어 내려간 곳은 당연히 연희동 쪽인 줄 알고 방향을 틀어 걸어갔는데.. 아 놔... 또 멘붕. 내가 내려간 곳은 연희동쪽이 아니고 정 반대인 무악재쪽이었다. ㅋㅋ 완전히 산을 넘어가버렸네그려. 그나마 중턱에 뚫린 자락길을 다시 돌아서 무사히 도서관에 들렀다가 집에 왔지만, 길 잃은 줄도 모르고 산속에서 좋아라 사진 찍고 흥얼대다가 맑아졌던 파란 하늘이 다시 구름으로 덮이면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순간 살짝 겁이 났다.

여기서 괜히 빙판길에(점점 기온이 떨어졌는지 중턱 아래쪽도 눈길이 얼어붙기 시작) 넘어져 팔이라도 부러지면 혼자서 낑낑대며 병원까지 가야하는 건가 어쩐가...  ㅋ 왜 괜히 재수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가 자책하며 킥킥거렸다. 당연히 조심조심 걸어 한번도 안넘어졌음.   

올초부터 눈길에 꼭대기까지 안가본 것도 아니고... 늘 다니던 산길에서 길을 잃다니 (역시 눈이 덮이면 다 낯설어보인다) 좀 바보같았지만, 그래도 나름 뿌듯하고 보람찼던 눈길 탐험이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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