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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3.16 안산

안산

투덜일기 2014. 3. 16. 17:00

내가 올 들어 조금씩 산책겸 올라가보기 시작한 동네 뒷산은 부르는 산은 엄밀히 집 앞에 있으니 '앞산'이고 버젓이 이름도 두 개나 있다. 안산 또는 무악산. 이름의 유래는 여러번 들었는데 또 홀라당 다 까먹었다. '안산'이라는 말은 흔히 풍수지리에서 쓰는 말이니 그와 관련이 있으려니... 검색해보면 금세 나오겠지만 귀찮아서 패스~.

 

하여간 남들은 버스타고 지하철 타고 부러 '등산'을 하러 오기도 한다는 얘기에 괜한 자극을 받아, 언젠가는 나도 정상에 오를 일이 있겠지 여기며 힘 닿는대로 마음 내키는대로 중간까지만 갔다가(정상까지 998미터 남았다는 표지판 앞에서) 돌아오기를 두달여. 그러다 어제 전격적으로 욕심을 내 봉수대가 있다는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집안에서 볼 땐 햇살이 따사롭고 화창해보였으나 밖에 나가보니 수시로 바람이 쌩쌩. 혹시 추울까 든든하게 입고나갔기에망정이지 안그랬으면 추워서 10분만에 귀가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산 중턱 팔각정 앞 개울에서 두꺼비 발견! 겨울잠을 자고 일어난지 얼마 안 되어 그런지 기운도 없고 살가죽이 쪼글쪼글 느릿느릿 걸어다니고 있었다. 차가운 개울과 황량한 풀숲에서 녀석이 뭘 먹을 게 있으려나... 

숨을 헐떡대며 오르다 보면 후끈 덥다가 또 바람계곡으로 들어서면 춥다가 종잡을 수 없는 날씨에 콧물을 훌쩍이며 올라가려니 어디선가 내 뒤에서 홀연히 나타나 쏜살같이 앞으로 차고 나가는 외국인 미녀. ㅠ.ㅠ 내가 입은 오리털 조끼가 무색하게 그녀는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허거걱...  도촬이 미안하기도 해서 머뭇거렸지만 어찌나 빠른지 순식간에 저 앞으로... ㅋㅋ

산꼭대기에는 방송 중계용인듯 철탑도 있고, 헬기장도 있고, 조선시대에 평안도부터 남산까지 이어졌다는 봉수대가 복원되어 있었다. 계단 아래쪽 기단부는 오래된 느낌이 나는데 봉수대 돌은 너무 하얗고 새것이라 어쩐지 졸속 복원의 냄새가 풀풀... -_-; 남산에 복원해 놓은 세 개짜리 봉수대랑 모양이 똑같은지 잘 어울리는지 아닌지 모르겠다.

 

째뜬 중요한 건 내가 꼭대기에 올랐다는 것. 집에서부터 1시간 정도 걸린 듯하다. 두꺼비 구경에 몇분이나 허비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꼭대기까지 오르는 길이 하도 여러 갈래이고 여러 동네에서 올라갈 수 있도록 길을 닦아 놓아 몇번 익숙해지면 가장 수월한 길, 또는 가장 험난한 길을 골라 선택할 수도 있겠다. 중간중간 얼었던 길이 녹아 진창도 있고 등산화 없이는 꽤나 미끄러울 법한 바위 구간도 있었는데, 음마야, 플랫슈즈에 반바지 입고 남친이랑 손잡고 가뿐하게 올라온 커플도 발견했다. ㅠ.ㅠ

 

나 같은 주민들에겐 동네 뒷산 또는 앞산이고

어떤 이들에겐 등산 스틱까지 찍고 올라가야 하는 서울 근교의 만만한 등산코스이고, 일부 커플들에게는 그냥 데이트 산책 코스라는 얘기. ㅎㅎ

 

 

 왼쪽 사진에서 저 멀리 아득하게 보이는 산이 바로 북한산. 가운데 사진에선 인왕산 능선을 따라 한양 성곽도 보인다. 오른쪽 사진 중앙에 서 있는 게 남산. 서쪽으로는 여의도와 한강도 눈에 들어오는데 역광인데다 미세먼지 탓에 온통 뿌옇게 찍혔다. 등산의 묘미 중 하나가 정상에 올라 산 아래를 굽어보는 거라고 하던데, 그 잠깐 좋자고 꾸역꾸역 낑낑대며 꼭대기까지 올라가야할 '의미'를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고, 정상을 '정복'한다는식으로 말하는 심리도 통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쨌든 어제는 뭔가 '숙제'를 다 마친 기분이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얼어붙은 방죽 1월 모습 얼음 풀리고 봄이 오는 방죽, 어제

게다가 눈 쌓여 꽁꽁 얼어붙었던 겨울 산길부터 조금씩 변해가는 계절의 변화를 비교해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앞으로 곧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날 봄과 신록이 우거질 여름도 기대중. 누가 산에 가자고 하면 그렇게 싫다고 미쳤냐고 펄쩍 뛰던 내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운동삼아 산엘 오르게 되다니 참... 느낌이 묘하다. 나이가 들면 원래 산이 좋아지는 건지... 어느 산에나 득시글거리는 중장년 등반객들을 보면 그런 것도 같아서 좀 씁쓸.  

 

 

올라갈 땐 대부분 땅바닥만 보며 헉헉대느라 놓쳤는데 내려오다 신기한 나무를 발견했다. 군데군데 동글동글 붙어있는 건 이끼인가? 암튼 솔잎이 뭉쳐진 듯한 이끼무더기 끝에 방울방울 물기가 맺혔다. 뭔가 나무도 이끼도 열심히 봄을 준비하고 있는 느낌.

 

오후들어 점점 밀려든 미세먼지 때문에 기분을 좀 잡치긴 했어도, 약간 팍팍한 느낌의 장단지와 허벅지가 엄청 건강해진 듯한 착각을 안겨주고 있다. ^^;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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