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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기일전

투덜일기 2010. 8. 4. 20:15

덥고 습하고 불쾌지수는 하늘을 찌르고 몸은 쳐지면서 일은 몹시 바쁜 궁극의 구렁텅이에서 헤매느라 너무 짜증만 부렸다는 생각에 심기일전 용으로 그간 좋은 일을 꼽아본다.

7월 중순 즈음 번역 인생 50권째 책이 나왔다. 출간된 번역서가 100권 되는 날부터 옮긴이 약력에 '100여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는 문구를 넣으려고 작심하고 있었으나, 이 추세로는 어쩌면 100권 이전에 이 일을 작파하게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번역서 50권 기념'을 홀로 자축했다. 15년전 첫해엔 딱 한권이 나왔고 중간에 2, 3년은 늦은 공부한답시고 일을 거의 못했으니 15년간 50권이면 게으름뱅이라고 심히 자책할만 한 수준은 아니라는 자평을 내렸다. 엎어진 책들과 앞으로 나오게 될 책까지 감안하면 심지어 칭찬해줄 만 하다.

상반기를 마무리하며 전에 없이 맥이 빠졌던 이유는 '유사이래 최대불황'이라는 출판계 넋두리가 새삼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원숭이 줄타기 원칙이 무색하게도 예년과 달리 번역 의뢰 전화와 계약건수가 엄청나게 줄어 밀린 일 말고는 7월 초까지도 하반기에 새로 잡힌 일이 하나도 없어 위기감을 느껴야 했다. 가뜩이나 일도 하기 싫던 차에 '이 길이 아닌가벼' 하며 다른 일을 모색해야 하나 고민할 정도였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마감에 허덕이는 사이 새로운 일감이 밀려들었고 어느새 하반기 작업 스케줄이 모두 채워졌다. 믿을 수 있을지는 지내봐야 알겠지만 구두상으로는 내년 초까지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위기감에 허덕이다 고비를 넘기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나며 열심히 자신을 채찍질해 게으름을 쫓아내고 있다.

0.1퍼센트의 가능성도 없다고 확신하지만, 얼결에 모 번역문학상 심사를 신청했다는 출판사의 이야기를 들었고 (사실 아무나 다 신청할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엔 그럴만한 책이 전혀 아님에도 일단은 그런 논의에 끼어들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놀랍고 흡족하다. 번역기계가 된 느낌으로 안일하게 작업하던 와중에 그 소식을 들으니 한동안은 시시한 문장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 못하고 끙끙대며 고민했다. '상' 여부와 상관없이(오히려 나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거 싫다)  남은 번역인생에서도 좀 더 치열한 자기검열의 동기가 되겠다 싶다. 

음.. 억지로 꼽으려니 좋은 일이 또 뭐가 있는지 잘 떠오르질 않는다. 다음달로 약정이 끝나는 휴대폰이 드디어 맛이 가고 있다는 건(확인과 취소 버튼이 잘 안눌러지고, 아무때나 수시로 꺼진다 -_-;;) 좋은 일인가 나쁜일인가. 나 또한 스마트폰의 대열로 접어들 것인지 말것인지, 그렇다면 기종은 뭘로 할 것인지, 스마트폰은 관두고 그냥 예쁘기만 하고 기능이 단순한 휴대폰으로 바꿀 것인지 행복한 고민중이다. 휴대폰 추천 환영. ^^; 

쓰고 보니 다 재수없는 자기 자랑인 듯 하여 민망함이 밀려들긴 하지만, 어차피 심기일전을 위해선 나에게도 필요한 부분이다. 앞으로는 더 좋은 일 신나는 일만 생겨나서 계속 이 목록을 늘려나갈 수 있기를 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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