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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님님

투덜일기 2007. 9. 27. 00:17
전쟁을 치르듯 새벽부터 정신없이 콩콩거려야 했던 추석 날의 마지막 행사는 역시나
친지들 배웅과 동시에 하는 달맞이.
원래 한가위 달맞이는 초저녁에 처음 떠오르는 달을 보며 해야 한다지만
그 즈음엔 늘 수십 명분 저녁식사 준비로 바쁠 때라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니
우리 가족의 달맞이는 해마다 식사 후 느즈막히 귀가하시는 친척분들 배웅하러 따라 나서며 이루어진다.

이번에도 추석날 모인 22명(올핸 큰고모네랑 네째 고모네 식구들이 빠져서 그나마 좀 조촐했다)의 식구들이 몽땅 밖으로 나가 각자 달 보며 소원을 빌라고 하자
제일 신난 건 당연히 어린 조카들이었다.
5살이 되도록 좀처럼 머리칼이 자라지 않아 속상해 했던 정민공주는 그 무렵부터 늘 소원이 "머리칼 빨리 길게 해달라"는 것이었는데, 이젠 제법 머리가 공주스럽게 자라기도 했고 나이도 무려 '10살'이나 되고 보니 작년부터는 달보며 무슨 소원을 비는지 "절대 비밀"이다. ^^
6살 난 준우는 씩씩하게 "우리 아빠 QMX(나중에 그게 뭐냐고 물어서 알게 된 QMX는 르노 삼성에서 연말쯤 출시한다는 새로운 SUV 모델이란다 -_-;; 짜식.. 차 이름을 고모보다 백 배쯤 많이 알고 실물 구분도 할 줄 안다)로 빨랑 차 바꾸게 해주세요!"라고 소리질렀는데
가장 압권은 5살 난 지환이가 뜬금없이 외친 소원이었다.
"달님님! 달님님! 애기 동생 잘 낳게(?) 해주세요! 아멘!"

골목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외쳐대는  지환이의 반복되는 소원에 우린 모두 깔깔깔 웃어댔고, '달님'에 '님'자를 하나 더 붙여 새로운 극존칭을 만들어낸 데다, 수녀원 부설 어린이집을 다녀 기도엔 일가견이 생겼다는 지환이의 소원이 정말로 이루어지나 함께 지켜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
(큰 동생은 늘 자식이 셋은 있어야 한다고 은근히 바라는 눈치지만, 올케는 또 다시 지긋지긋한 육아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손사래를 치는 형편이라 지환이가 동생을 볼 가능성은 현재 지극히 낮다 ㅋㅋ)

나 역시 보름달을 올려다보며 마음 속으로 소원을 빌기는 했지만
조카들처럼 순수한 마음이 아니라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
이런저런 민속 풍습을 미신이라고 코웃음 치기는 하지만 사실 나는 재미삼아서, 또는 '혹시 모르니까' 대보름날이나 한가위날의 달맞이며, 유성우 내리는 날의 소원빌기에 열심히 참여하는 편이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그때 열심히 빌었던 소원들 가운데 몇 가지는 이루어지기도 했던 것 같다. ^^;;  

대학원 다니던 시절, 논문학기 앞두고 종합시험에 꼭 붙게 해달라고 빌었다든지,
여행을 계획하던 해엔, 부디 엄마가 무사히 환절기를 넘겨 마음 편히 내가 먼 여행을 떠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든지...

물론 반복해서 빌어도 지금껏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소원도 있긴 하지만
아마도 난 앞으로도 장단기기억력상실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답게 꿋꿋이 소원을 빌어댈 게 틀림없다.
이루어지면 좋은 거고, 안 이루어져도 어차피 내가 손해볼 건 없으니까!

그러고 보니 정작 가장 둥근 보름달은 추석 다음날에야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오늘은(시간상 벌써 어제지만) 밤하늘을 내다볼 생각도 못하고 지내고 말았다.

지금쯤은 집 뒤쪽으로 많이 기울었을 '달님님'에게 마음속으로나 또 한 번
소원을 주절거려봐야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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