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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네..

투덜일기 2016. 3. 30. 16:58

언덕배기에 주로 엄청 오래된 집들과 새로 지은 빌라들이 혼재되어 있는 이 동네의 특징은 '노인들'이 많이 산다는 점이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이름을 새긴 노란색 봉고차들이 더러 다니긴 하는데, 오래 전 ㅈㅁ이가 그랬듯이 아이들을  배웅하고 맞이하러 나오는 사람들은 젊은 부모가 아니라 할머니들인 경우가 대부분. 그래서 명절 때가 되면 아주 골목마다 본가에 다니러온 자식들 차들로 더더욱 미어터진다. 어떤 동네는 젊은이들이 주로 살아서 명절 때 골목이며 주차장이 텅텅 빈다던데...


얼마전부터 회춘하다시피 이것저것 열심히 활동하며 지내고 계신 우리 엄마를 비롯해 이 동네 노친네들도 상당히 바쁘게 살아가시는 것 같지만, 병마는 피할 수 없는 법. 동네 산책을 가려고 비슷한 시간에 나서면 아마도 뇌졸중으로 몸이 불편해진 노인들을 한두분 꼭 만난다. 보행 보조기나 네발 달린 지팡이를 짚고서 어렵사리 한발 한 발 걸음을 옮기며 운동에 열심이신 할아버지, 할머니들.


내가 동네 산꼭대기에 갔다가 돌아오는 동안 한두시간 넘게 땀을 뻘뻘 흘리며 계속 집앞 골목을 오가고 있는 어르신들을 보면 놀랍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반신불수가 되어 한쪽 몸이 대단히 불편해보였던 할아버지 한 분이 얼마나 재활을 열심히 했던지 몇달 뒤 훨씬 수월해진 걸음걸이로 걸어다니는 걸 본 적도 있고, 매일 지팡이를 짚고 집앞 벤치에 나와 있던 꼬부랑 할머니가(지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을 거셨더랬다. 내가 간단하게 장을 봐가지고 걸어올라치면 뭐뭐 샀느냐고, 오늘 반찬 뭐 해 먹을 거냐고... 묻는다든지) 겨울 지나고 나서 통 보이질 않아 궁금해했더니 그예 요양원으로 들어가셨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했다. (오지랖 넓은 울 엄마가 빨간 조끼 할머니 왜 안 보이시느냐고 언덕너머 빌라 사람들한테 물어봤단다.) 


하여간에 작년 가을부턴 깡마른 체구에 늘 새카만 파카를 입고서 처음엔 며느리인지 딸인지 누군가의 부축을 받다가, 나중엔 홀로 지팡이에 의지해 열심히 걷는 운동을 하던 할아버지를 산책길에 자주 만났었다. 그 할아버진 아마도 매일 그 시간에 운동을 했을 테지만 나는 산책을 나가는 날도 있고 안 나가는 날도 있었으니까. 안면인식장애가 있어서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면서 유독 그 할아버지를 잘 기억하는 건, 아 글쎄 중풍에서 회복도 덜 된 그 할아버지가 비틀비틀 지팡이에 의지해서 걷다 말고 비스듬히 서서 꼭 담배를 피웠기 때문이었다. 아오 보기 불안해서 원! 벤치에나 앉아서 피우시던지! 그게 아니지, 뇌졸중으로 쓰러지기까지 했으면 담배를 끊으셔야지 말이야!


간혹 바람이 불어 내쪽으로 날아오는 담배연기가 싫기도 했지만 남일에 괜히 부아가 났다. 일주일에 등산 3번 다니는 걸로 건강관리 한답시고 술담배를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고집불통 우리 아버지도 떠오르면서... 으휴, 할아버지들이란! 


오늘은 산책이 아니고 약국에 갈 일이 있어서 잠깐 밖에 나갔는데 한쪽 옆으로 자동차들이 드문드문 서 있을 뿐 지나는 사람은 하나도 없던 길에서 어디선가 담배냄새가 날아왔다. 엥? 빌라나 자동차에서 누가 창문 열고 담배를 피우나? 두리번두리번거려도 잘 모르겠더니만 길 맨 끝에 와서야 담배냄새의 연유를 알게 되었다. 


늘 새카만 파카 입고서 지팡이 짚고 다니셨던 그 왜소한 할아버지가 봉고차 바로 옆에 세워둔 전동휠체어에 앉아 언덕 아래쪽 내부순환로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으음... 내가 지나가는 소리에 흘긋 돌아보시는데, 나는 얼른 시선을 피했다. (빨간 조끼 할머니와 달리 원래도 인사하고 그러는 사이는 아니었다)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더 마르고 얼굴도 새까맣고 더 쪼그라들은 것 같은 체구.... 아 담배를 끊으셔야 한다니깐요! 아니다, 그게 소소한 삶의 낙이라면 그냥 담배라도 즐기다 가시는 게 옳은 건가? 짧은 순간 혼자 괜한 생각에 속을 끓이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약국에 들렀다가 10여분만에 다시 그 길로 돌아오는데... 할아버지의 전동 휠체어는 벌써 보이지 않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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