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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일

투덜일기 2016. 3. 13. 17:20


며칠 전에 만난 친구 S(라고 쓰고 '지인'이라 읽는다)에게 최근들어 가장 충격적인 조언을 들었다. 대학 동창인 S는 오래전에도 내게 눈두덩 지방질 제거+쌍꺼풀 수술을 '꼭' 하라고 (그것도 지 남편네 병원에서) 자꾸만 닥달을 해서 짜증나게 만든 인물인데 ㅋㅋ 잊을만 하면 한번씩 아주 심상한 얼굴로 이것저것 조언을 하며 나를 놀래킨다. 


물론 <제발 쌍꺼풀 수술 좀 해라> 드립은 내가 들은 척도 안하니깐 (내 미모가 어때서!?로 맞섰더니 기가 막혔는지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나보다 ㅠ.ㅠ 물론 S는 30년전에도 지금도 자타가 인정하는 아주 빼어난 미인이다)포기한 거 같더니 몇년 전부터는 또 <라섹수술>을 하라며 들들 볶는다. 나는 1) 일단 무서워서 못한다. 2) 갖고 있는 안경들 아까워서 못한다. 게다가 안경이 내 얼굴에 햇살이다. 3) 돈 아깝다. 이 세 가지 이유로 반박중인데 S는 1) 자기가 해봐서 아는데 하나도 안 아프고 안 무섭다. 요즘 기계와 기술 좋아졌다. 2) 안경을 아예 쓰지 말라는 게 아니고, 돗수 없는 알로 바꿔 끼면 된다. 3) 수술비 싸졌다. 밤에 자다가 눈떠도 다 보이면 얼마나 편한지 아니... 라며 나를 설득하려 애쓴다. 어휴...


요번에 친구들이랑 다 같이 만난 자리에서도 또 노안수술 겸 라섹 하라고 잔소리를 해주시길래 그냥 씩 웃고 말았다. 속으로만 싫어! 그러면서. 물론 나를 진심 염려하고 생각해서 (몇년 더 있다 맘 바뀌어서 수술하려고 들면 이미 늦는다나;;) 하는 조언이라는 건 알겠는데 사람 취향도 있는 거지, 제멋에 살다 말게 냅두지 왜 저렇게 열심인가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마침 최근에 라섹/라식 수술을 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하다는 친구가 한 명 더 있어서 일순간 나는 완전 촌스러운 겁쟁이로 공격을 당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ㅠ.ㅠ 그래도 다들 내 똥고집을 모르는 것도 아니어서, 다시 잘 생각해봐라 정도로 마무리가 지어졌는데...


그 다음 화제는 하필 폐경(완경?)과 갱년기였다. 아직 멀쩡하다는 친구도 있고 몇년 전부터 여러 증상을 느끼는 친구도 있고 벌써 아예 페경이 된 친구도 있고 아직은 폐경 전이지만 가족력 때문에 걱정을 하는 이도 있어서 동병상련을 한참 토로했는데, 이미 폐경이 됐으나 아무런 어려움 없이 갱년기를 넘긴 것 같아 행복한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는 S가 다시 내게 화살을 돌렸다. 사람 일은 '모르는 일'이니깐 나더러 폐경 되기 전에 난자를 냉동시켜두는 게 어떻겠느냐고. @.,@ 


헉. 처음엔 말문이 막혔다. 무슨 근거로 내가 다 늙어서라도 꼭 아이를 낳고 싶어할 거라는 생각을 했을까. 헛웃음도 나왔고, S의 상상 속 내 아이가 엄청 불쌍했다. S는 남편 필요없는 건 알겠는데 너 자식은 하나 있어야한다, 50살에 늦둥이 낳는 사람들 흔하다, 허수경은 정말 지혜로운 사람인 것 같다... 앞일은 모르는 거다, 너 나중에 마음 바뀌면 후회스러워서 어쩔래... 아주 진지한 얼굴로 설득에 나섰다. 또 한 번 어휴...


가만 있으면 가마니인줄 알고 앞으로도 계속 밟을 것 같아서, 아이는 예쁘지만 나 혼자도 벅찬데 양육의 책임과 의무를 떠안을 자신도 없고 늙은 엄마 밑에 태어나는 아이에게도 그건 못할 짓이고, 난자 냉동하려면 난임부부 시험관 아기 시술 때처럼 얼마나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하는지 제대로 아느냐고 따져서 말문을 막아버렸다. 제발 나좀 냅둬줄래!! 가 내가 하고픈 말이었지만 차마 그렇게는 말 못하고...


사람의 앞일은 모르는 거라고 하는 말 나도 잘 안다. 등산만 해도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산에 다니게 될 줄은 나를 포함해 아무도 몰랐다. 고양이 싫어하던 사람이 고양이 집사가 되어 몇마리씩 키우는 사람들도 있고, 개 무서워하던 내가 조카네 개 한테는 손바닥에 고기랑 사과도 놓아먹이게 되었으니 앞으로 또 내가 어떤 변덕을 부릴지는 정말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근본적인 성향과 취향이라는 게 있는데 그게 그리 쉽게 변하나? 흠... 후회를 하든 말든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그 정도의 어마어마한 결정과 고민은 이미 젊을 때 다 하고 살아왔다는 걸 S는 잘 모르는 건지, 인정을 안하는 건지. 하여간에 너무 놀라워서 기록해둘 일이라고 여겨졌다. ^^ 째뜬 어디 한 번 그저 두고보는 수밖에. ㅋㅋ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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