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4.14 또 낙서질 27
  2. 2008.10.23 기분전환 17
  3. 2008.07.13 물오른 낙서질 16

또 낙서질

놀잇감 2009. 4. 14. 00:09

어젯밤 기분전환이 필요해서 또 낙서질을 했다. 당연히 낙서질 하면서는 기분이 좋았고 행복해져 자랑용 사진까지 찍었는데 지금은 벌써 그 효과가 확 떨어져 입이 댓발이나 나왔다. 종일 왕비마마와 냉전중이었기 때문이다. 요즘 화가 나면 나는 아예 말을 하기가 싫고 누구와도 상종하기 싫어 혼자 있어야 침묵 속에 서서히 화가 풀린다. 화 났을 때 말을 하면 어떤 폭언을 하게 될지 나 자신도 무섭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그때 자꾸만 말을 시키면 더욱 화가 치민다는 사실을 왕비마마는 도대체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집안에 겨우 둘 뿐인데 말 안하는 게 제일 싫으시다나. 그러면 나는 갑자기 좀머씨가 된 것 같다. "그냥 날 좀 가만히 내버려두란 말이야!!"
암튼 바닥까지 떨어진 기분을 어떻게든 되살려볼 요량으로, 시방 낙서질한 티셔츠를 입고 있는데도 별로 기분이 나아진 것 같진 않다. 마지막 방편은 이렇게 속좁음을 여기에라도 고백하고 민망한 자랑질을 하는 것이라 여기고 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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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전환

놀잇감 2008. 10. 23. 21:54
효과가 일시적이라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기분전환에 효과적인 나만의 방법들이 몇 가지 있다.

가장 쉬운 건 무작정 외출해서 아무 카페나 들어가 맛있는 커피 마시기.
작업실이 있을 땐 도망치듯 차를 몰고 그곳으로 숨어들어 싸늘하거나 푹푹찌는 매캐하고 낯선 공기와 정적 속에 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시간이 참 소중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공간이 없어졌으니 뭐...
제아무리 브리카 모카포트와 내 솜씨가 뛰어나다고 해도, 집에서 마시는 커피가 허락하는 행복과 여유에는 어딘가 한계가 있다. 집이 아니라는 공간의 차이에서 느껴지는 신선함도 있거니와, 더욱이 누군가 나를 위해 정성스레 만들어준 수고가 덧붙여진다고 생각하면 커피가 더욱 그윽할 수밖에.
문제는 작업실로  도망칠 땐 무릎 나온 추리닝에 사흘째 안감은 머리나 눈꼽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자를 푹 눌러쓰거나 스카프로 칭칭 동여매면 그만이지만, 카페를 찾아 나갈 땐 아무래도 씻고 치장(?)하는 번거로움이 필수인데 몹시 귀찮아 자주 할 짓이 못돼서 그렇지 오히려 기분전환의 효과는 더 크다.
책한권 들고 나가서 커피 한잔 마시고, 리필해달래서 더 마시는 동안 몇 페이지라도 읽고 들어오면 마치 대단한 약속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겉치레 탐서가인 척 하는 것도 큰 묘미.

그런데, 기분전환이 필요한 순간이 하필 충동적인 외출이 여의치 못한 오밤중이라면?
그럴 땐 여지없이 인터넷쇼핑이 묘약. ^^
즐겨찾기에 들어 있는 몇몇 사이트(주로 문방구 사이트)에 들어가서 위시리스트에 물건을 마구 담았다가 장바구니까지 담은 뒤 진지한 고민을 거쳐 조용히 로그아웃 하고 나올 때가 더 많지만 ^^
그렇게 위시리스트에 담아둔 기간이 오래된 <완소> 물품들은 배송비무료 금액에 도달할 때까지 마냥 모아뒀다가 한꺼번에 사들이며 희열을 느낀다.
요번엔, 뼈다귀모양 포스트잇(포스트잇은 종류별로 사들여도 왜 끊임없이 욕심이 나는 걸까 -_-;;), 뼈다귀모양 이어폰줄 정리기(정민공주 주려고), 재생신문지로만든 연필, 연필깎이, 포스트잇처럼 쓸 수 있는 마스킹 테이프, 옷감전용 마커세트(!), 실험용 민무늬티셔츠를 장만했다.
오밤중에 쇼핑하고 나서 잠든지 얼마 안된 아침, 이내 택배배송을 알리는 문자메시지가 도착했을 때의 미묘한 쾌감은 아는 사람만 알리라.
웬만해선 충동구매를 하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다른 물건들(그야말로 '질러댄' 가방이나 옷)은 나중에 괜히 죄책감도 들고 없어도 될 물건이라는 생각에 떳떳하게 자랑하지 못하는 데 반해 문방구류는 상자 가득 쟁여놓고 있어도 죄책감은커녕 더욱 욕심만 늘어가니 참, 나의 문방구류 열망은 고질병이다.  

워낙 게으른데다 어쩐지 큰 낭비 같은 느낌이라, 카페 외출만큼 자주 할 수는 없지만 미용실 외출도 기분전환엔 아주 그만이다. 예전엔 워낙 소심하기도 했고(더러운 머리를 남에게 맡길 순 없다;;고 생각했음) 최대한 스타일리시한 모습으로 미용사를 만나야 나한테 어울리는 머리모양을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괜한 노파심이 작용해서 벼르고 별러 머리 손질을 하러 갈 때도 일부러 미리 머리를 감고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지만, 요샌 오래 별렀든 충동적으로 결심했든 미용실에 갈 땐 그냥 꾀죄죄한 모습으로 더럽고 엉킨 머리칼이 정 민망하면 모자를 질끈 눌러쓰고 갈 수 있게 됐다.
그러고는 퍼머를 하든 그냥 머리끝만 살짝 다듬든, 샴푸실에서 느긋하게 기대앉아 다른 사람이 감겨주는 손길에 머리칼을 맡기고 있는 순간을 최대한 즐기는 거다.
사실 나는 빠져 있는 상태의 머리칼(머리에 붙어 있는 머리칼은 상관없다^^)에 대해 약간 우스운 공포감 같은 게 있어서 봄가을 환절기에 특히 머리를 감을 때 한꺼번에 와장창 빠져나온 본인의 머리칼을 보고도 섬뜩해하는 인간이다. 그래서 난 절대로 온종일 남의 머리를 감겨주며 손가락에 마구 엉겨붙는 머리칼을 견뎌야하는 미용실 보조는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특히 수채구멍에 모여있을 빠진 머리카락들을 생각하면 정말 무섭다 ㅠ.ㅠ) 그들에게 매우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는다.
<머리 감겨주기>에 대한 나의 아련한 로망은 아마도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아프리카 초원 야영지에서 로버트 레드포드가 고풍스러운 주전자에 물을 담아 메릴 스트립의 머리를 뒤로 젖혀 머리를 감겨주는데 그 장면이 어찌나 로맨틱한지... @.@
(물론 가끔 엄마 머리를 감겨드리면서도 빠진 머리칼 때문에 섬뜩하고 오싹한 느낌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에 내쪽에서 <로맨틱한 머리 감겨주기>는 불가능하다!ㅋㅋ)
그 영화를 보았을 즈음에만 해도,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겨주는 게 그리 조심스럽거나 정성스럽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 과정을 즐긴다기 보다는 그저 송구한 마음에 주먹을 움켜쥐고 견뎌내야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미용실의 서비스가 획기적으로 좋아지면서 머리만 감겨주는 게 아니라 나중엔 시원하게 두피마사지도 해주니, 스트레스가 잔뜩 쌓였을 때 괜히 머리를 다듬으러 가서 남의 손에 샴푸를 맡기는 게 나로선 가끔 누리는 사치이자 기분전환의 기회가 되었다.
어떤 일본 소설에서도, 주인공이 순전히 기분전환으로 머리만 감으러 미용실에 가는 내용이 있어서 몹시 공감하며 우리나라에도 가벼운 두피마사지랑 머리만 감겨주는 서비스가 도입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책이었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_+

마지막 기분전환 비법은 뭔가 꼼지락꼼지락 만들고 리폼하기.
지난번 바느질로 쿠션을 만들어 본 이후로 수건을 썩썩 잘라 숭덩숭덩 꿰매서 솜을 넣고 뭔가를 만드는 게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바람에 그간 마우스 손목받침대를 두개나 만드는 기염을 토했다. 하나는 반달 모양으로 대충 꿰매 내가 쓰고 있고(책상 사진 어딘가에 선을 보였을 법도 한데;;), 하나는 곰돌이 모양으로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정민공주에게 주었는데 점점 뭔가 더 복잡하고 훌륭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나 고민하고 있다. 대단히 노동집약적인 퀼트 같은 거에 심취하면 번역은 완전 뒷전으로 나몰라라 하고 만날 바느질만 하고 앉아 있을 공산이 크기 때문에 애써 피하는 중이지만, 뭔가를 조물조물 오리고 꿰매 만드는 행위가 퍽 즐거움을 느낀다.
<수면의 과학>을 특히 좋아하며 봤던 이유도 끊임없이 예쁜 소품을 만드는 스테파니와 그런 그녀를 사랑하는 스테판에게 감정이입이 됐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 전체에 나오는 아날로그풍의 기발한 소품들도 당연히 사랑스러웠고. 
역시 지난번에 심심하기도 하고 자전거 티셔츠도 입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손수 시도해보았으나 무식하게 네임펜과 유성매직으로 그리는 바람에 죄다 번지거나 지워지기는 했지만, 티셔츠 낙서질에 맛을 들인 나는 <패브릭전용 마커>를 오래 눈독들여왔고 얼마전 문방구쇼핑 때 전격 장만하여 앞으로 끝없는 티셔츠 낙서질에 탐닉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미 두번째 장난질은 성공(?)을 거두었고, 아직 빨아보진 않았지만 다림질 후엔 절대 안지워진다는 제품을 믿어보기로 했다. 
원래 티셔츠 한 장은 실험용으로 시도해보고 괜찮으면 한 장 더 그려서 선물하려고 야심만만한 계획을 세웠으며, 나름대로 도안도 고민하고 실패를 교훈삼아 얇은 티셔츠가 펜과 함께 늘어나지 않도록 천 안쪽에 테이프를 붙여 그리는 묘안도 생각해내는 등 흥미진진한 과정이었으니, 낙서질을 하는 동안 내가 얼마나 희희낙락 즐거워했을지는 실토하지 않아도 뻔한 일.
그러나 결과적으로 낙서질 티셔츠는 두장 다 내가 입기로 했다. ^^
두번째로 그린 자전거 티셔츠는 많이 미흡하지만 정말로 선물하려고 했는데 포장하려고 보니, 티셔츠 봉제 자체가 불량이라 소매 연결부위에 구멍이 있는 것이다! 젠장. 그림 그리기 전에 봤어야 교환을 해달라고 하지, 실컷 낙서하고 났으니 교환도 못하고 그냥 내가 꿰매서 입는 수밖에.

흠...
물론 그밖에도 당연히 친구들 만나 수다떨기, 조카들이랑 신나게 놀기, 전시회 가기, 여행, 고궁 거닐기... 등의 기분전환 방법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굳이 위의 방법들을 거론한 건 미리 계획하지 않아도,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인데 이렇게 시시콜콜 적다보니 역시 가장 쉽고 친근한 기분전환은 블로그질임을 깨달았다.
비록 그 효력이 이젠 찰나에 사그라드는 것 같긴 하지만, 찰나가 모여 영겁이 되듯 계속되는 블로그질로 내 기분은 두둥실 떠오르리라~.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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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오른 낙서질

놀잇감 2008. 7. 13. 14:54
얼마전 습관처럼 구경다니던 문방구 사이트에서 자전거가 그려져 있는 예쁜 티셔츠를 발견했었다.
냉큼 사고 싶었지만, 요새 인터넷에서 파는 옷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옷 치수가 너무 작았다.
요즘 몸짱을 추구하는 이들이 하나같이 몸에 딱 붙는 옷을 입는 걸 즐긴다지만, 어떻게 여름 티셔츠를 초등학교 저학년생이나 편하게 입을 만한 치수로 내놓고 <프리사이즈>라고 할 수 있는지 참 알 수가 없다.
더욱이 나는 자전거 티셔츠를 입고 유유히 자전거를 타고 싶은 마음인데, 헬멧 쓰고 쫄윗도리 쫄바지 차림에 자전거를 타는 이들과 달리 그저 편하고 넉넉한 티셔츠와 반바지가 더 좋은 걸 어쩌랴.

일단 자전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싶다는 욕망이 불끈 치밀자 온갖 쇼핑몰을 다 뒤지고 다니며 마음에 드는 자전거 티셔츠를 찾기에 이르렀지만, 그리 쉽진 않았다. 자전거가 그려진 티셔츠가 그리 많지도 않았지만, 그림이 마음에 들면 티셔츠 모양이 너무 드레시하거나 엄청 파여 내가 바라는 기본 티셔츠가 아니었고, 어렵사리 하나 찾아서 기뻐하며 주문을 하려면 품절이었다. +_+

결국 나의 결론은?
반쯤 미친짓이라 여기면서 갖고 있는 티셔츠에 자전거를 그리기로 했다!
처음 반했던 자전거 티셔츠가 밤색이었기 때문에 일단 갖고 있는 밤색 티셔츠에 무작정 유성 네임펜과 매직으로 자전거를 그리기 시작했다. 모델은 물론 거실에 서 있던 나의 느루. ^^*
내 솜씨론 당연히 느루의 앙증맞은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힘들었고, 처음이라 그림을 앉힌 위치도 어설퍼서 좀 웃기기는 했지만, 일단 <자전거 티셔츠>를 갖게 되었다는 기쁨은 나머지 어설픔과 민망함을 한방에 날려주었다.
과연 네임펜이 세탁을 견딜 것인가 일단 입어보기도 전에 세탁기에 돌려 확인을 해보았더니 하하하...
얇게 그린 나무와 길바닥은 절반쯤 지워졌지만, 자전거 그림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렇게 첫 자전거 티셔츠를 만든 것이 한 일주일 쯤 전.
원고 마무리 하느라고 눈이 빨개졌던 주제에 잠시 잠 쫓으려는 욕심으로 그렸던 자전거 티셔츠를 입어보니 더 욕심이 생겼다. 그러고 나서 어젯밤. 갖고 있는 네임펜 색깔도 그리 다양하지 않은데 다른 색 티셔츠에도 낙서질이 하고 싶어졌고, 이번엔 자전거 그림을 제대로 옷 중앙에 잘 앉혀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로 그린 자전거는 확실히 처음 그린 자전거보다 수평도 맞는 듯하여 뿌듯함이 밀려들었고
이왕 시작한 거 티셔츠 한 장 더 망치는 셈 치고 다른 그림도 그려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싯적에 친구들한테 쪽지나 편지 보내면서 많이 그렸던 동그란 얼굴 그림이 떠올랐던 것.
그러나 자전거보다 훨씬 쉬울 거라고 생각했던 얼굴 그림은 그려놓고 보니 더 어설프고 별로 안 예뻤고, 손모양도 엉뚱한 곳에 그리는 바람에 기형이 되고 말았지만 집에서 입으며 즐거워하기엔 손색이 없다고 믿기로 했다. ^^; 누가 뭐래도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티셔츠의 주인이 되는 기분은 참 그럴듯하다.

어젯밤 이후 옷에 하는 낙서질에 한참 맛을 들인 터라 또 어떤 티셔츠를 망쳐볼까 자꾸 충동이 일고는 있지만,
이젠 그만해야지.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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