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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투덜일기 2015. 1. 3. 17:20

보통 새해가 밝고서도 한달은 지나야 새해 숫자를 쓰는 어색함이 덜어지는 것 같다. 올해도 마찬가지.

아직도 2015년이 밝았고 내가 한 살 더 먹어 드디어 '아홉수'를 만난 중늙은이라는 사실이 실감나진 않는다. 하도 정신이 없어서 이번엔 새해 달력을 하나도 미리 마련해두지 못해 뭔가를 기록해두어야 할 때마다 메모할 탁상달력도 벽걸이 달력도 없어 난감한데, 그 때에야 비로소 아 새해구나 싶다. 


2014년은 정말이지 12월 31일까지도 빠뜨리지 않고 다사다난했다. 막판엔 2014년 어서 가버려라, 그런 마음이었던 듯. 슬픈 일 가슴 아픈 일, 속상한 일이 한해 마지막 날까지 강타할 줄은 정말 몰랐다. 2014년을 한 마디로 요약하라면 '잔인한 해'라고 해야겠다. 그래서 되돌아보며 정리할 마음도 차마 들지 않는...


그래서 새해를 바라보련다.

2015년은 내가 밥벌이로 번역을 시작한지 딱 20년째 되는 해다. 첫 번역서의 발행일이 1995년 12월 10일. 10주년 때는 아무 생각도 없이 지나갔던 것 같은데 20주년은 뭔가 기념해야 되지 않나 싶어서 뜬금없이 자축파티를 열어 친구들을 초대할까 뭐 그런 생각을 작년 내내 좀 하기도 했다. 같은 분야에서 20년이면 그래 너 장하다고 칭찬해줄만도 하지 않나. 특히나 이렇게 열악하고 가난한 대한민국의 출판환경에서 잘 버텼으니... ㅠ.ㅠ  (미래는 뭐 일단 접어둔다고 해도 말이다. 혹시나 번역인생 30주년 파티 따위는 아예 불가능할지도 모르니까...)


세월 참 빠르다... 고 중얼거렸더니 그럼 뭐하냐, 그래도 대통령은 아직 안 바뀌었다고, 이후엔 또 얼마나 끔찍한 지도자가 나타날지 아무도 모른다고 누군가 지적해서 절망스러웠는데, 이 나라 절망스러운 건 뭐 하루이틀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내 손으로 찍은 대통령이 선출되서 기뻐했던 시절에도 배신감에 부르르 떨었던 정치행각이 어디 한둘이었나. 사회의 부조리에 완전 무관심할 순 없겠으나, 일단은 이기적이든 말든 철저히 내 개인사와 일신 상의 안위에만 집중해 살겠다.


이미 건강 위험분자로 찍혀서 보건소에서 전화가 걸려오는 신세임을 감안, 운동도 많이 하고, 어차피 끌려다니기로 자청한 산에도 더 열심히 쫓아다녀 폐활량도 근력도 높이고, 그렇게 다진 체력으로 일도 더 꾸준히 열심히 하고, 가난이 곧 청렴이자 미덕은 아니란 걸 명심할 작정이다. 덜덜거리는 15년 된 차는 이제 좀 바꿔타야하지 않겠니.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전화기 꺼두고 도망치려는 비겁자의 마음도 떨쳐버려야한다. 점점 더 까칠한 쌈닭으로 변해가고 있는 뾰족함과 가시는 부디 가까운 사람들을 찔러대지 말고 더 멀리 밖으로 향하기를. 그래서 남들에겐 너그럽되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에겐 인색한 잣대를 거꾸로 돌려 잡아야겠다. 자책과 자학도 이젠 그만.  


공교롭게도 딱 새해 3일째 되는 날에 이런 작심을 적어놓고 있다니 웃기다. 작심3일의 새 의미를 정하자는 건가. ㅎㅎ 아무튼 습관처럼 건네는 새해 덕담이 아니라 블로그 이웃분들, 친구들, 이렇게 저렇게 아는 분들, 모두모두 새해엔 바라는 일 죄다 이루어지시고 부디 좋은 일, 행복한 일만 가득한 하루하루 맞이하시기를.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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