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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투덜일기 2013. 1. 17. 00:47

언제 어디서든 사람들을 관찰하는 건 즐겁다. 간만에 새로운 사람들이 백명이나 득시글거리는 공간에 자주 출입하면서 뭔가를 배우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사람 구경하는 재미도 만만치가 않다. 물론 얼굴치라서 이제껏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 얼굴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매번 다른 자리에 앉기도 했었고...

 

첫 수업에서 뒷줄 구석자리에 앉았다가 두시간 반 내내 담배쩐내에 혼줄이 난 뒤로는 비교적 중간 이전 구석을 노리고는 있으나, 나로선 아무리 일찍 가도 넷째 줄 이상은 다가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생각보다 볼일이 일찍 끝나 40분이나 일찍 강당에 가보았는데 맙소사, 맨앞 세줄은 이미 다 차 있었다. 주최측에선 이름표를 달기를 권하고 옆자리 앉은 사람과는 통성명과 인사를 나누라고 하는데, 어우 그런 거 민망하고 싫어서 나는 10분 전쯤 가서 될 수 있는대로 고개를 푹 수그리고 열심히 예습복습하는 척 하며 강의를 기다린다. 때로는 가방만 내려놓고 밖에 나가서 시간을 보내다 들어가거나...

 

그렇게 사전차단을 하는데도 며칠 전 옆자리에 앉은, 사교성 뛰어난 아주머니 한분은 자기 원칙이라며(옆에 앉은 사람 얼굴 익히고 연락처 받아내는 게;;) 굳이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따갔다'. 교육 끝나도 주최측에서 주소록이나 명단 같은 거 만들어주지도 않는다니 나중에 수업 내용 물어볼 거 있으면 연락하겠다고... 헐... ㅠ.ㅠ . 째뜬 이 아주머니 말에 따르면, 앞자리에 좀 앉아보려고 자기가 1시간 일찍 온 적도 있었다는데 그 때도 겨우 셋째줄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대부분 15분 전부터 슬슬 나타나는데 20여명의 열혈 학생들이 앞자리 다툼을 엄청 한다는 얘기다.

 

좀 일찍 가방으로 자리만 맡아놓고 사람이 오래 나타나지 않으면, 과감하게 가방을 치우고 앉는 대신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자기 가방을 분명 몇째 줄에 놓았는데 엉뚱한 데 가 있다고 씩씩대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놀라운 친화력으로 벌써 뭉친(혹은 원래도 서로 아는 사이였거나;;) 몇몇 아주머니들은 서로 자리도 잡아주고 그러는 모양이어서, 그러지 말라고 핀잔 주는 사람도 보았다. ㅎㅎㅎ 시험기간에 피튀기며 도서관 자리잡던 때와 별 다를 바가 없다.

 

맨앞 세줄에 앉은 이들은 대부분 중년이상이고, 그들 중엔 매번 휴대폰으로 강의내용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사람도 있다. 과연 집에 가서 그걸 매번 다시 볼까? 녹화된 화질과 강의 내용은 쓸만할까? 챙겨보니까 계속 촬영하겠지만서도... 나로선 참 신기하다. 모르긴 해도 아마 크게 티 안나게 녹음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놀라운 학구열;; 중간에 쉬는 시간에도 강사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고 꼬치꼬치 질문을 해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 수업시간 끝날 무렵 괜히 질문해서 강의시간 넘기게 하는 애들 진짜 미워했었는데, 그나마 수업 끝나고 공개질문하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천만다행. ^^; 

 

반면에 평일엔 강의시간이 7시부터다보니 꾸벅꾸벅 졸거나 곤하게 자는 사람도 보인다. 지난주엔 내 바로 뒤에 앉으신 어느 밍크코트족 아주머니께서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며 주무셨다. 아직 친한 사이들이 아니다보니 누가 깨우기도 뭣하고 아주머니 스스로 놀라 깨어나 잠시 소리가 멎었다 싶으면 이내 다시 드르렁 드르렁... 신경에 거슬려 짜증나기도 하면서 또 어찌나 웃기던지. ㅋㅋㅋ 옛날 요가 다닐 때도 느낀 거지만 젊으나 나이드나 여자들 중에도 코 고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요가 마무리 때 송장자세 하고 있으면 시간이 몇분 되지 않는데도 드르렁 드르렁 코골며 자는 사람이 두셋은 꼭 있었다. 요가원도 그렇고 이곳 강당도 그렇고 워낙 따뜻하고 어두컴컴하니까 까무룩 잠드는 거야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코 까지 골며 숙면을 취하다니. ㅎㅎ

 

이십대로보이는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강의 직전에 나타나 뒷자리에 앉는 경우가 많다. 어르신들의 열기를 못 따라가거나 양보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 강의 내용에 대한 리액션도 아주머니들이 가장 열정적이다. 한번은 강의 끝나고 그날 담당 교수가 안식년이라 다음주에 외국으로 연구 여행을 떠나므로 문의사항이 있으면 이메일로 해달라고 했더니, 대뜸 아쉬움의 '어우~~~' 소리가(순간 방청석인가 착각할 뻔했다 ㅋ) 크게 일었다. 아니 언제 봤다고???? *_* 어차피 모든 강사진이 맡은 부분을 딱 한번씩 강의하는 체계라 두번 볼 사람도 없구만...

 

강의를 듣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강의를 하는 교수, 강사들도 스타일이 다채롭다. TV 특강에서도 본 적 있는 엔터네이너형 강사가 있는가 하면, 두서없이 어려운 건축용어만 잔뜩 주워섬기다 만 사람도 있었다. 연구를 잘하는 학자가 다 강의를 잘하는 건 아니지만, 몇년째 거의 같은 교재로 거의 같은 수업을 하면서 횡설수설하는 건 좀 심했다. 같은 한옥 건축 이야기라도 재미있는 예를 들어가며 귀에 쏙쏙 들어오게 가르치는 사람도 있더구만...  강의는 횡설수설하면서 대뜸 자기 책 참고하라고 광고한 이도 있었다. 그런 책이라면 절대 안 산다 안 사!  반면에 강의 교재도 그렇고 설명도 짜임새 있어서 책을 사보고 싶은 사람도 있다. 대뜸 사들이지 말고 일단 서점에 가서 들춰보고 결정할 작정이긴 하다만.

 

아참, 요즘 사람들은 낯선 사람에게 가장 궁금한 사항이 '어디에서' 사는 것인가 보다. 내 전화번호를 따갔던 아주머니도 그렇고 지난번 수업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도 목례 후에 잠시 머뭇거리며 말을 걸까말까 하는 듯하더니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사는 동네 같으면 같이 가자고 할 리는 없겠지만, 동네 이름 말해주면서 기분이 묘했다. 뭐냐, 요샌 소개팅 나가서도 첫 질문이 어디 사느냐는 거라던데, 사는 동네로 사람을 판단하겠다는 건가? 그러더니 둘 다 자기네는 OO구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나도 다음에 똑같은 질문을 들으면 OOO구에서 왔다고 대답해야지. 대개 옆자리엔 시선도 안주기 때문에 같은 사람이 앉아도 몰라보기 십상이지만 이제까지는 한번도 같은 사람들과 나란히 앉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최소한 공책이나 수첩 정도는 본다규. 과연 내일 수업 땐 또 어떤 사람이 내 옆에 앉을지, 어색한 대화 없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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