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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고아

투덜일기 2017. 2. 15. 15:24

금고아. 삼장법사가 손오공을 길들이기 위해 씌운 머리띠 이름이란다. 이러면 잊지 않으려나 싶어서 제목으로 정해봄.

나날이 뇌세포가 죽어가는지, 생각하는 단어가 따박따박 떠오르지 않는 순간이 많아졌다. 너도나도 '그거 뭐지'로 시작하는 친구들의 대화를 나도 이제 더는 짜증내거나 비웃을 수 없게 됐다. 손오공 머리띠 이름을 벌써 몇번이나 검색해보았는데도 매번 까먹는다. 어휴.

손오공 머리띠, 금고아를 자꾸 찾아본 이유는, 요즘 걸핏하면 두통이 머릿가죽을 조이는 것 같은 방식으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감기가 오려는 전조 증상의 두통은 한쪽 머리가 묵직하게 아파오는 반면, 커피를 마셔주어야하는 시간을 건너뛰어 카페인 중독이 불러오는 두통과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은 비슷하게 머릿가죽이 쪼그라들면서 두개골 전체를 압박하는 듯한 두통이다. 실제로도 만져보면 뒷목부터 관자놀이 주변, 정수리.. 머릿가죽이 욱씬욱씬 다 아프다. 머리 감겨주면서 두피 마사지를 엄청 시원하게 하는 미용실에라도 찾아가고 싶은 심정. ㅠ.ㅠ 

순전히 나의 상상일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런 두통이 삼장법사가 금고아를 조일 때 손오공이 느낀 고통이 아니었을까 싶다. 제법 두껍고 글씨도 작기는 했지만, 서유기를 읽은 건 아주아주 옛날 초등학생(국민학생) 때였을 텐데, 중간중간 TV에서 본 만화 덕분인지, 손오공이 머리털을 뽑아 분신술을 부리거나 여의봉을 줄여 귓속에 숨기는 이야기가 꽤 디테일하게 기억난다. 삼장법사가 워낙 고리타분한 잔소리만 거듭하다 제 마음대로 안 움직이면 손오공을 벌주는 게 어린 마음에 꽤 부당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술을 부려 머리띠로 손오공에게 고통을 주는 건 잔인한 고문이다! 아무리 요괴라도 그렇지..) 

하여간 계속 머리가 아프다. 몸살 뒤끝에 속상한 일까지 겹쳐 심신이 완전 바닥인데도 굳이 겨울 등산엘 따라간 건 나름 몸을 마구 혹사하며 얻는 힐링(?) 효과를 노린 거였는데, 정말로 머리를 텅 비우고 칼바람 속 눈길을 걸었던 것은 참 좋았으나 (춥다, 힘들다, 풍경 멋지다 이 세 가지 이외의 생각은 하나도 머리에 들어올 틈이 없었다) 다녀와서 곧장 짧은 마감 폭풍에 시달렸더니 몸 상태는 더 말이 아니게 되었다.

머리는 욱씬거리고, 입천장이 다 헐어 너덜너덜 뭘 먹기도 말을 하기도 불편하다. 하루 이틀 푹 자면 낫겠지, 과일 많이 먹으면 낫겠지, 고기로 영양보충 하면 낫겠지... 그간 잘 듣던 방법 어느 것 하나 이번엔 별 효험이 없다. 결정적인 스트레스의 원인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려나.

니가 그렇게 괴로워한다고 해결되는 거 하나 없다, 그냥 잊고 니 생각만 해라, 시간이 해결해 줄뿐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주변에서도 나도 똑같은 결론을 내리지만 어쩌겠나. 내가 이렇게 생겨먹은 전전긍긍형 인간인 것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진실을 폭로할 순 없어도, 암튼 이렇게 허공에 대고 계속 징징거리면 나아질까?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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