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일본, 북큐슈

놀잇감 2012. 11. 6. 21:00

한두달전에 시작만 해두고 버려둔, 밀린 포스팅 마무리를 먼저 해야하나 생각하니, 10월 여행기는 그럼 내년에나 쓰게 되거나 아예 집어치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시작한다. 이번 가을의 우울함은 사진이나 들여다보며 넘겨볼 요량으로.

 

 

친구와 여행을 계획하면서 나는 이번에도 은근히 제주도 카드를 내보았지만, 오래 전 '고국방문단 제주관광 패키지'에 크게 덴 친구는 차라리 일본엘 가자고 했다. 배 타고 일본에 가는 거 있다며? 기차도 타고, 배도 타고, 비행기도 타고, 일본라멘이랑 우동도 먹고... 다 하자! 그래 까짓것, 우리도 라멘과 우동 먹으러 일본 가는 사치 좀 떨어보지 뭐, 그랬다.

 

우여곡절 끝에 셋이 가기로 했던 여행은 둘로, 배 타고 가는 여행은 시간 아까워서 포기, 여행지는 큐슈로 정해졌다. 마지막날 자유일정이 포함된 패키지 여행의 가격은 지난번 엄마랑 갔을 때의 딱 절반. +_+ 저가항공사로 가니 그러려니 하면서도 잠자리와 먹는 게 심히 부실하면 어쩌나 슬며시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대체로 만족! 융통성 있고 기동력 있는 여행이라 패키지의 폐해는 크지 않았다. 싼 게 비지떡이 아닐 수도 있다는 좋은 예. 

 

김포공항에서도 일본 가는 패키지 많던데 우린 이번에도 인천공항 출발. 저가항공사 터미널이 따로 멀리 있는지 난생처음 공항에서 셔틀 트레인도 타보았다. 딱 지하철 같은 느낌인데, 객차 수가 당연히 훨씬 적다. 셔틀 트레인 이용하는 사람들도 엄청 많아 5분마다 하나씩 다닌다는데 매번 꽉꽉 차서 다니더군. 러시아워 때 지하철 타본 게 너무도 오래전 일이라, 줄서서 우르르 몰려 타고 또 우르르 내려 우르르 느릿느릿 줄지어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는 광경이 딱 그 느낌이었다. 촌스럽게도 신기해하며 사진도 찍었으나 제대로 나온 건 없음.

 

10시 좀 넘어 날아올라 1시간 20분 만에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심사도 일사천리. 전용버스에 올라탄 우리는 곧장 그리 멀지 않은 다자이후 시로 향했다. 학문의 신을 모셨다는 텐만궁이라나 뭐라나. 그래서 입시철을 앞두고 관광객보다 일본 현지인들이 엄청 더 많은 듯했다. 마침 일요일이기도 해서 아이들 데리고 가족 나들이 온 일본인들이 드글드글...

 

입구로 어슬렁거리며 들어가다 보니 일본 영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모습을 한 탁발승이 눈에 띄었다. 내가 일본어를 모르는 탓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스님들은 염불하는 목소리도 톤이 각기 다르고 좀 개성이 있는 반면, 일본 스님들은 하나같이 염불소리가 똑같은 것 같다. 암튼.. 발가락 갈라진 버선과 납작한 신발까지 완비한 차림이었는데 민망해서 좀 더 가까이 가서 찍진 못하겠더라. 여기가 일본이구나 느꼈던 첫 광경.

 

 

 

 

 

 

 

 

 

 

 

 

 

 

 

 

 

한옥도 집 크기에 비해 지붕과 기와 무게가 엄청나다고 하는데, 일본 전통 건축물은 그 느낌이 더 한 것 같다. 지붕이 건물의 절반을 훨씬 넘어! 큐슈 지방의 특징인지 기와가 아니라 나무를 잘게 쪼개 뭉쳐놓은 것 같은 지붕 재질도 신기했다. 건물 정면엔 마당 너머까지 줄지어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건물 뒤쪽에서 찍은 사진이다. 뭘 그렇게 빌 게 많은지 주렁주렁 달려있는 나뭇조각들. 저런 나무떼기 말고도 신사마다 흔히 묶어놓는 종이 부적도 많았다.

 

이 관광지에 딸린 식당에서 우동정식으로 조촐하게 점심식사를 하고 나선 널널하게 오후에 관광지 하나 더 보고 벳부 온천 료칸에 투숙하는 것이 첫날 일정. 시간도 많겠다 구석구석

산책하듯 돌아보다 전통 옷을 입은 귀여운 아이를 만났다.

우리나라에서 재수굿 하듯이 일본 사람들은 나이대 별로 여기 와서 무슨 의식을 치른다는 것 같다. 가이드 설명도 맨 뒤에서 귓등으로 듣는둥 마는둥 해서... 자세히는 모르는데, 암튼 부모들도 아이들도 곱게 전통의상으로 차려입고 제법 거창한 의식을 치르고 있는 공간도 있었다. 민망해서 좀 더 가까이 찍지 못해 상당히 어정쩡해 보이는 사진이지만, 암튼 아이 본인과 부모에게 사진 찍어도 되겠느냐고 허락을 받았다. ㅋ

애들은 뭘 입혀놔도 귀엽지만, 무채색으로 된 전통의상을 입혀놓으니 뭔가 더 엄숙하게 느껴지면서 사랑스럽다. 한복으로 치면 양반네 도령복장 쯤 되려나?

 

 

 

암튼, 이곳의 특산물은 따뜻한 찹살떡이라는데 점심먹은 집에서 하나씩 나눠주어 맛이나 보겠다고 한 입 깨물고는 슬며시 가방에 넣었다가 나중에 버렸다. 팥소가 든 찹쌀떡을 기름에 드글드글 굴려놓았다고나 할까...

게다가 친구는 일본식 오뎅을 꼭 먹어야겠다고 해서 문어맛으로 하나 샀는데 식감이 한국 오뎅에 비해서 엄청 쫄깃했으나 역시나 튀긴 음식이다보니 느끼했다.

둘이 동시에 커피가 필요하다고 외쳐댔다.

 

 

그러고는 이미 올라가면서 봐둔 스타벅스로 달려갔다. 의미가 있을 법한 인테리어가 독특했던 텐만궁 앞 별다방과 그 몇 집 건너에 있던 기념품점. 

 

커피값은 환율 따져보면 거기나 여기나 비슷했던 것 같은데 유독 컵이 작았다. 커피 인심 후한 미쿡에서 온 친구는 종이컵 만한 커피가 신기하다며 깔깔깔. 사진도 찍어 남겼으나 괜히 자기 얼굴만 커보이는 것 같다고 삭제를 요구했다. ㅎㅎ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는 가운데 다음으로 향한 장소는 <키츠키 성하마을>. 큐슈의 '작은 교토'라던데 교토엘 안가봤으니 알 턱이 있나. 내 느낌으론 황토를 바른 담장이며 잘 생긴 전통가옥들이 모여 있는 모양새가 안동 하회마을과 비슷한 것 같았다.(다행히 이 다음주에 안동엘 다녀와 비교 가능 ^^;)  

 

 

 

지금 생각해보니 꽤나 한적한 마을 풍경도, 공개해둔 공간이 있고 못 들어가게 해둔 공간이 있는 것도 하회마을이랑 비슷했군.

 

난 저 언덕을 내려가 마을 반대편 집들도 구경하고싶었으나 친구가 말렸다. 너무 가팔라! 시간 안에 못 돌아오면 어쩌려구! +_+

패키지 여행의 폐해는 뭐니뭐니해도 가이드 마음대로 시간제한이 있다는 것. 거기 가서 봐도 다 똑같아요... 라고 가이드도 말했지만 장담컨대 가이드는 저 반대쪽까지 한번도 안 가봤을 것이다.

 

얼핏 들은 바로는 에도시대 무사들의 저택이 모여 있던 곳이라는 듯하다. 주택의 구조도 재작년에 본 무사의 집과 똑같은 느낌. 공개된 저택의 경우에도 절대 마루나 실내엔 올라가지 말라고  가이드는 신신당부했지만, 막상 집안엔 친절하게 한글로 '신을 벗고 올라오세요'라고 적혀 있었다규~!

 

여유만 있다면 무사의 저택에서 차도 한 잔 시켜 마실 수 있게 해놨던데, 친구와 내가 녹차를 별로 안좋아해서 그냥 나왔다. ㅋ

 

 

 

 

 늘 약속시간보다 집결지에 한참이나 일찍가야 마음을 놓는 친구 덕분에 나는 주차장 주변 꽃이나 찍으러 돌아다녔다... 코스모스와 금잔화는 알겠는데 마지막 꽃은 난생 처음 보는 듯;; 전투적인 새나 곤충처럼 생겼다. ^^

 

 

버스타고 좀 가다가 "저기 보이는 게 벳부만입니다!"라는 소리에 여러 장 난사하였으나 결과는 신통찮다.

그래도... 군데군데 하얗게 솟아오르고 있는 온천의 수증기가 보이는 것으로 만족. 날이 흐려서라나 뭐라나 온천에서 뽐어나오는 수증기가 이날따라 좀 덜하다고 했다. 심할때는 시가지 전체가 자욱하다고.

 

벳부에서도 물이 제일 좋은 골목이라고 가이드가 극구 자랑하던(그 말이 맞는 것 같긴했다. 유명한 'OO지옥'이라 이름붙은 온천이 주변에 죄다 몰려있었음) 숙소는 생각보다 정말 작았다. 복층 건물이긴 했지만 진짜 전통료칸을 리노베이션한 느낌? 방이며 계단, 온천탕까지 얼마나 작고 앙증맞은지 귀여울 정도였다.

 

금방 물청소를 했는지 맨발 벗고 다녀도 되겠다고 친구가 감탄을 금치 못했던 골목도 그렇고 료칸자체도 그렇고 정말 깨끗 깨끗. 게다가 료칸 주인은 한국인 아주머니였고, 친구는 김치 인심 후하겠다고 아주 좋아라했다. 

유타카로 갈아입고 식당으로 내려가니 저녁은 두유 샤브샤브. 콩국물을 끓이면서 고기와 야채를 먹다보면 순두부가 만들어지는 원리란다. 뷔페식으로 마련된 샐러드와 밑반찬, 그리고 푸짐한 김치(!) 때문에 일행들 모두 행복하게 밥을 먹었다.

나 역시 지난번 엄마랑 여행했을 때 저녁마다 먹은 가이세키 정식보다 훨씬 좋았다.

 

점심 먹을 때만해도 일본 아줌마들이 이래서 날씬하구나 깨달았다던 사람들은 또 다시 한국식으로 배터지게 저녁을 먹고나서 각자 방으로 향했다. 이제는 온천을 즐길 시간...

 

방에 올라오니 어김없이 다녀간 우렁각시가 테이블을 치우고 깔아놓은 이부자리. 이불을 저렇게 말아놓아 섬뜩한 느낌이라고 해서 내가 얼른 펴놓았다. ^^; 완전 폭신폭신 아늑하여라~

 

그러나 온천욕을 하기 전 숙제가 하나 더 있었다. 료칸 냉장고엔 물 한 병 들어있지 않았으므로, 우린 가이드가 알려준 대로 마트를 찾아 나섰다. 물도 사고 일본 맥주를 마셔줘야햇!

약간 언덕길이라 올라올 때 힘들 거라는 주인 아주머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린 방에 올라가 양말 가져오는 게 귀찮아서 운동화를 포기하고 '게다'를 신고 따각따각 골목길을 나섰다.

ㅠ.ㅠ 현지인이 말리면 역시나 그 말을 들어야 한다니까...

 

마트까진 한 20분 걸어야하는 거리. 나야 워낙 여름마다'쪼리'에 익숙한 사람이지만 친구는 아니나 다를까 발가락 사이가 아프다며 퍽이나 괴로워했다. 나 역시 굽이 높아도 푹신한 생고무 쪼리는 신어봤어도 쿠션이 전혀 없는 나무바닥 쪼리는 처음인지라 언덕 막바지엔 좀 힘이 들었다. 다행히도 중간에 족욕장이 있어서 쉬어가기로 한 건 좋았는데 물이 어찌나 뜨거운지! ㅠ.ㅠ 수증기 나오는 나무통에 다리를 넣고에 족욕하는 곳도 따뜻한 돌에 발을 올려두는 신기한 족욕체험도 있었으나... 혹시나 서툴게 작동하다 델까봐 뜨거운 온천물에만 발을 담갔다가 돌아왔다. 우리는 너무 뜨거워서 30초를 다 못 담그고 있는데 반해 일본인 관광객들은 막 젊은 부모가 어린 아기 발도 같이 담그고 있는데도 아기가 전혀 울지 않았다. +_+ 체질이 달랐던 걸까... ㅎㅎㅎ 하여간 신기한 경험.

 

규모가 큰 료칸엔 온천탕이 있어도 방마다 욕조와 샤워시설이 있던데 여긴 세면대 뿐, 씻는 건 무조건 온천탕으로 내려가야 했다. 수도꼭지가 다 해야 열개도 안 되는 정말 앙증맞은 목욕탕엔 그래도 노천탕도 있었음. 후딱 온천을 마치고 방으로 올라와선 피부가 매끈하네 마네 온천물 타령을 하며 맥주를 마셨다. 일본 말 몰라서 새우깡 오리지널 맛인줄 알고 사왔던 밍밍하고 비린 과자 안주가 에러이긴 했지만, 온천 뒤끝엔 맥주 한 캔으로도 금세 취기가.... ㅋㅋ

 

별 얘기 없으니 여행기를 한번에 다 쓰려고 했는데 역시 안되겠다. 그리하여 첫날 일정 여기서 끝.

 

(2012. 10. 14)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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