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나들이

놀잇감 2012. 11. 13. 00:28

생각해보니 가열차게 놀러다닌 날들이 벌써 한달이 다 돼간다. 그때만 해도 단풍든 나무보다 새파란 나뭇잎이 더 많았는데 어느새  요 며칠 겨울 같은 날씨에 나무들은 헐벗었고 올해도 한달 반 밖에 남지 않았다. ㅠ.ㅠ 남은 기억 다 지워지기 전에 사진 쳐다보며 밀린 이야기를 다 풀어내야할 터인데. 이것 참.

 

일본에 다녀온 다음날부터 곧장 이틀에 걸쳐 서울 관광 스케줄을 쫀쫀하게 짜놓았으나, 그건 그저 생각이었을 뿐이었다. 태평양을 건너온 시차도 너끈히 견딘 친구와 달리 며칠 전까지 급마감에 힘쓰며 밤샘을 거듭했던 나는 혓바늘이 돋질 않나,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길 않나 저질체력임을 여실히 실감했고, 연일 강행군은 무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냥 하루는 장이나 봐다가 맛난 거나 해먹으며 쉬자고... 

 

LA선 절대 맛볼 수 없다는 납작말랑한 홍시와 홍옥사과, 막걸리와 해물부추전으로 비타민과 영양(?)을 보충한 다음날에야 비로소 나설 수 있었던 창덕궁. 그나마 원래는 창덕궁과 종묘를 한꺼번에 돌려던 계획이었으나 창덕궁 하나만 보기로...

 

친구가 이날 저녁부터 주말까지는 외가에 들러야 해서 짐을 싸가지고 나왔기에 마냥 돌아다니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창덕궁엔 입구에 무료 사물함이 있고, 나중에 이대앞에선 지하철역 사물함을 이용할 수 있었다. 지하철 사물함 나도 난생처음 이용해보는 것이었는데 열쇠 없이 디지털 화면으로 사물함이랑 비밀번호 지정하고, 심지어 거기서 택배도 보낼 수 있더군! +_+ 놀랍도록 편리한 나라임을 새삼 실감. ㅋㅋㅋ

 

암튼 창덕궁에 들어서자마자 다리 건너편 느티나무가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노랗게 변해가고 있는 모습에 반해, 왼쪽에 사열하듯 서 있는 장엄한 회화나무 세 그루는 찍어오는 걸 까먹고 말았다. 걔네들은 아직 초록이 성성한 자태였는데...

 

 

 

대개는 인정전과 대조전 등지의 전각을 먼저 다 보고 후원 들어가기 전에 낙선재를 둘러보는데, 사진 순서를 보니 이날은 낙선재부터 들렀던 모양이다. 한달도 안 돼 벌써 이렇게 기억이 흐려지다니 뜨끔;; 아무튼 까마득한 오래 전 지금처럼 복원이 끝나기 전에 이방자 여사가 개조해 놓고 썼던 양실 목욕탕도 구경할 수 있었던 때도 좋았고, 원래대로 바꿔놓은 지금도 좋은 낙선재. 궁궐에 있을 정도니 당연하겠지만 참 짱짱하고 단아하게도 지었다는 느낌이 든다. 

자세히 보면 난간에도 이렇게 정교하게 구름과 호리병 무늬를 조각했다.

 

낙선재 마당에 있던 감나무마다 또 감이 얼마나 튼실하게 매달려 있던지 원. 잘 생긴 한옥집에 살 일은 아마도 요원하겠지만 혹시라도 다시 마당 있는 집에 살게 된다면 나도 감나무를 꼭 심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 사는 집앞에 있는 앵두나무도 시작은 버릴까말까 고민하던 작은 분재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인정전과 대조전 사진은 별로 마음에 드는 게 없는데, 후원쪽으로 건너가면서 회랑 너머로 보이는 인정전 지붕이랑 원래 궁궐을 모두 감싸고 있었을 소나무가 나온 이 사진은 좀 괜찮은 것 같다. 옛날엔 내가 사진 찍은 자리도 그냥 마당이 아니라 빼곡하게 전각이 서 있었겠지... 

 

 

 

 

아래는 아마도 내의원이 있었다는 전각인 것 같다.  이날은 해설사 설명도 안 듣고 브로셔도 안들고 그냥 설렁설렁 돌아다녔는데, 떼를 지어 수첩과 볼펜 들고다니며 역사공부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어찌나 많은지 귓등으로 많은 정보를 얻기는 했으나 이미 다 까먹었다. ㅋ 암튼 누각과 단층 전각을 이어서 지은 이 건물 마음에 든다. 안에선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려나 심히 궁금.  

 

 

 

 

 

10월 중순이라 새파란 잎을 자랑하는 나무들이 더 많긴 했지만 창덕궁 후원으로 넘어가니 조금씩 깊어가는 가을이 느껴졌다.  

 

역시나 가을의 손길이 제일 먼저 찾아온 곳은 애련지와 애련정 주변.

 

 

 

궁궐 전각들이 다 화려하고 근엄하긴 하지만 창덕궁에서 역시나 제일 마음에 드는 한옥을 꼽으라면 양반 사가를 그대로 궁에 옮겨놓았다는 연경당이 최고. 낙선재도 아담하고 예쁜데 한 군데 콕 집어서 살라고 하면 난 역시 사랑채 안채 별채 서재까지 다 갖춘 연경당을 택하겠다. ㅠ.ㅠ

 

 

특히나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난 작은 저 문.

옛날에 해설사한테 주워들은 가락을 옮겨보자면, 사랑채에 손님이 오면 안방마님이 하인들한테 굳이 묻지 않고 저 문으로 살짝 내다보아 사랑채 섬돌에 놓인 신발 켤레 수로 주안상을 준비한다나 뭐라나...

요새도 해설사가 연경당 안내할 때 그런 설명을 하는지 어쩐지 모르겠다. ㅎㅎ

 

암튼 단청 안 칠하고 적당히 낡고 바란 아담한 나무문과 문살이 참 예쁘지 아니한가. 

 

 

 

 

 

 

창덕궁의 가을은 작년에도 포스팅한 적이 있으니 이쯤해두련다.  (2012. 10. 18)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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