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들

놀잇감 2012. 8. 16. 16:25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까지, 최동훈 감독의 화제작은 다 본 것 같다. 짜임새와 캐릭터에 그저 감탄했던 전작 두편과 달리 <전우치>에선 임수정 캐릭터가 영 마음에 안 들었고 웃기기 강박같은 게 느껴져 불편했지만, 이번에도 기본은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도둑들>을 보러 갔다. 영화관으로 피서 가는 셈치고 거의 개봉하자마자 봤는데, 새삼 천만 관객을 넘기지 마느니 하는 다음에야 후기를 올리려니 점점 쓰기가 싫어졌다. 역사상 천만 관객을 넘긴 한국영화 가운데서 나는 안 본 게 절반 이상이라는 데서 쓸데없이 묘한 뿌듯함을 품고 있기 때문일까?

 

좌우지간 볼거리가 풍부한 영화이긴 했다. 그렇게 수많은 대배우들을 데리고 골고루 영리하게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점도 인정해야할 것 같다. 영화 제작후 김수현이 드라마로 워낙 떠서 김수현과 전지현의 키스씬 가지고 마케팅을 엄청 하던데, 카리스마 넘치는 대배우들 틈에서 막내 김수현은 존재감이 거의 없을 정도다. 임달화를 비롯한 중국 배우들의 연기도 대단했다. 씹떤껌 김해숙 아줌마와의 로맨스도 눈물겨웠고.

 

근데 이 영화가 관객 천만을 넘길 정도로 그렇게 대단한 영화였던가? 끙... 근데 왜 난 후반부 내내 자꾸만 하품이 났을까나. -_-; 액션 오락 영화로 담아낼 수 있는 재미와 볼거리를 최대치로 높이려 한 점은 인정하겠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데 <오션스 일레븐>의 짝퉁이 될까 염려했던 우려를 잠재우며 이 정도면 누구 하나 딱히 섭섭한 캐릭터 없이 잘 버무린 것 같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숨겨놓았던 몇 가지 반전이 드러나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나중엔 감독이 반전 강박에 걸렸나 싶어지면서, 점점 스토리가 빈곤해지는 느낌이들었다. 이미 서로 계속 등 쳐먹으며 살아온 도둑들의 행동이야 어디로 튈지 너무 빤한 거 아닌가?

 

전지현이 딱 영화속 예니콜 캐릭터 같은 모습으로 휴대폰 광고에 나오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이 영화에선 전지현이 제일 주목을 받나 싶지만 솔직히 나는 영화보며 전지현의 대사를 태반 못 알아들었다. 몸매 훌륭한 줄타기 도둑의 빛나는 미모를 여실히 보여주며 딱 자기한테 맞는 옷을 입은 건 좋았는데 왜 아직도 발성이 안되느냐고!!! 요샌 현장 마이크 성능도 엄청 막강할텐데 한국영화 보면서 자막 있으면 좋겠다고 느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김윤석 같은 배우는 나직하게 조용히 읊조려도 다 대사전달이 되던데 참 나.

 

하여간에 나는 얼른 보고 나와서 이 영화 봤다고 남들한테 말하기 부끄러운 영화라는 생각을 얼핏 했고, 또 영화관을 나와서는 남는 게 없어서 잊고 있었다가 관객 천만 동원이 초읽기니 어쩌니 하는 뉴스를 보고 좀 놀랬다. 하기야 취향차도 있을 테고 관객수만으로 영화의 점수를 매길 순 없는 것이겠지. 그 천만 숫자에 머리 하나 보탠 주제에 참 말도 많다. <오션스 일레븐>은 개봉하자마자 달려가 보았지만 내 사랑 조지 클루니가 계속 나오는데도 <오션스 트웰브>는 볼 마음이 없었던 것처럼, 이 영화 시즌2 나온대도(결말을 보면 2편 제작의 열망이 보인다) 나는 또 보러 갈 것 같지 않다는 게 나의 결론.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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