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상가 득템

놀잇감 2011. 5. 7. 03:27

지난주에 자빠져 무릎을 깬날 그리도 급히 향한 최종 목적지는 강남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였다. 꽃과 각종 공예품과 잡다한 물건들이 지천으로 깔려있는 곳. 옛날엔 주변사람들에게 주는 독특한 선물을 사려고 일년에도 서너번씩 찾곤 했는데, 생각해보니 최근 몇년 사이엔 가 본 적이 없었다. 아마 5년은 됐겠다고 짐작하며 길고 긴 한산 지하상가를 구석구석 뒤지고 다녀보니 몹시 피곤하긴 해도 확실히 나름의 묘미가 있었다. 수백만원짜리 가구가 없나, 향기 그윽하고 줄기 길쭉한 꽃들이 없나, 유아복부터, 10대,  6,70대까지를 아우르는 각양각색의 옷들이 없나...

하지만 내가 예전에 독특한 촛대나 장식품, 인테리어 소품을 주로 사던 앤티크숍들은 상권이 엄청 줄었고, 꽃가게도 예전같지 않은 것 같았다. 그저 늘어난 건 옷가게 옷가게 옷가게들. 가장 중요한 쇼핑 목적(동생네 콘솔 위에 놓을 화병 장식)을 제일 먼저 달성한 뒤엔 주로 그냥 눈요기를 하러 다닌 셈이었다. 올케는 하얀 자개로 만든 고가의 샹들리에(관심 없어서 가격 까먹음)를, 나는 할인가 48만원이라는 투박한 원목 책상을 탐냈다. 그런 물건들을 보고 난 뒤의 욕망은 원래 자질구레한 싸구려 물건을 지르는 것으로 달래는 게 제격이다. 마트에서 장 볼 때는 10만원을 훌쩍 넘겨 물건을 사도 품목이 몇 개 안되는데, 지하상가에서는 10만원 이내에서 마음껏 써주마 마음 먹으니 늘어나는 보따리 보따리가 끝도 없었다. ㅋㅋㅋ 그 재미에 마냥 돌아다니고 보니 지하상가를 휘저은 시간이 놀랍게도 무려 3시간에 가까웠다.(창이 없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쇼핑하는 상술은 백화점에만 해당되는 게 아닌듯)

그날의 쇼핑 품목 중 가격대비 만족도를 따져보며 득템했다고 계속 뿌듯한 물건은 바로 이 녀석이다.

 

그 유명한 브랜드 '메이드인차이나' 슬리퍼. ^^
올케가 어느 찜질방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신은 걸 보고 사려했으나 없어서 못샀다는데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 떡하니 매달려 있었다. 찜질방에선 만원에 팔았다는 걸 거기선 단돈 5천원! 메이드인차이나 브랜드를 마뜩찮아하는 편이지만 이건 재질이 대체 뭔지 낭창낭창 발에 착착 감기고 폭신한 것이 엄청 편하다.
빨간색, 분홍색, 검정색 중에 제일 무난한 게 분홍으로 보여, 별로 분홍색 안 좋아하면서 찜했는데, 올케가 신은 걸 보니 빨간색이 훨씬 예쁘다. 그러고 보니 검정색도 '착화빨'이 이거보다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나만 몰랐지 한참 유행하다 들어가는 끝물 슬리퍼인 듯. 이걸 사겠다고 그 먼 고속터미널 상가를 또 헤맬 순 없지만 어디선가 발견하면 색색깔로 사다놓고 싶다. ㅋ 한겨울 빼고는 늘 맨발족이라 털신이라면 모를까 다른 계절엔 실내화 안신고 사는데, 요 녀석은 하도 편해서 요새 집안에서 돌아다닐 때 매일 애용하고 있다. 신는 걸 자꾸 까먹기는 하지만...
 



그밖에도 여러가지를 샀으나 두번째로 뿌듯한 건 지난번 깨먹은 유리화병 대신에 역시나 '메이드인차이나' 브랜드라 몹시 저렴한 유리화병 세트다. 내친 김에 보라색 리시안서스도 한 다발 사다 꽂아놓고 일주일 넘게 눈호강을 했다. 장미랑 사촌처럼 닮은 꼴이지만 당당한 장미보다는 좀 소박한 느낌이고 하늘하늘 여리여리 우아한 리시안서스가 나는 참 좋다. 하지만 확실히 비실하게 생긴 거 답게 그리 오래 가는 꽃은 아니다. 진즉에 사진을 찍었으나 보라색은 아이폰이 잘 인식을 못하는지 꽃이 자꾸 파랗게 찍혔다. 조명탓인가? -_-; 암튼 꽃병 개비 기념으로 꽃 좀 자주 사다 꽂고 살아야지...

맨 아래 꽃 한송이 띄워놓은 동그란 유리그릇은 단돈 2천원이다. +_+ 신문지로 겹겹이 어찌나 꽁꽁 싸줬는지 신문지 값도 안나오겠다고 중얼거렸다. 그 옆에 동그란 유리병은 조카가 먹고 난 사과주스병을 달래서 가져왔다. 전생에 넝마주이였는지 예쁜 주스병만 보면 사족을 못쓰고 좋아라 한다. ㅋㅋㅋ 하기야 그런 사람이 나만은 아닌듯, 일본서 파는 앙증맞은 온갖 크기의 음료수병만 따로 모아 파는 데도 있더라. 궁상이 아니라 엄연한 자원 재활용이라고 핏대 세워 주장하노라.

그날 바리바리 싸들고 온 봉다리 많았는데 또 뭘 샀더라? -_-aa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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