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놀잇감 2011. 2. 15. 01:48

운동신경과 반사신경이 둔한 때문이겠지만 나는 어려서나 지금이나 게임을 잘하지 못한다. 소풍이든 수학여행이든 MT든 친구들과 보내는 밤이면 늘 방구석에 둘러앉아 007빵, 김밥장수, 전기게임 따위를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구멍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최근에 생겨난 369나 구구단 게임의 경우는 워낙 셈과 수에 젬병이라 그러려니 한다지만, 셈과 상관없이 그저 머리로만 푸는 수수께끼나 컴퓨터게임도 못하는 걸 보면 순발력도 논리력도 전부 부족한 때문인 것 같다.

어린 시절 두 남동생을 찾으러 오락실엘 가봐도 난 정신없이 삐용거리는 여러 게임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그저 남들 하는 대로 해봐야할 것 같아서, 갤러그, 제비우스, 인베이더 같은 총쏘기 게임에 공을 들이던 때도 있었지만 들이는 동전에 비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확률이 너무도 희박하다보니 버럭 짜증이 나 관두고 말았다. 그나마 테트리스는 한 판 깰 때마다 나와서 러시아 춤을 추는 캐릭터가 귀엽고 비교적 단순한 게임이라 꽤 오래 하러 다녔고, 나중에 나온 컴퓨터 버전에는 온 가족이 매달려 기록갱신에 힘썼지만, 단한번도 마지막 단계까지 깨보기는커녕 최고단계 근처에도 올라가 본 적이 없었다.

컴퓨터로 하는 게임도 단순하기 짝이 없는 지뢰찾기, 프리셀, 스파이더 카드놀이 정도만 한동안 해보다가 이내 싫증을 냈다. 십수년전에는 잠시 심시티에 열광해 밤을 새워가며 도시를 건설한 적도 있기는 했지만 그나마도 금세 흥미가 사라진 것 같다. 블로그 이웃들이 닌텐도 동숲 같은 게임에 심취하거나 아이폰 위룰에 재미를 붙이는 걸 봐도, 나는 그닥 끌리지 않았다. 귀찮음과 게으름에 더하여 눈을 피로하게 하는 작은 화면에 대한 거부반응 같은 것이 있나 할 정도. 그렇다고 비디오게임 유형이 아닌, 보드게임류를 잘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몇년 전 보드게임 카페가 대거 유행할 때 덩달아 따라가서 몇번 해봤지만, 머리를 쓰는 유형이든 몸을 쓰는 유형이든 하나같이 얼마나 못하던지! 추억의 브루마블도 했다하면 제일 먼저 파산되고 마는 형편이고, 할리갈리, 젠가, 그외 이름 까먹은 다수의 보드게임에서 늘 꼴찌를 기록했었다(당연히 지금도 그러하고).

그러다 아이폰이 생기고 나서는 순전히 '조카들'을 위해 몇 가지 무료 게임을 깔아놓았다. 틀린그림찾기, 버블버블, 플라이가가, 애니멀팡팡 정도였다. 틀린그림 찾기 말고는 사실 게임을 하는 방법조차 익히는데 오래 걸릴 만큼 게임과 관련해서라면 굼뜬 사람이 나다. 그런데 몇달만에 내가 모든 단계를 다 깨뜨리는 게임을 만났다!  바로 애니멀 팡팡.


직선으로 세번 안에 연결되는 똑같은 그림을 연달아 눌러주기만 하면 되는 식이라, 다섯 살짜리 조카도(이젠 녀석도 여섯 살이 됐지만) 할 수 있는 쉬운 게임이기 때문이긴 해도, 어쨌든 나로선 감격이었다. 최종 20단계를 깨뜨리고 All stage clear!라는 화면이 떴을 때의 그 희열이란. ㅠ.ㅠ 터치 스크린 망가지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거의 매일 매달렸던 그 게임을 드디어 다 깨뜨렸으니 이젠 그만 해야지 생각하고 보니, 아 '인증샷'을 안 남겼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핑계로 난 또 며칠간 이 게임에 매달렸고 드디어 다시 '인증샷'을 남길 수 있었다. 우선 나를 게임열등생으로 알고 있는 주변에 마구 자랑을 할 요량이었는데, 그 단계도 지나고 나니 남은 건 블로그 자랑질. ^^; 남들은 시도한 지 불과 몇번 만에 다 깨는 판을 몇달만에 '클리어' 해놓고 이렇게 좋아하는 게 우습기도 하지만, 어쨌든 지뢰찾기와 프리셀, 스파이더 카드놀이 이후 내가 이런 종류의 게임을 끝까지 완료한 건 처음이니 내겐 기록을 남길만한 역사라고 우길란다. 내심 게임 잘하는 사람 엄청 부러웠었던 말이다. ㅋ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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