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러브

놀잇감 2011. 1. 27. 16:07

아니 어떻게 이번 겨울방학엔 볼만한 애니메이션이 단 하나도 개봉을 안할 수가 있는지! 조카 다녀가는 동안 '노는' 스케줄 짜면서 볼 영화가 없어서 참 난감했다. 은근 영화광이신 공주께선 최근 개봉한 <해리포터>, <헬로고스트>, <라스트 갓파더>까지 이미 모두 봐버렸으니 도대체 남는 영화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낙점된 게 <글러브>였다. 그나마 드라마 <공부의 신>에 나왔던 귀요미 이현우가 안나왔다면 공주의 간택을 받지 못했을 영화다. 

나 역시 강우석 감독 영화를 좀 뜨악해 하는 경향이 있는데다, 청각장애학생들이 다니는 청주성심학교 야구단과 타락한 프로야구 선수의 조합이라니, 안봐도 너무 뻔한 스토리가 예상되었으므로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들어맞았다. 어떻게 줄거리가 예상을 빗나가는 부분이 단 하나도 없는지 원 -_-;

(* 이제부터 나름 스포일러일 수 있으니 보실 분은 참고하세요.)

하지만 역시 이런 '뻔한' 영화의 힘은 실화에서 나온다. 청주성심학교 야구단이 정말로 아직도 전국대회에서 1승도 못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듣지를 못해서 플라이볼을 캐치할 때 콜 사인을 못해 외야수들이 전력으로 서로 달려가다 부딪치고, 심판이 아웃을 선언해야만 아웃인지 세이프인지 아는 '야구선수'들의 고군분투기는 뻔해도 예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김혜성(<거침없이 하이킥> 이후 안보여 뭐하나 궁금했는데 무려 야구부 주장에 4번타자, 홈런타자였다 ^^;;), 이현우(얼굴이 새카맣게 타서 하얀 이빨만 드러내며 씩 웃는데 아주 귀여웠다!), 장기범(고주원이랑 진짜 닮은 것 같은데, 급성난청으로 청력을 잃은 꽃미남 투수 차명재 역할을 감동스럽게 해냈다), 세 꽃소년의 눈빛과 수화연기가 놀라웠다.

그러고 보니 정재영은 <아는 여자>에서도 야구선수로 나왔었던 걸 보면 '술처먹고' 야구방망이 휘두르는 캐릭터가 종종 드러나는 '일부' 개망나니 야구선수 부류에 꽤나 잘 어울린다. <아는 여자> 때도 상황이 좀 다르긴 했지만 시한부 인생인 줄 알고 시합에서 제멋대로 굴었으니까. 근데 죽어라 달리는 모습이 너무 웃겨서, 자꾸만 <김씨 표류기> 때 사각팬티만 입고 달리던 원시의 느낌이 물씬물씬 풍겨 나 혼자 킥킥댔다. 스포츠 영화 보면서 조마조마한 이유는 경기 장면에서 리얼리티가 너무 떨어질까봐 염려스럽기 때문인데, 이 영화는 선수로 나오는 배우들의 연습량이 꽤 되는듯 퍽 자연스러웠다. 물론 열악한 환경에서 야구하느라 뒹구는 애들만 보면 무조건 안쓰럽고 칭찬해주고 싶은 편견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내가 보기엔 한물간 야구선수 김상남(정재영)과 헌신적인 매니저 찰스(조진웅)의 우정도 좀 신파스럽고, 교장선생님이신 원장수녀님이며, 교감선생님, 국어선생인지 음악선생인지 정체성 불분명한 여교사(유선)까지 나머지 인물들까지 죄다 상투적이라 민망할 지경이었으나, 최종적인 나의 평점은 '그럭저럭 볼만하다'로 결론을 내렸다. 다 '야구'와 청주성심 야구선수들로 나오는 아이들의 힘이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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