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하나마나 푸념 2010. 12. 3. 20:45

오늘은 왕비마마의 정기 진료 및 상담이 있는 날. 잘 지내셨냐는 의사의 질문에 왕비마마는 어수선한 나라 상황 때문에 불안한 심경을 토로했다. 연평도 포격 날부터 왕비마마는 평소 복용하는 여러 알의 안정제와 치료제로도 소용없는 심한 불면과 공포에 시달렸다. 전쟁의 기억이란 60년이 지난 뒤에도 생생하게 되살아날 만큼 무서운 정신척 충격을 남긴다는 의미다. 왕비마마는 지금도 두려움에 떠느라 뉴스를 제대로 보지 못해, 연평도와 북한군의 동정과 관련된 소식만 전해지면 손을 벌벌 떠시면서 얼른 채널을 돌리거나 TV를 끈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며 왕비마마를 안심시키던 나의 근거 빈약한 호언장담은 이제 약발이 떨어졌다. 어떤 명분으로든 전쟁은 일어나선 안된다는 믿음과 기초상식이 안보의식 부족이라고 비하되는 상식이하의 나라에서 살고 있으니 나도 더는 할 말이 없다. 언론에선 연일 북한이 연내에 다시 남한을 공격할 것이라고 떠들어대고, 국군의 어이없는 전력은 공분을 산다. 이래서 어디 본때를 보여주겠느냐고. 역사공부에 젬병이긴 했지만 과거 역사의 모든 전쟁은 심성 비뚤어진 인간들이 탐욕 때문에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이지 한반도엔 남북 할 것 없이 끝없이 비뚤어졌으면서 탐욕으로 가득한 인간들이 너무 많다. 온 국민이 불안과 공포에 떠는 게 당연하다. 새로 국방장관에 임명됐다는 사람은 국회의 질문에 북한이 다시 도발하면 어쩌겠느냐는 질문에 '전투기를 띄워 반격 응수할 것이라고 '단호히' 대답했단다. 내가 알기론 전투기를 띄울 순 있어도 북한을 포격하는 명령은 이 나라 국방장관이 내릴 수 없을 텐데. 전작권 갖고 있는 형님한테 허락받고 나서 그러겠다는 얘긴가. 아니면 자기 맘대로 항명? -_-;

'전쟁이나 다름없는' 포격으로 졸지에 집을 잃고 난민이 된 연평도 주민들이 쉴 곳이라는 데가 찜질방이나 친척집 뿐이라는 사실만 봐도 알만하다. 수재민들에게 대통령궁을 개방했다는 차베스 대통령을 따라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꼬박꼬박 세금 내며 살아온 국민으로서 나라의 보호를 제대로 받고 있다는 느낌만이라도 들게 해달란 말이다. 왕비마마의 공포는 전쟁을 겪은 세대의 뿌리 깊은 정신적 상처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한의 정신나간 행패를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주변국 형님들 눈치만 보는 이 나라 정부의 무능력 때문이다. 살 맞대고 있는 분단 국가에서 6자 회담 말고는 섣불리 말도 못붙이는 정부에 대체 '대북정책'이라는 게 존재는 할까. 하기야 전쟁이 난들 이 땅의 대통령과 주요 관료들은 청와대의 천하무적 '벙커'에서 무사할 수 있을 테니 지들이야 뭐가 걱정이랴.

전쟁이 나면 우리는 어디로 숨어야 하느냐고 묻는 조카와 왕비마마에게 숨을 곳은 없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했지만 그게 정답이니 웃음끝이 길지 못하다. 무슨 일만 생기면 그 책임과 비용부담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이 나라의 작태는 또 한 번 이어져 방송사마다 연일 연평도 주민 돕기 모금이 진행중이다. 전쟁 날까봐 무서워서 관련 소식도 못보던 왕비마마는 연평도 주민들 돕겠다고 한통화에 2천원이라는 전화를 두번 걸었단다. 그렇게 모금한 돈 얼렁뚱땅 제 주머니에 넣고 삼키는 못된 인간은 또 없으려나. 정권 바뀐 뒤 줄곧 참담한 세월이었지만 참 갈수록 가관이다. 이젠 욕하기도 지겹다.
Posted by 입때
,